케빈 워시의 스승 "버냉키 그림자"
이미지 확대보기케빈 워시의 정책과 철학을 명확하게 관통하는 중요한 열쇠는 바로 제14대 연준 의장이자 그의 사상적 사부였던 ‘벤 버냉키(Ben Bernanke)’다. 워시 의장이 현재 단행하고 있는 파격적인 연준 소통 구조 개혁과 통화정책 기조는 버냉키 전 의장과의 철학적 단절이 아니다. 오히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한날한시에서 인류 사상 최악의 금융 재앙을 함께 방어했던 버냉키의 유산과 경험이 20년의 세월을 거쳐 가장 정교하게 진화한 결과물이다. 뉴욕증시 시장은 워시 의장이 버냉키 전 의장이 창제한 ‘점도표(Dot Plot)’를 폐지하거나 소통을 극도로 절제하려는 움직임을 두고 ‘버냉키 지우기’ 혹은 ‘반면교사’로 해석하곤 한다. 그러나 이는 본질을 오독한 결과다. 워시는 버냉키의 품에서 자라났고, 버냉키 체제의 위기 대응 메커니즘을 가장 완벽하게 체화했으며, 그렇기에 버냉키가 남긴 도구들의 한계와 부작용을 누구보다 정밀하게 꿰뚫어 보고 있는 인물이다. 벤 버냉키를 보면 케빈 워시의 정책이 선명하게 투사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글로벌 경제의 대전환기를 맞아 케빈 워시의 인물학적 이력과 그 속에 새겨진 버냉키의 유산을 전면 탐구한다.
케빈 워시는 스탠퍼드 대학교에서 공공정책학을 전공하고 조지타운 대학교 로스쿨을 졸업한 변호사이자 투자은행가 출신이다.대학 졸업 후 워시는 뉴욕 월스트리트의 핵심인 모건스탠리(Morgan Stanley)에 입사하여 인수합병(M&A) 부서의 부사장직까지 올랐다. 구조조정과 기업 매각, 자본의 결합 등 실물 자본시장의 가장 치열한 최전선에서 다져진 그의 야성적 감각은 훗날 그가 연준에 입성했을 때 숫자가 아닌 ‘시장의 살아있는 숨결’을 읽어내는 결정적 무기가 되었다.케빈 워시를 공공로 무대로 끌어올린 인물은 조지 W. 부시 대통령이다. 2002년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CEA)의 수석보좌관이자 대통령 경제정책 특별보좌관으로 발탁된 것이다. 바로 이때 당시 백악관 CEA 위원장으로 부임해 온 벤 버냉키와 운명적인 조우를 하게 된다. 2006년 초는 미국 금융 역사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전환점이었다. 18년간 연준을 지배했던 앨런 그린스펀의 퇴임과 함께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호흡을 맞추던 두 사람을 연준의 핵심 요직으로 동시에 지명했다. 2006년 2월 1일: 벤 버냉키가 제14대 연방준비제도 의장으로 취임했다. 이어 2월 24일 케빈 워시가 만 35세의 나이로 역사상 최연소 연준 이사(Governor) 취임했다.
버냉키 의장이 대공황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제로 금리와 양적완화(QE)라는 거시적 프레임워크를 설계했다면, 워시 이사는 그 정책이 시장의 혈관을 타고 흐를 수 있도록 집행하는 사령관이었다. 워시는 제이미 다이먼 JP모건 회장, 로이드 블랭크페인 골드만삭스 회장 등 월가 CEO들과 실시간으로 소통하며 자금 경색의 깊이를 파악해 버냉키에게 직통으로 보고했다. 버냉키가 내린 구제금융과 유동성 공급이라는 대담한 결정의 이면에는 워시가 현장에서 길어 올린 정확한 정보와 조율이 있었던 것이다.워시는 연준 내부 회의에서 과도한 유동성 주입이 가져올 장기적 부작용을 경고하는 매파적 성향을 견지했으나, 버냉키 의장이 정책적 최종 결단을 내리면 대외적으로 이를 완벽하게 사수하며 연준의 통일된 리더십을 방어했다. 이 위기를 함께 극복하며 다져진 신뢰는 워시에게 '중앙은행이 위기 상황에서 시장을 어떻게 구원하고 관리해야 하는가'에 대한 세상에서 가장 밀도 높은 수업이 되었다.
