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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 향기] 한라산 백록담에 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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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훈 시인
제주에 다녀왔다. 어디론가 떠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꽃바람 부는 3월, 제주에 갈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다. 나이 들수록 하고픈 일이 많아진다. 그것은 내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는 걸 깨닫기 시작하면서 생겨난 조급증과 지금 하지 않으면 영원히 할 수 없을 것 같은 체력의 한계를 느끼는 나이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예전에도 한라산 등반을 몇 번인가 시도한 적이 있었지만 매번 성공하지 못했다. 어느 때는 기상악화로 인한 입산 통제로, 어느 때는 시간이 나지 않아 제주에 갈 수 없었다. 다행히 또 한 번의 기회가 찾아왔다. 내가 속한 숲 모임에서 한라산 등반을 하기로 한 것이다.

3박4일의 제주 일정 중에 한라산 등반을 하기로 한 날은 운 좋게도 날씨가 좋았다. 새벽에 일어나 두툼한 방한복과 아이젠과 핫팩까지 챙겼는데 기온은 따스했고 하늘은 맑았다. 관음사 탐방로와 더불어 한라산 백록담을 오를 수 있는 한라산 동쪽의 성판악 탐방로를 택해 산행을 시작했다. 한라산 탐방로 중에 가장 긴 9.6㎞로 편도 4시간 30분이 소요된다고 했다.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성판악관리소(해발 750m)에서 출발했다. 속밭을 지나 사라오름 입구에 다다르자 탐방로와 응달진 곳마다 희끗한 잔설이 보이기 시작했다. 탐방로는 대체로 완만한 경사를 이루어 큰 무리는 없지만 눈 때문에 아이젠을 착용하고 걸어야 했다. 탐방로 5.8㎞ 지점에 있는 사라오름으로 향하는 길을 따라가면 산정호수와 한라산의 멋진 경관을 볼 수 있는 사라오름 전망대가 있다는데, 체력 안배를 위해 포기한 것이 못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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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판악에서 백록담까지가 9.6㎞인데 진달래밭 대피소까지가 7.3㎞다. 그리고 여기서부터 백록담을 향한 가파른 본격적인 산길이 이어진다. 그리고 백록담을 만나기 위한 마지막 가파른 계단 길에서 사방으로 펼쳐진 너른 벌판이 나타난다. 길고도 지루한 숲길을 뚫고 나오면 그렇게 드디어 한라산의 진경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진달래밭 대피소에서 잠시 다리쉼을 하며 간식으로 체력보강을 했다.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길은 더욱 가팔라진다. 한라산의 희귀종 구상나무 군락지엔 죽어서도 꼿꼿함을 잃지 않는 고사목들이 즐비해 놀라운 아름다움을 연출한다. 세계유산본부 한라산연구부의 조사에 따르면 2017년 한라산국립공원 내 구상나무의 개체 수는 30만7388그루. 그 후 4년 사이 1만3000여 그루가 고사했다고 한다. 원인은 가뭄과 태풍의 증가 등 기후변화 때문이라고 한다.

드디어 한라산 정상, 백록담(1947m)에 올랐다. 모든 것이 발 아래 펼쳐져 있다. 이토록 시원한 눈맛을 어디서 볼 수 있을까. 다리는 무거워도 마음은 새털처럼 가벼워져 하늘을 날 것 같다. 희끗희끗한 잔설을 묻힌 백록담의 분화구는 물이 말라 있었지만 볼수록 경이로웠다. 백록담이 마른 데는 여러 이유가 거론되지만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기후변화라는 게 전문가들의 거의 일치된 진단이다. 기후 위기는 제주를 빚은 설문대할망도 어쩌지 못하는 지경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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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란이 풍기는 향기, 꾀꼬리 서로 부르는 소리, 제주 휘파람새 휘파람 부는 소리, 돌에 물이 따로 구르는 소리, 먼 데서 바다가 구길 때 솨아 솨아 솔 소리, 물푸레 동백 떡갈나무 속에서 나는 길을 잘못 들었다가 다시 칡넌출 긔여간 흰 돌바기 고부랑길로 나섰다. 문득 마주친 아롱점말이 피하지 않는다.” -정지용의 시 '백록담' 일부-

문청 시절, 정지용 시인의 ‘백록담’을 읽으며 상상으로 그려보던 풍경들은 어긋난 계절 탓에 만날 수 없어 아쉬웠다. 비록 풍란의 향기를 맡을 순 없었지만, 제주 휘파람새 소리와 바람 소리는 들을 수 있었으니 그것만 해도 얼마나 큰 행운인가. 한라산의 기운을 듬뿍 받았으니 올봄은 유난히 활기차고 화사할 것만 같다.


백승훈 사색의향기 문학기행 회장(시인)
사진없는 기자

백승훈 사색의향기 문학기행 회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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