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확대보기이른 아침 동서울 터미널에서 버스에 올라 한계령을 넘어 오색에서 하차해 다시 택시로 길을 되짚어 흘림골 탐방지원센터에서 산행을 시작했다. 서울에선 구름 한 점 없이 맑던 하늘이 차츰 흐려지더니 산행을 시작하려는데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높은 산과 깊은 계곡들로 인해 늘 안개가 낀 듯 흐리다고 하여 흘림골이라 불린다는 말이 헛말은 아닌 듯하다. 서둘러 우의를 챙겨 입고 탐방로로 들어섰다. 비는 숲에 생기를 더하고 굽이를 틀 때마다 앞을 막아서는 기암절벽과 암봉 사이로 흰 안개를 드리워 신비감을 더할 뿐 걷는 데 아무런 지장도 주지 않았다.
“저 산은 내게 우지마라 우지마라 하고/ 발아래 젖은 계곡 첩첩산중/ 저 산은 내게 잊으라 잊어버리라 하고/ 내 가슴을 쓸어내리네// 아, 그러나 한 줄기 바람처럼 살다 가고파/ 이 산 저 산 눈물 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저 산은 내게 내려가라 내려가라 하고/ 지친 내 어깨를 떠미네.” 빗속을 걷는데 양희은이 부른 ‘한계령’이란 노래가 떠올랐다. 그 노래가 생각난 게 그곳의 지명 때문이었는지, 바람에 떠밀리는 비안개 때문이었는지는 확실치 않다. 강원도 양양군 서면과 인제군 북면의 경계에 자리한 한계령은 설악산 고개로 오색령으로도 불린다. ‘한계’는 범위나 경계를 뜻하는 ‘한계(限界)’가 아니라 차가운 시내란 뜻의 한계(寒溪)다. 다시 말해 ‘차가운 시내’를 품은 고개가 한계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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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확대보기다행히 비는 곧 그쳤고 바람에 밀린 구름이 골짜기를 벗어나면서 빗방울이 맺힌 나뭇잎 위로 투명한 햇살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금세 숲은 환하게 밝아졌고 햇살을 받은 나뭇잎들은 반투명의 초록 필름처럼 반짝였다. 길은 젖어 있어 약간 미끄럽지만 걷는 데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다. 순백의 꽃을 달고 선 가침박달나무와 매화말발도리·돌단풍꽃도 맘껏 보고 서울에선 이미 아까시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는데 설악엔 아직도 진달래와 산철쭉이 한창이다. 우스갯소리 계곡의 물소리를 들으며 오르다 보니 어느새 여심폭포에 닿았다. 바위 절벽을 타고 흐르는 흰 물줄기가 흰 비단을 풀어놓은 듯 눈부시다. 다시 걸음을 재촉해 허위허위 등선대에 올라서니 남설악의 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해발 1002m의 등선대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가히 환상적이다. 동쪽으로는 칠형제봉이 나란히 서 있고 북쪽에는 장엄하게 펼쳐진 설악산 서북능선과 대청봉, 그 아래로 한계령 휴게소도 보인다. 남쪽으로는 점봉산과 등선대 아래 주전골의 기암들이 솟아 있는 모습을 굽어보는 조망이 압권이다. 무엇보다 봄이 무르익는 오월의 설악에서 눈을 이고 있는 대청봉을 볼 수 있었던 건 올봄의 가장 큰 행운이었다. 용소폭포와 오색약수까지 설악의 봄을 만끽한 하루였다.
누군가는 내게 묻곤 한다. 집에서 TV로 보면 훨씬 멋진 풍경을 볼 수 있는데 굳이 힘들게 산을 오르느냐고. 물론 영상 전문가의 솜씨로 촬영된 풍경은 우리가 현장에서 볼 수 있는 것보다 더 멋지고 화려할 수 있다. 하지만 직접 가보지 않고는 자신의 오감을 자극하는 현장의 생생한 느낌을 가슴에 새길 수 없다. 그러니 산을 오르는 수밖에.
이미지 확대보기백승훈 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