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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철의 법률톡톡] 성범죄의 외피를 쓴 공갈, 고소가 범죄로 바뀌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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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철 법무법인 이엘 대표변호사
외형상 성범죄처럼 보이지만, 사안의 본질이 재산범죄인 경우가 있다. 이른바 성범죄를 빙자한 공갈이다. 공갈죄는 사기죄와 마찬가지로 제정형법부터 있어왔지만, 대중에게는 상대적으로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공갈은 피해자를 협박하여 공포심을 유발하여 재산상 이익을 취하는 범죄이다. 사기가 속임수로 돈을 받아내는 범죄라면 공갈은 두려움을 이용하여 돈을 갈취하는 범죄이다.

채팅 애플리케이션으로 만난 남성 29명을 상대로 성범죄 피해를 주장하며 합의금 명목으로 4억 5천여만 원을 갈취한 여성 2명이 공갈 및 무고 혐의로 구속 기소된 사건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최근 들어 이 같은 사건은 더 이상 이례적이지 않다.

성범죄 피해를 주장하는 자가 고소를 빌미로 합의금을 요구하는 일은 실무에서 매우 빈번하게 나타난다. 문제는 이를 정당한 권리 행사로 오인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점이다. 성범죄와 결합된 공갈은 누구나 쉽게 가담할 수 있고, 피해자로 자처하던 사람이 순식간에 가해자로 전도되는 구조를 갖는다.
A는 남성과 성관계를 가진 후 강간으로 고소하겠다고 협박하며 합의금을 갈취하기로 마음먹었다. A는 남성에게 사과를 요구하다가 경찰에 신고하였고, 당일 정해진 시각까지 500만 원을 입금하지 않으면 경찰조사에 출석하겠다고 협박하면서 합의서와 각서 작성을 강요하였다. 그러나 남성은 이에 응하지 않았고, 이후 A는 공갈죄와 무고죄로 기소되어 유죄 판결을 받았다.

특히 주의할 점은 고지하는 내용이 위법하지 않더라도 해악이 될 수 있으며, 정당한 권리를 가졌다 하더라도 그 권리실현의 수단, 방법이 사회통념상 허용되는 범위를 넘은 경우에는 공갈죄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진정한 피해자라 할지라도 형사고소나 제소를 빌미로 협박하면서 합의금을 요구하는 경우 공갈죄가 될 수 있다. 판례에 의하면 불법의료행위의 피해자로 비록 정당한 손해배상채권이 있다 할지라도 형사고소나 민사제소를 협박하면서 금전을 요구하는 것을 공갈죄로 인정한 바 있다.

법원은 피해자의 진술이 유력한 증거가 되는 성범죄를 악용한 공갈범행은 다른 유형의 공갈보다 특히 죄질이 나쁘다고 본다. 성범죄의 특성상 객관성이 담보되는 다른 증거가 확보되지 않은 이상 피고소인의 결백을 입증하기 쉽지 않고, 유죄가 확정될 경우 피고소인이 각종 부수처분 등으로 사회적 오명을 쓴 채 살아갈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피고소인이 느끼는 공포와 불안의 정도가 심각하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다만 합의금을 요구한 모든 경우에 공갈이 성립되는 것은 아니다. 공갈 피고인 C가 상대 남성을 준강간상해로 고소하기 전 합의금을 요구한 사안에서, 1심과 2심은 공갈미수죄를 인정했으나 대법원은 이를 파기환송하였다. 결정적인 이유는 합의금 제안을 먼저 한 측이 성범죄 피의자인 남성이었다는 점이다. 성범죄 피의자가 먼저 사과하며 금전적 보상을 제안하였고, C의 합의금 요구는 단 한 차례에 그쳤으며, 합의가 결렬되자 즉시 형사고소로 이어졌다는 사정이 참작되었다.
배우자의 상간남에게 간통죄 고소를 예고하며 금전을 요구한 사안에서도, 상간남이 먼저 합의금을 제안한 바 있어 공갈미수죄가 부정되었다. 법원은 정당한 권리자라 할지라도 고소를 예고하며 합의금을 요구하면 공갈이 될 수 있다고 보면서도, 공갈 피해자가 먼저 합의를 제안한 경우에는 이를 엄격하게 구별하고 있다.

결국 문제의 본질은 요구의 명분이 아니라 방식이다. 성범죄라는 낙인의 무게를 지렛대로 삼아 금전을 요구하는 순간, 피해자라는 지위는 더 이상 보호막이 아니며, 권리 행사는 협박으로 변질된다. 성범죄를 앞세운 합의금 요구는 언제든 재산범죄로 재구성될 수 있으며, 그 순간 가해와 피해의 위치는 단숨에 전도된다. 이 점을 간과하는 것은 치명적인 판단 착오이다.


정준범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jb@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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