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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우의 에너지 톺아보기] 연료전지는 수전해와 일란성 쌍둥이 기술이다

이한우 울산테크노파크 에너지기술지원단장(국제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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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우 울산테크노파크 에너지기술지원단장(국제정치학 박사)
수전해가 재생전기로 물을 갈라 수소를 만드는 기술이라면, 연료전지는 그 수소를 이용해 전기와 열을 꺼내 쓰는 기술이다.
두 기술은 한 생태계 안에서 서로의 존재를 완성시키는 일란성 쌍둥이이다. 수전해가 ‘생산’이라면, 연료전지는 ‘활용’이다. 어느 한쪽을 억누르면 다른 한쪽도 성장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정책 현장에서는 “그린수소를 당장 쓰지 않는다”는 이유로 연료전지의 지위를 낮추면서, 동시에 “그린수소가 없어도 수소 전소(全燒) 터빈으로 대규모 발전을 하라”는 상반된 신호를 보낸다. 공급 현실, 기술 성숙도, 정책 목표가 서로 어긋난 결과다.

국제에너지기구(IEA)의 최신 통계는 이 불균형을 명확히 드러낸다. 2030년 전 세계 저탄소 수소 생산 전망은 불과 1년 사이에 25% 하향 조정되었고, 실제 투자 확정(FID) 비중은 전체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계획은 많지만, 실질적 투자는 지지부진하다.
'없는 수소'를 전제로 한 발전 의무만으로는 시장이 서지 않는다. 정책이 현실과 괴리될수록 기업은 투자 시기를 늦추고, 산업 생태계는 불안정해진다. 이 단순한 진실을 인정하지 않으면, 한국의 수소경제는 추진력이 아니라 모순으로 멈출 것이다.

정책은 현실 위에서 출발해야 한다. 첫째, 국내 자급 25%를 명시해야 한다. 청정수소 총수요의 일정 비율을 국내에서 생산하도록 법제화하는 것은 에너지 안보의 기본이다. 해외 수입선이 끊기면 산업이 정지한다.

위기 때 버틸 내재적 생산 능력을 확보하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국가적 의무다. 유럽연합(EU)이 2030년까지 1,000만 톤 자급과 1,000만 톤 수입이라는 ‘10+10Mt’ 전략을 세운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한국도 청정수소 수요의 최소 4분의 1은 반드시 국내에서 조달하겠다는 목표를 선언해야 한다.

둘째, 재생에너지·수전해 커플링을 제도화해야 한다. 재생전력의 확대가 전해조 가동으로 직접 이어지도록 제도적 연결고리를 만들어야 한다. 이렇게 하면 재생전력의 변동성을 흡수하고, 전력망 투자 부담을 동시에 줄일 수 있다.
유럽의 REDⅢ와 RFNBO 규정이 산업용 수소의 42%를 그린수소로 채우도록 의무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전해조는 재생전력의 완충기이며, 재생전력은 수전해의 동력원이다. 어느 한쪽만 키워서는 에너지 전환이 완성되지 않는다.

셋째, 연료전지를 분산형 ‘고품질전력+열’의 주력 자원으로 재정의해야 한다. 데이터센터, 스마트팜, 도심 열수요, 연안선박, 무가선 트램 등 부하 인접 수요처에 연료전지를 배치하면 송전망 증설 압력을 낮추고, 전력 품질을 개선할 수 있다.

이는 단순한 분산전원이 아니라, 효율적이고 청정한 에너지 공급 체계의 근간이다. 대규모 그린수소가 본격화되기 전, 연료전지는 그 과도기를 안전하게 이어줄 ‘현실적 다리’이자 ‘검증된 교두보’이다.

넷째, 수요를 선포하고 공급자를 줄 세우는 시장 설계가 필요하다. 미국은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통해 탄소강도 4kgCO₂e/kgH₂ 이하 수소에 최대 3달러의 세액공제를 제공하며 시장 질서를 재편했다. 명확한 기준과 인센티브가 시장을 움직인다.
한국도 탄소강도 기반의 벤치마크(BM) 가격제와 차액정산(CfD)을 도입해야 한다. 명확한 목표와 보상 체계가 있을 때 글로벌 공급자는 가장 신뢰할 수요처인 한국으로 몰려온다.

다섯째, 조선·해운 인프라를 전략 지렛대로 삼아야 한다. EU의 10+10Mt 전략은 대륙 간 해상운송을 전제로 한다. 한국 조선업은 이미 암모니아·액화수소 화물창, 벙커링, 크래킹·혼소 기술에서 세계를 선도하고 있다.

이 기술력이 ‘수요–운송–저장’ 전 주기를 잇는 한국형 표준으로 발전한다면, 국제 수소 공급망의 관문을 한국이 쥘 수 있다. 조선업은 단순한 수출 산업이 아니라, 수소경제 시대의 전략 인프라이다.

검증되고 공유된 지식 위에 정책을 세워야 한다. 수전해와 연료전지는 경쟁 관계가 아니라 공진(共進) 관계이다. 연료전지의 고효율·고신뢰성은 수소 사용처를 넓혀 생산 유인을 높이고, 수전해의 성숙은 연료전지의 연료 생태계를 두텁게 만든다. 쌍둥이의 어느 손도 놓아서는 안 된다.

정리하면, 국내 25% 자급, 재생·수전해 커플링, 분산형 연료전지 확대, 탄소 집약도 기반 인센티브와 장기계약, 조선·해운 인프라 연계의 다층 로드맵이 한국형 해법이다.

이것이야말로 에너지 안보를 강화하고, 산업을 키우며, 기후 리더십을 확보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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