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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우의 에너지 톺아보기] 에너지 안보 금융의 미래; 탈탄소 당위론의 종말(1)

이한우 울산테크노파크 단장(국제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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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우 울산테크노파크 단장(국제정치학 박사)

그동안 수소 산업을 바라보는 자본시장의 시선은 냉정했다. 탄소중립이라는 시대적 과제에는 공감하면서도, 수소는 여전히 '미래의 가능성'에 머무는 산업으로 취급받았다. 투자자들은 수소를 수익보다 명분이 앞서는 분야로 여겼고, 친환경 투자 열풍이 가라앉자 상당수 수소 기업의 주가는 기술력과 무관하게 큰 폭으로 무너졌다.

그러나 최근 글로벌 금융시장의 눈길이 빠르게 바뀌고 있다. 수소를 평가하는 잣대가 환경에서 안보로 이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친환경이라는 도덕적 명분 대신 국가 주권, 공급망 안정성, 에너지 자립이라는 지극히 현실적인 가치가 그 자리를 채우고 있다. 탈탄소 당위론이 물러나고 에너지 안보 실용론이 전면에 등장한 것이다.

변화의 출발점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었다. 유럽은 값싼 러시아산 가스에 의존했던 대가를 혹독하게 치렀다. 에너지 가격 급등은 산업 경쟁력을 뿌리째 흔들었고, 에너지 공급망이 국가 안보의 핵심 변수임을 세계에 다시 각인시켰다. 여기에 AI 데이터센터 확산으로 전력 수요가 폭증하면서, 안정적이고 통제 가능한 에너지 공급 능력은 국가 경쟁력 자체를 좌우하는 요소로 부상했다. 에너지를 스스로 통제하지 못하는 나라는 첨단 산업의 미래도 장담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빠르게 퍼지고 있다.
태양광과 풍력은 중요한 에너지원이지만 자연조건의 제약을 벗어나지 못한다. 해가 지고 바람이 멈추면 전력 생산도 함께 멈춘다. 반면 수소는 잉여 전력을 저장해 필요할 때 꺼내 쓸 수 있는 에너지 저장 매체다. 단순히 에너지를 생산하는 기술이 아니라, 에너지를 축적하고 이동시키는 기술이다. 파이프라인이나 선박을 통해 국경을 넘어 운반할 수 있고, 발전·수송·산업 전 분야에 두루 활용된다. 재생에너지의 간헐성을 메우는 동시에 국가 에너지 시스템 전체의 회복탄력성을 높이는 전략 자산이다. 수소가 단순한 연료를 넘어 에너지 안보의 핵심 인프라로 재정의되고 있는 이유다.

이 때문에 주요국들은 수소를 더 이상 환경정책의 부속물로 다루지 않는다. 미국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으로 청정수소 생산에 대한 장기 세제 지원 체계를 갖췄다. 독일은 국가수소전략을 통해 산업 경쟁력과 에너지 안보를 함께 잡으려 하고 있으며, 일본은 GX 추진법을 바탕으로 수소·암모니아 공급망 구축을 국가 전략의 핵심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이들 국가의 공통점은 정책의 예측 가능성이다. 정권이 바뀌어도 핵심 방향은 흔들리지 않는다. 장기 투자자는 기술보다 정책의 지속성을 먼저 들여다본다. 수소 프로젝트는 수십 년을 내다보는 대규모 인프라 사업이기 때문이다. 정책의 일관성은 자본 조달 비용을 낮추고, 낮아진 자본 비용은 투자 확대와 시장 성장으로 이어진다. 정책이 곧 투자 환경이고, 투자 환경이 곧 산업의 미래다.

반면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연료전지·수소 활용 기술을 보유하고도 자본시장에서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문제는 기술이 아니다. 정책의 예측 가능성이다. 정권 교체에 따른 정책 변화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피할 수 없다. 하지만 장기 산업정책마저 반복적으로 흔들리면 시장은 이를 위험 요인으로 읽는다. 청정수소 관련 제도의 잦은 일정 변경과 재조정은 시장 참여자들에게 적잖은 불확실성을 안겼다. 기업들은 수년, 수십 년을 내다보고 투자 결정을 내려야 하지만, 정책의 유효기간은 그보다 훨씬 짧게 인식된다.
자본시장은 이러한 불확실성을 즉각 가격에 반영한다. 투자자는 더 높은 위험 프리미엄을 요구하고, 기업은 더 높은 자본 비용을 짊어지게 된다. 같은 기술, 같은 사업모델이라도 국가별 정책 신뢰도에 따라 기업가치는 크게 엇갈린다. 자본은 수익을 쫓지만, 그 전에 먼저 리스크를 피한다.

필자는 이를 '안보 디스카운트(Security Discount)'라 부르고자 한다. 에너지 안보 전략의 신뢰도가 낮을 때 발생하는 구조적 가치 할인이다. 역으로 정책의 일관성과 공급망 안정성이 뒷받침된다면, 이는 '안보 프리미엄(Security Premium)'으로 전환될 수 있다. 기술 경쟁력을 금융 경쟁력으로 전환하려면, 정책의 일관성이라는 토대가 먼저 깔려야 한다.

수소는 이제 환경이나 이념의 문제가 아니다. 에너지 안보와 산업 경쟁력, 그리고 금융의 문제다. 글로벌 자본시장은 수소 기업의 기술력뿐 아니라 그 기업이 속한 나라가 얼마나 안정적인 에너지 안보 체계를 갖추고 있는지를 함께 따지게 될 것이다. 에너지 안보는 군사와 외교의 경계를 넘어 금융의 영역으로 들어서고 있다. 수소는 그 변화의 한가운데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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