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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마음산책 (332)] 황혼이혼 시대, 노년의 관계를 다시 생각한다

노년의 삶에서 중요한 것은 단순히 얼마나 오래 사느냐가 아니다. 누구와 어떤 관계를 맺으며 사느냐가 삶의 질을 결정한다. 사진=뉴시스이미지 확대보기
노년의 삶에서 중요한 것은 단순히 얼마나 오래 사느냐가 아니다. 누구와 어떤 관계를 맺으며 사느냐가 삶의 질을 결정한다. 사진=뉴시스
최근 보도된 서울 제기동과 청량리 일대의 풍경은 우리가 노년의 심리를 얼마나 단순하게 이해해 왔는지를 보여준다. 제기동역 주변에는 저렴한 식당과 이발소, 시장과 병원, 당구장과 콜라텍이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다. 노인들은 무료 지하철을 타고 이곳에 와서 밥을 먹고 장을 보고, 친구를 만나고 춤을 춘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 손을 잡고 때로는 사랑을 시작한다. 한 노인은 “놀고 장 보고 집에 가는 거지”라고 말했다. 다른 노인은 “결국 다 사람 만나러 오는 거지”라고 했다. 이 짧은 말 속에 노년기 삶의 본질이 들어 있다.
사람은 나이가 들어서도 먹고 치료받는 것만으로는 충분히 살아갈 수 없다. 자신의 존재를 알아봐 주는 사람,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 함께 밥을 먹고 웃을 사람, 자신을 기다리고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노년의 삶에서 중요한 것은 단순히 얼마나 오래 사느냐가 아니다. 누구와 어떤 관계를 맺으며 사느냐가 삶의 질을 결정한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노인을 욕망이 사라진 존재로 보는 경향이 있다. 노인에게 필요한 것은 연금과 병원, 식사와 돌봄이라고 생각한다. 사랑과 연애, 설렘과 질투는 젊은 사람의 몫으로 여긴다. 노인이 이성의 손을 잡거나 연인을 기다리면 ‘늙어서 주책’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애착과 친밀감에 대한 욕구는 나이가 들었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사람은 생애 전체에 걸쳐 누군가와 정서적으로 연결되기를 원한다. 불안하고 외로울 때 다가갈 사람이 있기를 바라며, 자신이 여전히 소중하고 매력 있는 존재라는 확인을 받고 싶어 한다. 노년의 사랑은 외로움을 피하는 수단을 넘어 은퇴와 자녀의 독립으로 약해진 자존감을 회복시키는 경험이 될 수 있다.
박완서가 1995년에 발표한 단편소설 '마른 꽃'은 이러한 노년의 심리를 섬세하게 보여준다. 남편과 사별하고 환갑을 앞둔 여성 주인공은 아내를 잃은 조 박사와 가까워진다. 주변 사람들은 두 사람이 재혼하면 서로 의지하고 아플 때 돌봐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주인공이 원하는 것은 안전한 노후를 위한 새 가정만이 아니다. 누군가의 밥을 해주고 병을 간호하기 위해 다시 아내가 되고 싶은 것도 아니다. 그가 원하는 것은 한 사람의 여성으로 인정받는 사랑이다. 마음뿐 아니라 몸도 반응하고,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는 전인적인 관계다.

박완서가 그리는 노년의 여성은 보호받아야 할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다. 여전히 사랑받고 싶어 하고 자신의 욕망을 들여다보며, 어떤 관계를 맺을 것인지 스스로 선택하는 한 인간이다. 작품이 발표된 지 30년이 지났지만 노년의 사랑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노년의 사랑과 함께 생각해야 할 현상이 황혼이혼이다. 자녀를 모두 키우고 은퇴할 나이가 된 부부들이 수십 년 동안 유지해온 결혼생활을 끝내고 있다. 사람들은 “그 나이에 왜 굳이 이혼하느냐?”고 묻는다.
그러나 오늘날 60대의 이혼은 얼마 남지 않은 여생의 문제가 아니다. 앞으로도 20년 또는 30년을 더 살아갈 수 있다. 황혼이혼은 단순히 과거의 결혼을 정리하는 행위가 아니라 남은 생애를 누구와 어떤 관계 속에서 살아갈 것인지 선택하는 일이다.

황혼이혼은 어느 날 갑자기 생긴 갈등의 결과라기보다 오래전에 이루어진 정서적 이혼이 뒤늦게 법적 이혼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부부는 한집에서 자녀를 함께 키웠지만 심리적으로는 이미 오래전부터 멀어져 있었을 수 있다. 생활비와 자녀 교육, 부모 봉양과 집안일에 대해서는 이야기했지만 서로의 외로움과 두려움, 욕구와 상처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한국의 전통적인 부부관계에서 남편과 아내는 서로를 이해하는 동반자라기보다 각자의 역할을 수행하는 사람이었다. 남편은 가족을 부양하고, 아내는 집안일과 자녀 양육을 책임졌다. 서로 무엇을 느끼고 원하는지 이해하기보다 맡은 의무를 다하는 것이 좋은 배우자의 조건이었다.

이러한 역할 중심의 관계는 자녀가 어리고 직장 생활이 계속되는 동안에는 유지될 수 있다. 그러나 자녀가 성장해 집을 떠나고 남편이 은퇴하면 부부를 연결하던 역할의 끈이 약해진다. 그동안 직장과 자녀 뒤에 가려져 있던 관계의 실체가 드러난다.
그때 부부는 비로소 묻게 된다. “우리는 부모와 가장이라는 역할 말고 무엇으로 연결되어 있는가?”

