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이 한국에 대한 25%의 상호 관세를 7월 8일까지 유예한 뒤 ‘7월 패키지’ 마련을 위한 장관급·실무자급 협의가 계속되고 있다. 한·미 양국은 한국의 6·3 대선 일정을 고려해 미리 협상의 틀을 마련한 뒤 한국의 새 정부가 출범하면 최종 타결을 한다는 데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미국은 현재 한국을 포함해 19개국과 동시다발로 관세 협상을 하고 있다. 미국이 시한 내에 이들 19개국과 모두 협상을 타결할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스콧 베선트 재무부, 하워드 러트닉 상무부 장관은 협상 시한 내 타결이 안 되는 국가에 대해서는 일방적으로 미국이 지난 4월 2일 ‘해방의 날’에 발표한 관세를 그대로 적용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6일(현지 시각) 방영된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한국은 우리와 합의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난 모두와 합의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최근 브리핑에서 “(협상) 기한을 못 맞추면 7월 9일 자로 25% 관세가 부과된다”면서 “우리는 그 전날까지도 합의해 이를 막아야 하는 상황이어서 시한을 맞추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안 장관은 “미국도 구태여 협의를 지연할 필요가 없는 상황이라 템플릿을 만들어 본격적으로 협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대선전에서 부동의 선두를 달리는 이재명 후보와 그의 통상 참모진은 협상 시한 연기 쪽에 무게 중심을 두고 있다. 6·3 대선에서 승리해 그다음 날 새 정부가 출범하면 협상 시한까지 약 1개월밖에 시간이 없는 ‘특수 사정’을 미국이 양해해 달라는 것이다.
이 후보의 외교안보 보좌관 자격으로 김현종 전 국가안보실 2차장이 지난 8일 백악관에서 트럼프 대통령 정부의 고위 당국자들과 회동했다. 김 보좌관은 면담이 끝난 뒤 기자들에게 “관세 유예가 7월 8일 종료되지만 협상에 시간이 더 필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미국 측 인사가 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고 전했다.
한국의 차기 대통령이 관세 협상 타결 등을 위해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서두르는 게 좋을지, 아니면 늦추는 게 좋을지는 한국 새 정부의 대미 협상력에 달려 있다. 새 정부가 미국 측과 속전속결로 협상안을 마련한다면 한·미 정상회담은 빠를수록 좋다. 그렇지만 양측의 틈이 좁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차기 대통령이 서둘러 트럼프 대통령과 마주 앉았다가는 낭패를 볼 수 있다.
지난 21일 백악관 오벌오피스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만난 시릴 라마포사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은 '매복 공격'을 당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회담 시작 전 공개 면담장에서 남아공의 백인 농장주들이 학살당하고 있다며 미리 준비한 비디오 영상을 재생했다. 이 광경은 전 세계에 생중계됐다. 지난 2월 백악관을 찾았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도 종전 해법을 두고 트럼프와 설전을 벌이다가 사실상 쫓겨났었다.
외교가에는 '실패한 정상회담은 없다'는 말이 있다. 사전에 철저히 회담 준비를 하기에 모든 정상회담은 성공으로 끝나게 마련이다. 그러나 이 말이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그와의 정상회담은 기회가 될 수도 있지만, 참사로 끝날 수도 있다. 한국 차기 대통령과 트럼프 간 회담의 성패는 전적으로 관세 협상을 포함한 사전 준비에 달려 있다. 회담 ‘시점’이 아니라 ‘내용(substance)’이 관건이다.
국기연 글로벌이코노믹 워싱턴 특파원 ku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