케빈 워시가 현재 의장으로서 구사하고 있는 정책적 행보와 점도표 폐지 선언은 버냉키를 향한 반발이 아니라, 버냉키 밑에서 배운 통화정책의 정수를 오늘날의 경제 체력에 맞게 ‘최적화’하는 과정이다. 버냉키의 유산은 워시의 정책을 고스란히 비추는 거울이다. 첫째, ‘점도표 폐지’는 버냉키식 소통의 과잉을 치료하는 처방이다. 버냉키는 2012년 연준 위원들의 미래 금리 전망을 시각화한 ‘점도표’를 도입했다. 위기 상황에서 중앙은행이 친절하게 미래 경로를 보여주어야 시장이 발작하지 않는다는 판단에서였다. 워시 의장은 이 도구의 치명적 한계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위기 국면이 지나간 정상적 경제 환경에서 점도표는 시장 참여자들에게 단순한 예측이 아닌 ‘연준의 확정된 약속’으로 둔갑한다. 이로 인해 경제 데이터가 예상과 다르게 흘러가도 연준이 찍어놓은 점 때문에 금리를 신속하게 변경하지 못하는 ‘정책적 경직성’이 발생한다. 워시의 점도표 폐지 추진은 버냉키가 만든 소통 도구의 유통기한이 다했음을 선언하고, 중앙은행의 생명인 ‘신속한 유연성’을 복원하려는 조치다. 예측 불가능한 미래를 억지로 예언하려 하지 말고, 중앙은행 본연의 무게감을 찾자는 철학이다.
두 사람의 위기 대응 DNA는 완전히 일치한다. 만약 글로벌 경제에 예기치 못한 시스템적 붕괴나 유동성 위기가 재발한다면 워시는 그 누구보다 신속하고 과감하게 버냉키식 대규모 완화 정책을 꺼내 들 인물이다.그는 2008년 버냉키의 곁에서 중앙은행의 머뭇거림이 얼마나 큰 재앙을 초래하는지 목격했다. 따라서 워시의 정책은 평시에는 시장과 적당한 거리를 두며 엄격하게 절제하되, 위기 시에는 버냉키처럼 치명적이고 압도적인 유동성 폭탄을 투하할 수 있는 체력을 평소에 비축해 두는 구조로 설계되어 있다.
케빈 워시 신임 연방준비제도 의장은 벤 버냉키라는 거인의 어깨 위에서 자라나, 그 거인이 남긴 유산의 명과 암을 가장 완벽하게 복기한 인물이다. 그의 정책은 버냉키에 대한 부정이 아니라, 대유동성 시대의 거품과 소통 과잉이 초래한 시장의 ‘연준 의존증’을 치유하기 위한 진화된 형태의 통화정책 표준이다. 워시 의장이 이끄는 연준은 앞으로 점도표의 퇴출을 시작으로 포워드 가이던스의 거품을 걷어내고, 시장에 보다 불친절하지만 보다 솔직한 중앙은행의 모습을 보여줄 것이다. 이는 시장 참여자들에게 과거 버냉키 시절의 따뜻한 온실이 사라지고, 각자의 책임하에 경제 데이터를 분석해야 하는 냉혹한 야생의 지평이 열렸음을 의미한다. 벤 버냉키를 보면 케빈 워시가 보인다. 워시는 사부의 위기 대응 DNA를 뼈대에 새긴 채, 평시의 방만한 유산들을 과감히 수술대 위로 올리고 있다. 그가 펼쳐 보일 ‘데이터 리얼리즘’이 인플레이션과 유동성 중독에 신음하던 글로벌 자본시장을 어떻게 재편할 것인지, 세계 경제의 이목이 그의 단호한 손끝에 집중되고 있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