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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우의 에너지 톺아보기] 왜 누구는 잘 살고 누구는 망하는가?

이한우 울산테크노파크 에너지기술지원단장(국제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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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우 울산테크노파크 에너지기술지원단장(국제정치학 박사)
"자원은 그 자체로는 축복이 아니다. 그것을 보유한다는 것은 국가의 역량을 시험하는 가장 혹독한 평가다."
석유가 넘쳐나는 베네수엘라는 왜 경제 붕괴를 겪었고, 인구 500만의 소국 노르웨이는 왜 세계 최고 수준의 복지국가가 되었을까? 같은 자원을 가졌어도 어떤 나라는 번영하고 어떤 나라는 몰락한다. 그 차이는 지하에 묻힌 자원의 양이 아니라, 지상에서 그것을 다루는 국가의 능력에 있다.

베네수엘라의 몰락은 교과서적 실패 사례다. 세계 최대 석유 매장량을 보유한 이 나라는 2002~03년 국영석유회사 PDVSA 파업 이후 전문 인력을 대거 해고하고 정치적 충성파로 채웠다.
석유회사는 산업조직이 아니라 정치조직이 되었고, 2003년 도입된 외환통제제(CADIVI)는 외화를 권력의 배급품으로 만들었다. 석유 수익은 규칙이 아니라 정권 유지의 연료가 되었고, 그 결과는 하이퍼인플레이션과 경제 붕괴였다.

북한의 경우는 또 다른 차원의 비극이다. 희토류를 비롯한 풍부한 지하자원을 보유하고 있지만, 핵·미사일 개발에 따른 제재로 2016년 유엔 결의 2270호 이후 희토류 등 주요 광물 수출이 금지·제한되면서 자원은 경제자산이 아니라 협상카드로 전락했다. 시장이 막힌 상태에서 투명성이나 감사 같은 제도적 장치는 설계 자체가 불가능해졌다.

몽골은 '신뢰의 실패'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오유톨고이 같은 대형 광산 투자 계약이 정권이 바뀔 때마다 재협상되며, 투자자들에게 "규칙은 언제든 바뀔 수 있다"는 신호를 주었다. 외자가 빠져나가고 가공산업 투자가 멈추면서, 자원은 있지만 산업 다각화 기회를 놓쳤다.

콩고민주공화국과 시에라리온에서는 국가가 채굴 현장에 도착하기도 전에 자원이 무장세력의 손에 들어갔다. DRC 동부에서 반군이 광산을 장악하고 세금을 걷었고, 시에라리온의 다이아몬드는 내전 자금이 되었다. 정부 통치가 닿지 않는 곳에서 자원은 예산이 아니라 전리품이 된다.

이들 국가의 공통점은 자원수익이 제도화되기도 전에 정치와 폭력이 먼저 뛰어들었다는 점이다.

노르웨이는 이들과는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 석유 수익 전액을 정부연금기금(GPFG)에 넣고, 그해 지출은 펀드 실질수익률 3% 범위 안에서만 허용했다. 기금은 해외 자산에 투자되어 국내 인플레이션을 막고, 재정준칙으로 정치권이 돈줄을 직접 만질 수 없게 만들었다. 석유를 예산 밖에 가둔 것이다.

칠레는 구리 가격 변동을 예산에서 제거했다. 구조적 재정수지 규칙하에서 구리의 장기 평균가격으로 수입을 계산하고, 초과 수익은 경제·사회안정화기금(ESSF)에 적립했다. 정권이 바뀌어도 "가격이 아니라 규칙이 예산을 결정한다"는 틀이 대체로 유지되며 재정 안정성을 확보했다.

보츠와나는 다이아몬드로 내전을 피한 희귀한 사례다. 정부와 드비어스(De Beers)의 50:50 합작 구조로 수익과 권한을 제도화했다. 수익은 세금과 배당 형태로 제도화된 경로를 통해 예산에 귀속되고, 그 재원은 인프라와 교육에 투입되었다. "다이아를 전리품이 아니라 제도수입으로 만들었다"는 단 하나의 차이가 이 나라를 살렸다.

알래스카는 석유를 국민의 몫으로 고정했다. 1976년 헌법에 영구기금(Permanent Fund)을 명문화하고, 로열티 소득을 투자해 그 이익 일부를 주민에게 매년 배당했다. 이 제도 덕분에 정치권이 석유 수익을 쉽게 약탈할 수 없게 되었다.

이들 성공 사례는 여섯 가지 공통 장치를 가졌다. 재정준칙, 예산 격리, 해외자산 흡수, 독립 운용, 투명성·감사, 사회적 정당성이다. 이 체계가 자원을 '정치의 쌀독'이 아니라 '국가의 자본'으로 바꿨다.

자원은 땅속에 있지만, 국부는 예산서와 규칙 속에 있다. 결국 잘 사는 나라와 망하는 나라를 가르는 것은 자원의 매장량이 아니라 '자원수익을 얼마나 제도로 가둘 수 있는가'이다. 자원을 다루는 능력, 그것이 진짜 국부다.

에너지전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모두에게 이 교훈은 공통적으로 적용된다. 청정에너지·수소와 핵심광물 자원이 풍부한 나라는 물론, 남의 자원에 의존하는 나라라도 그 자원을 제도화하고 투명하게 운용할 역량을 갖춘 곳만이 새로운 부와 기술 주권을 손에 쥐게 된다.
자원 빈국인 한국의 과제도 마찬가지다. 더 많은 광산을 확보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해외 자원과 공급망에서 발생하는 수익과 위험을 통제할 규칙과 기금의 틀을 얼마나 정교하게 설계하느냐, 그것이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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