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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우의 에너지 톺아보기] 성리학에 목숨을 걸던 나라, 에너지는?

이한우 울산테크노파크 에너지기술지원단장(국제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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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우 울산테크노파크 에너지기술지원단장(국제정치학 박사)

조선 선비들이 성리학에 매달렸던 이유는 그것이 단순한 학문이 아니라 국가 운영의 원리였기 때문이다. 문제는 세계가 변했을 때 그 사유의 틀을 바꾸지 못한 데 있었다.

지금 우리의 에너지 논쟁을 보면 유사한 구도가 반복된다. 재생에너지는 선이고 원자력은 악이라는 이분법, 환경은 정의이고 산업은 탐욕이라는 프레임이 굳어졌다. 이 틀 안에서 비용과 공급망, 안보를 이야기하면 시대착오로 취급받는다.

30년 전 신재생에너지가 대안으로 부상했을 때부터 그런 우려는 있었다. 산업 기반 없는 에너지 전환은 거대한 소비 시장만 만들고 공급자에게 종속될 수 있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태양광이 이를 보여준다.

설치 숫자는 빠르게 늘었지만 잉곳, 셀, 패널 제조와 핵심 소재, 운영 기술의 주도권은 대부분 해외에 있다. 에너지 전환은 했지만 산업 주도권은 확보하지 못했다.

이 경험은 특정 기술의 실패가 아니라, 전략 없이 추진된 전환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청정수소는 태양광의 운명을 이어갈 다음 산업 아닐까 하는 우려의 대상이다. 전력 저장과 산업 연계 매개체로 주목을 받고 있지만 더 심한 종속을 낳을 가능성도 함께 안고 있다.

수소는 단순한 연료가 아니다. 가격 체계, 품질 인증, 운송·저장 인프라가 결합된 시스템이다. 생산 기술 고도화만으로는 시장이 열리지 않는다.

기준가격과 장기계약 구조, 국제 인증 체계가 함께 설계되지 않으면 수소는 천연가스와 석유와 태양광을 이어갈 또 하나의 수입 에너지원에 그친다. 태양광이 설비 종속을 낳았다면, 수소는 에너지 구조 전체를 종속시킬 수 있다.

한국은 수소차 기술은 앞서 있지만 생산·유통 체계의 표준과 가격 결정권은 여전히 해외에 있다. 에너지 전환의 무게중심이 기술에서 제도와 구조로 옮겨가고 있다는 점을 직시해야 하는 이유다.

해상풍력은 이러한 문제를 더욱 분명하게 드러내 보여준다. 해상풍력은 그저 새롭게 개발된 청정전력 발전 설비가 아니다. 대규모 첨단 해양 구조물이며 항만, 설치선, 유지보수, 통신 체계를 동반하는 종합 인프라다.

바다는 현대사회에서 비어 있는 공간이 아니다. 적극적으로 사용하지 않으면 먼저 사용하는 쪽의 영유권 주장에 대응이 어려운 공간이 된다.

해상풍력의 핵심은 전력 단가의 문제가 아니라 해양 공간을 누가, 어떻게 관리하느냐의 문제다. 유럽이 이를 북해 공간 전략의 일부로 접근하는 이유다. 전력 정책이 곧 공간 전략이 되는 시대에 진입한 것이다.

SMR을 포함한 원자력도 마찬가지다. 찬반 논쟁에 머물 시간이 없다. 핵심은 배치 전략이다. 산업단지의 안정적 전원, 데이터센터의 24시간 전력 공급, 수소 생산용 열원으로 결합될 때 의미가 있다.

단순히 기저 전원 논쟁으로 접근하면 또 하나의 기술 도입 논쟁으로 귀결된다. 미국에서 구글,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가 AI 데이터센터 전원으로 원전 재가동과 SMR에 투자하는 이유는 환경이 아니라 경쟁력 때문이다.

모든 논쟁의 중심에는 단위비용이 있다. 그러나 단위비용은 기술만의 문제가 아니다. 산업 규모, 내수 시장, 금융 지원, 규제 체계, 공간 전략이 함께 작동한 결과다. 어떤 나라는 비용을 비교하고, 어떤 나라는 비용을 설계한다.

중국의 태양광 패널 가격이 낮은 것도 대규모 내수 시장과 장기 금융, 전방위 산업 육성이 결합된 결과다. 한국의 낮은 국산 패널 사용률은 가격 경쟁의 문제가 아니라 산업 전략 부재를 보여준다. 비용은 결과이지 출발점이 아니다.

지금 국제질서는 격랑 속에 있다. 전쟁이 끝난 자리에 남는 것은 에너지와 산업, 공급망의 재편이다. 러시아 가스에 의존했던 유럽의 충격, 원자력 비중이 높은 프랑스의 상대적 안정성,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은 에너지가 명백한 안보 변수임을 보여준다.

에너지 자급률 3%, 전력의 대부분을 수입 연료에 의존하는 한국에서 에너지 전환은 환경 담론이 아니라 산업 생존의 문제다.

조선이 무너진 이유는 성리학이 아니라 그것을 현실에 맞게 업데이트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에너지 전환도 마찬가지다. 태양광, 수소, 해상풍력, 원자력은 모두 수단이다. 목적은 종속이 아닌 주도, 소비가 아닌 설계다.

에너지는 선악의 문제가 아니다. 생존과 전략의 문제다. 지금 이 질문을 회피한다면, 대가는 전기요금이 아니라 국가의 선택지로 돌아올 것이다.

성리학에 목숨을 걸던 나라의 진지함으로, 지금 우리는 에너지 전략을 다시 설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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