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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렌즈] 韓·美, 입법·사법·행정 3권 충돌 '평행 이론'

국기연 글로벌이코노믹 워싱턴 특파원
국기연 글로벌이코노믹 워싱턴 특파원
평행 이론은 서로 다른 시공(時空)에서 일어난 사건이 같은 패턴으로 나타나는 현상을 말한다. 요즘 평행 이론처럼 한국과 미국에서 속성이 매우 비슷한 일이 동시에 벌어지고 있다.
한국에서는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탄핵, 대선 과정에서 민주주의의 토대인 입법·사법·행정의 삼권분립 제도가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윤 전 대통령은 비상계엄으로 더불어민주당이 장악한 국회를 무력화하려다가 실패했다. 민주당 등 야당이 주도권을 쥔 국회는 계엄을 제압한 뒤 그 여세를 몰아 조희대 대법원장이 이끄는 사법부 길들이기에 나섰다.

미국에서는 의회를 손아귀에 넣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대법원과 사법 시스템에 정면으로 도전하고 있다. 그는 자기 정책에 제동을 건 법원의 판결 이행을 보란 듯이 거부하면서 해당 판사 탄핵 으름장을 놓고 있다. 일부 민주당 의원들은 그런 트럼프 대통령 탄핵을 추진하다가 수적 열세를 의식해 이를 미뤄두고 있다. 내년 말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상원과 하원의 다수당을 차지하면 트럼프 대통령이 탄핵 심판대에 설 수 있다.

한·미 양국에서 3권이 병립하는 것이 아니라 각기 권한을 총동원하는 힘 대결을 하고 있다. 한국에서 더불어민주당이 14일 조희대 대법원장과 대법관·판사 등에 대한 청문회를 강행했다. 국회가 사법부의 재판을 검증하는 것은 삼권분립의 원칙에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게 중론이다.
대법원이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 사건에 대한 신속한 재판을 한 것이 대선 개입이라는 게 민주당 주장이다. 민주당은 이제 조 대법원장에 대한 탄핵, 사퇴 압박으로 사법부의 독립성을 위협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4일 NBC뉴스와 한 인터뷰에서 대통령 임기 동안 헌법을 준수할지 묻는 말에 "모르겠다"고 답변했다. 미국 연방수사국(FBI) 지난달 말 이민 당국의 체포를 피해 도망치는 미등록 체류자를 도왔다는 이유로 위콘신주 밀워키 지방법원의 해나 듀건 판사를 체포했다.

워싱턴DC 연방 지법의 제임스 보스버그 판사는 트럼프 정부가 일부 외국인을 엘살바도르 소재 수용 시설로 이송하는 절차를 중단하라는 자신의 지난달 명령을 일부러 무시했다고 경고 메시지를 보냈다. 트럼프 대통령은 보스버그 판사 탄핵 위협으로 맞섰다. 미국에서 대법관을 비롯해 연방법원 판사는 종신직으로 스스로 물러나거나 의회 탄핵으로 파면되지 않는 한 사망할 때까지 재직한다.

보수파 존 로버츠 미 대법원장은 12일 조지타운대 법과대학원 졸업식 연설에서 트럼프의 이름을 거명하진 않았으나 법치주의가 위협받고 있다고 비판했다. 로버츠 대법원장은 “역사적으로 법원은 분명히 많은 실수를 범했고, 그런 판결에 대해서는 비판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법관에 대한 인신공격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진보 성향의 커탄지 브라운 잭슨 대법관은 최근 연설에서 트럼프‘방 안의 코끼리(elephant in the room)에 비유했다. 이 말은 모두가 잘못됐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말을 꺼냈다가 초래위험이 두려워 아무도 먼저 말하지 않는 심각한 사안을 뜻한다. 커탄지 대법관은 “사법부에 대한 위협과 괴롭힘은 민주주의에 대한 공격이고, 이는 헌법과 법치주의를 훼손하는 행위”라고 잘라 말했다.

한·미 양국에서 동시에 전개되는 입법·사법·행정 3권 충돌의 밑바닥에는 정치 양극화와 사생결단식 대결 구도가 자리 잡고 있다. '전부 아니면 전무'식의 싸움판이 벌어지다 보니 정치 지도자와 정당이 헌법과 법치주의까지 무시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한국이 미국에 앞서 이런 퇴행을 막으려면 깨어있는 유권자들이 6·3 대선에서 누가 사회통합 적임자인지를 최우선 선택의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국기연 글로벌이코노믹 워싱턴 특파원 kuk@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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