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확대보기그런데 퇴근길, 지갑이 다시 열리는 순간이 있다. 비싸다고 소문난 디저트나 특급 호텔 라운지의 한정 메뉴 앞에서다. 하루 종일 아껴온 끝에 “오늘 하루의 보상”이라며 결제를 누르는 장면은 이제 낯설지 않다. 언뜻 모순처럼 보이지만 지금의 소비자들에게 이는 불황을 통과하는 방식이다.
이제 소비는 단순히 ‘무엇을 사느냐’가 아니라 ‘어디에 가치를 두느냐’의 문제로 바뀌었다. 모든 곳에 지갑을 열 수 없는 시대다. 생필품에서는 거품을 최대한 걷어내고 초저가 채널에서 합리성을 끝까지 챙긴다. 대신 그렇게 확보한 여력은 내가 진짜 가치를 두는 ‘단 하나의 경험’에 집중한다. 지갑을 여는 방식보다 지갑을 닫는 기준이 더 정교해진 셈이다.
이런 흐름을 타고 유통가의 초저가 경쟁도 한층 치열해졌다. 대표 주자인 아성다이소는 2024년 매출 3조9689억 원을 기록하며 ‘4조 원 문턱’까지 올라섰고, 화장품·건강기능식품·의류·생활가전 등으로 상품군을 넓히며 고객 유입을 키우고 있다.
이에 대형 유통사들도 초저가 전략을 내세우고 있다. 이마트는 1000~5000원대 균일가 생활용품 존인 ‘와우샵’을 내놨고, 롯데마트는 1000원 이하 가격대의 자체상표(PB) 상품을 100여 종까지 늘렸다.
문제는 그 사이, ‘적당한 만족’을 제공해온 중간 지대가 흔들리고 있다는 점이다. 가격으로도 경험으로도 뚜렷한 이유를 만들지 못하는 브랜드들은 소비자의 장바구니에서 자연스레 밀려난다. 애매한 선택지는 점점 설 자리가 좁아진다.
이 흐름을 과소비나 인색함으로 단순 규정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불황 속에서도 삶의 질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선택과 집중’에 가깝다. 유통업계가 들여다봐야 할 것은 고객의 소득만이 아니다. 그들이 무엇에는 기꺼이 지갑을 열고, 무엇에는 단호하게 선을 긋는지 이미 바뀐 소비 지도를 읽어내야 한다.
황효주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hyojuh@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