이 질문에 답할 것이 없을 때 한집에 살면서도 배우자가 가장 낯선 사람이 된다. 황혼이혼을 노인들의 인내심이 부족해진 결과로만 볼 수 없는 이유다. 오랫동안 유지된 결혼이 반드시 건강한 관계는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사회적 신호이기도 하다.

전 생애 발달심리학자 에릭 에릭슨은 노년기의 핵심 발달과제를 ‘자아통합 대 절망’이라고 설명했다. 노년은 단순히 신체가 약해지고 사회적 역할에서 물러나는 시기가 아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돌아보며 자신의 생애를 하나의 이야기로 받아들이는 시기다.

사람은 노년기에 무엇을 이루었고 무엇을 놓쳤는지, 누구를 사랑했고 누구에게 상처를 주었는지를 돌아본다. 성공과 실패, 기쁨과 상실을 모두 포함해 “그래도 이것이 나의 삶이었다”고 받아들일 수 있을 때 자아통합이 이루어진다.

자아통합은 과거를 미화하거나 모든 선택이 옳았다고 합리화하는 것이 아니다. 잘못과 후회, 상처와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자신의 삶 전체를 무의미한 실패로 규정하지 않는 태도다. 반대로 지나온 삶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후회는 분노가 되고, 죽음에 대한 불안은 배우자와 자녀를 향한 원망이나 통제로 나타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배우자는 자아통합을 돕는 가장 중요한 사람이 될 수 있다. 오랜 세월을 함께 산 배우자는 젊은 시절의 가난, 자녀의 성장, 부모의 죽음, 직장에서의 실패와 질병을 함께 겪은 생애의 증인이기 때문이다.

“당신도 참 힘들었겠다.” “그때 내가 당신 마음을 몰랐다.” 이런 말은 화려하지 않지만 한 사람의 삶을 통합시키는 힘이 있다. 자신의 생애를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사람에게 수고와 상처를 인정받는 경험이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결혼을 반드시 유지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오랜 학대와 모욕, 착취와 배신이 반복된 관계에서 벗어나는 것은 남은 삶과 존엄을 지키기 위한 선택일 수 있다. 자아통합은 무조건 참고 견디는 데에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자신이 받은 상처를 정직하게 인정하고 남은 삶을 책임 있게 선택하는 과정에서도 이루어진다.

황혼이혼을 줄이기 위해 이혼을 만류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노년이 되기 훨씬 전부터 부부관계를 돌봐야 한다. 부부는 함께 오래 살았다고 저절로 가까워지지 않는다. 표현하지 않은 실망과 원망은 오랜 세월 굳어진다. 건강한 부부관계는 함께한 시간의 양보다 관계의 질에 달려 있다. 서로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유지하면서도 각자의 친구와 취미, 사회적 활동을 존중해야 한다.

제기동 콜라텍에 모이는 노인들이 찾는 것도 단순히 춤만은 아닐 것이다. 손주와 집안일을 돌보느라 자신을 잊고 살았던 여성은 다시 한 사람의 여성이 되고, 직장과 사업에서 물러난 남성은 누군가에게 선택받을 수 있는 남성이 된다. 새로운 사람과 춤추고 이야기를 나누며 자신의 삶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확인한다.

노년의 새로운 관계를 모두 낭만적으로 볼 수는 없다. 배우자를 속이거나 상대의 외로움과 재산을 이용하는 관계도 있다. 노년의 사랑을 인정하는 것과 무책임한 관계를 정당화하는 것은 다르다. 사랑에는 나이와 관계없이 정직과 책임, 상호 존중과 적절한 경계가 필요하다.

박완서의 '마른 꽃'과 제기동 콜라텍의 풍경은 같은 사실을 말한다. 사람은 몸이 늙어가도 사랑받고 싶어 하고, 누군가에게 의미 있는 존재가 되고 싶어 한다. 황혼이혼의 증가는 결혼이 단지 헤어지지 않고 오래 버티는 제도인지, 아니면 마지막까지 서로의 삶을 이해하고 인정하며 함께 늙어가는 관계인지를 다시 묻게 한다.

초고령사회가 준비해야 할 것은 노인을 오래 살게 하는 제도만이 아니다. 노인도 사랑하고 선택하며 관계를 맺는 주체임을 인정해야 한다. 사람은 나이가 들어서도 관계 때문에 상처받지만, 좋은 관계를 통해 지나온 삶을 받아들이고 남은 삶을 살아갈 힘을 얻는다. 오래 사는 것을 넘어 마지막까지 누군가와 연결되고 한 사람으로 존중받으며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

한성열 고려대심리학과 명예교수
한성열 고려대심리학과 명예교수

필자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명예교수는 국내 긍정심리학계의 최고 권위자로 미국 심리학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 심리학이 문화의 영향력을 경시하는 것을 비판하고 인간 행동에 미치는 문화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특히 한 교수는 심리학 전공자가 이론보다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업체, 대학, 교회 등을 찾아다니며 몸 건강 못지않게 마음의 건강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저서로는 '심리학자의 마음을 빌려드립니다' '문화심리학' '신명의 심리학'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성공적 삶의 심리학' '노년기의 의미와 즐거움' '남자 나이 마흔이 된다는 것' 등이 있다.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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