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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 향기] 우수절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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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훈 시인
우수절 새벽, 비가 내렸다. 눈이 녹아 비가 된다는 절기 우수(雨水)가 되면 겨우내 꽁꽁 얼어붙은 채 침묵하던 계곡물도 다시 소리 내어 흐르기 시작한다. “우수 경칩엔 대동강 물도 풀린다”는 말도 있듯이 우수절이 되면 세상은 겨우내 답답하던 마음의 빗장을 풀고 아직 도래하지 않은 봄을 가슴에 들이며 희망을 꿈꾼다. 햇빛을 받은 앞산 솔잎에도 더 푸른 생기가 도는 듯하고, 밤이면 북쪽으로 날아가는 기러기 울음소리가 밤하늘에 메아리친다. 마른 검불 사이로 파릇한 새싹이 간간이 보이고 꽃나무 가지에는 성급하게 부풀어 오른 꽃망울이 꽃 몸살을 앓는 것도 이 어름이다.

“조용히 잠결을 흔들고/장지 밖 봄비소리/한겨울 내 담통을 풀며/우수절 밤비가 내린다/강산은 관절을 펴고/물문들이 열리겠다/이 밤, 당신 말씀에/흥건히 적심 입어/거듭나고 싶어라/내 심령 덩굴마다/뿌리신/씨앗 낱낱이/알곡으로 맺고 싶다.” 새벽잠에서 깨어나 창밖으로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이영도 시인의 ‘봄비’를 읊조리다가 나도 모르게 크게 한 번 기지개를 켜 보았다. 겨우내 웅크리고 살았던 탓인지 관절에서 우두둑 소리가 났다. 해빙 무렵, 마치 고향의 저수지에서 들려오던 얼음에 금 가는 소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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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바뀔 때마다 우리는 수많은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지나고 보면 계획한 대로 이루어진 일은 그리 많지 않다. 모든 일이 계획한 대로만 이루어진다면 그보다 더 좋을 순 없겠지만, 계획은 계획일 뿐 살다 보면 어긋나고 틀어지는 게 세상사란 걸 자연스레 알게 된다. 원래 계획대로였다면 나는 지금쯤 제주도 한라산 등반을 하고 있어야 했다. 하지만 입산 허가를 받지 못하는 바람에 제주 여행은 어쩔 수 없이 3월로 미뤄지고 말았다. 그렇다고 지레 절망하거나 낙담할 필요는 없다. 기다려도, 기다리지 않아도 봄은 오는 것처럼 마음의 의지를 꺾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계획했던 그곳에 갈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자주 주저앉는 사람의 마음과 달리 계절의 순환은 한 번도 어긋난 적이 없다.

늘 봄은 기적처럼 찾아오지만 서두르는 법이 없다. 이상 기온으로 인해 어딘가에선 매화 소식도 들리고 친구들 SNS에는 성급하게 봄꽃들이 선을 보이기도 하지만, 진정한 봄은 내게 겨울과 작별할 시간과 자신을 맞이할 마음의 준비를 충분히 할 수 있도록 배려하며 다가온다. 봄꽃을 보기까지는 몇 번의 꽃샘추위가 남아있다는 것을 안다. 어쩌면 꽃이 피기까지 몇 번의 눈이 내릴 수도 있다. 겨울과 봄이 혼재한 시간은 앞으로도 얼마간 더 지속될 것이다. 섣불리 꽃샘바람이 맵다고 투정하지도 말고, 한낮의 햇볕이 따뜻하다고 쉬 긴장을 풀어서도 안 된다. 봄이 올 때까지 수시로 빙점을 오르내리는 변덕스러운 날씨 속에서 우리는 기다림과 인내를 몸으로 익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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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시화 시인은 “오늘은 나의 몫/ 내일은 신의 몫”이라고 했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아직 오지 않은 봄은 내일과 같아서 우리의 몫이 아닌 신의 몫이다. 그렇다고 내일을 포기하거나 체념할 필요는 없다. 봄이 오리란 굳은 믿음만 저버리지 않는다면 봄은 반드시 우리를 찾아올 것이며, 내일은 얼굴을 바꾸어 또 다른 오늘로 우리에게 올 것이기 때문이다. 아직 오지 않은 봄을 기다리느라 시간을 헛되이 보내는 것처럼 바보 같은 짓은 없다. 그보다는 봄 쪽으로 기우는 2월의 햇살을 온몸으로 받으며 뺨을 바람결과 하늘빛과 귓바퀴로 모여드는 물소리에 귀를 기울여 볼 일이다. 오롯이 오감으로 체득한 오늘의 기억들은 당신에게 가장 눈부시고 찬란한 봄을 선물처럼 안겨줄 것이다. 틀림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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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훈 사색의향기 문학기행 회장(시인)
사진없는 기자

백승훈 사색의향기 문학기행 회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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