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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권’ 없인 유럽 못 간다…K배터리, 가격·성능 넘어 ‘탄소·데이터전’

내년 2월 배터리 여권 의무화…원료·탄소·성능 이력 디지털 관리
공급망 1차 데이터 검증이 관건…“K배터리 우위 아닌 시장 진입 기본선”
CATL도 원가·물량 넘어 저탄소 대응…재생에너지·하이니켈 결합 중요
EU 집행위원회가 공개한 디지털제품여권(DPP) 운영 개념. 배터리에 연결된 QR코드를 통해 제품 관련 정보를 디지털로 확인할 수 있다. 자료=EU 집행위원회이미지 확대보기
EU 집행위원회가 공개한 디지털제품여권(DPP) 운영 개념. 배터리에 연결된 QR코드를 통해 제품 관련 정보를 디지털로 확인할 수 있다. 자료=EU 집행위원회
가격과 성능으로 겨루던 배터리 시장에 데이터 검증 경쟁이 붙었다. 유럽연합(EU)의 배터리 여권 도입을 앞두고 공급망 정보를 추적하고 증명하는 능력이 새 경쟁 기준으로 떠오르고 있다.
20일 업계에 따르면 EU는 내년 2월부터 전기차용 배터리와 경량운송수단(LMT) 배터리, 용량 2킬로와트시(kWh)를 초과하는 산업용 배터리에 전자기록 형태의 배터리 여권을 의무화한다. EU 집행위원회는 디지털제품여권(DPP) 등록시스템을 구축 중이며 이달 말 테스트 환경과 지원 체계를 가동할 예정이다.

배터리 여권은 배터리 한 개에 ‘디지털 신분증’을 부여하는 제도다. 제조사와 생산지 등 기본 식별정보와 성능·내구성, 사용 정보를 디지털로 연결하고 탄소발자국과 재활용 원료 비율, 공급망 실사 등은 적용 시점에 맞춰 추가된다.

관건은 공급망 전체에서 검증 가능한 데이터를 확보하는 것이다. 리튬·니켈·코발트 등 광물의 채굴과 정·제련부터 양극재·음극재, 셀과 팩 생산까지 단계별 정보를 산정·검증해야 한다. 협력사가 많고 공급망이 여러 국가에 걸쳐 있을수록 데이터의 출처와 정확성을 검증하는 부담도 커진다.
빙현지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배터리 업체들이 가장 부담을 느끼는 부분은 공급망에서 검증 가능한 1차 데이터를 확보하는 문제”라며 “어떤 데이터를 어떤 방식으로 연결하고 검증할지에 대한 세부 기준이 아직 확정되지 않은 부분이 있어 대응이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환경 규제의 문턱도 높아지고 있다. EU는 탄소발자국 신고와 등급 표시, 최대 탄소발자국 기준 등을 단계적으로 적용할 예정이다. 제조 과정에 사용한 전력의 탄소집약도까지 영향을 미치는 만큼 재생에너지 조달 능력도 수출 경쟁력과 맞물릴 전망이다.

국내 배터리 3사도 대응에 나섰다. LG에너지솔루션은 글로벌배터리연합(GBA)의 배터리 여권 시범사업에 참여해 협력사 데이터를 수집하고 모의 시스템을 구축했다. SK온은 올해 2월 배터리 부품업체와 함께 플랫폼 실증에 참여해 부품사-배터리 제조사-완성차 업체 간 데이터 교환을 시험했다. 삼성SDI도 GBA에 가입해 배터리 여권 논의에 참여하고 있다. 배터리 여권 대응도 자체 시스템 구축에서 공급망 전체의 데이터 연계·검증 단계로 확장되고 있다.

다만 배터리 여권 도입을 K배터리만의 기회로 보기는 어렵다. 중국 CATL도 생산·원가 경쟁력에 더해 탄소중립 생산시설과 데이터 관리 역량을 강화하고 있다. 한국은 석탄과 액화천연가스(LNG) 비중이 높은 전력 구조 탓에 국내 생산 배터리의 탄소발자국을 낮추는 데 부담이 있다.
빙 연구원은 “배터리 여권은 한국 업체의 차별화 수단이라기보다 시장에서 요구되는 기본 요건으로 자리 잡고 있다”며 “CATL도 물량과 최저원가뿐 아니라 탄소중립과 데이터 역량까지 밀어붙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 기업들은 재생에너지 조달을 확대하면서 하이니켈 등 기존 기술 경쟁력을 결합해 중국보다 빠르게 저탄소 배터리를 선점하는 전략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배터리 여권은 유럽 시장에 들어가기 위한 ‘입장권’에 가까워지고 있다. 저가와 물량을 앞세운 중국에 맞서 K배터리가 가격·성능에 저탄소 생산과 데이터 신뢰성까지 더할 수 있느냐가 향후 유럽 수주 경쟁의 성패를 가를 전망이다.


이다현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dh2@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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