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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철금속 거목' 최창걸 고려아연 명예회장 별세…기업 성장에 헌신

최창걸 명예회장 숙환으로 6일 별세...향년 84세
고려아연 이끌며 비철금속 1위 기업으로 성장시켜
호주 SMC 설립 등 글로벌 사업 기반도 확대해
고(故) 최창걸 고려아연 명예회장. 사진=고려아연이미지 확대보기
고(故) 최창걸 고려아연 명예회장. 사진=고려아연
비철금속 제련 분야의 세계적 전문가이자 고려아연을 비철금속 최고 기업으로 성장시킨 최창걸 명예회장이 6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4세.
최 명예회장은 1941년 황해도에서 고(故) 최기호 고려아연 초대 회장의 6남 3녀 중 차남(5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1960년 경기고를 졸업한 뒤 서울대 상과대학 경제학과에서 학사 학위를, 이어 미국 컬럼비아대 경영대학원에서 MBA를 취득했다.

그는 1974년 고려아연을 창립한 이래 부친의 기업가 정신을 이어받아 회사를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글로벌 1위 비철금속 기업으로 성장시키는 데 헌신했다.

고려아연 설립부터 자금 확보 난항


최 명예회장이 고려아연을 세우며 내세운 목표는 '세계 최고의 아연 제련소'였다. 그러나 시작은 순탄치 않았다. 특히 자금 확보가 큰 걸림돌이었다. 그는 국민투자기금과 산업은행 등 국내 기관에서 자금을 빌리고, 국제금융공사(IFC)를 통해 해외 자금 조달에도 나섰다.

IFC는 사업 자금으로 7000만달러(당시 약 700억원)가 필요하다고 판단했지만, 최 명예회장은 5000만달러로도 충분하다고 설득했다. 또 턴키 방식(수주 업체가 완성된 시설을 넘겨주는 방식)이 아닌 직접 구매와 시공 방식을 택해 결국 4500만달러로 공사를 마무리했다. 초기 추산보다 500만달러를 절감한 셈이었다.

이후 그는 제련소 건설을 위한 마스터플랜을 준비했다. 온산 비철 단지 내에 제련소를 세울 때부터 기술 수준과 규모 면에서 세계 최고 수준을 목표로 했고, 대규모 아연 제련소 건설 경험이 부족했던 국내 현실을 고려해 기본계획과 공정 특허를 해외에서 도입했다.

공장 설립 이후에도 그는 기술 개발과 설비 투자에 적극 나섰다. 1980년부터 1992년까지 사장과 부회장 재임 시절에는 아연·연·동 제련 통합 공정과 DRS 공법의 연 제련 공장 착공, 아연괴 LME 등록 등을 통해 경쟁력을 강화했다.

고(故) 최창걸 고려아연 명예회장. 사진=고려아연이미지 확대보기
고(故) 최창걸 고려아연 명예회장. 사진=고려아연

회장 취임 후 해외 진출과 친환경 사업 확대


1992년 3월 회장직에 오른 최 명예회장은 '원칙에 어긋나는 일은 하지 말고 기본에 충실하자'는 신조 아래 고려아연의 성장에 매진했다. 아연·연 제련 공장을 지속적으로 증설했으며 호주에 아연 제련소 SMC를 설립해 글로벌 사업 기반을 확대했다. 또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과감한 투자에도 나섰다. 비철금속 세계 1위를 견인한 퓨머와 DRS공법, 친환경 제련소의 모범이 되고 있는 호주 SMC 등이 이런 최 명예회장의 뚝심이 빚어낸 결과였다.

그는 녹색경영을 실현하는 데도 앞장섰다. 아연 잔재를 환경친화적인 청정 슬래그 형태로 만들어 시멘트 원료로 판매하는 등 아연 잔재 재처리 기술을 상용화했다. 이 기술로 고려아연은 전 세계 아연 제련소들의 고민이었던 아연 잔재를 친환경적으로 해결해 세계적인 회사로 발돋움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2002년 명예회장으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뒤에도 회사 기술과 경영에 도움을 주었다. 환경친화 기술 등 첨단 신기술 개발에 매진함과 동시에 해외 자원개발과 희소금속 및 도시광산 사업 등 미래성장동력 확보와 자원 강국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했다. 자원 리싸이클링 전담 부서를 신설해 국내외에서 발생하는 산업용 자동차용 폐배터리, 폐PCB, 아연재 등을 적극적으로 수거해 원료로 사용하는가 하면 유가금속을 다시 회수함으로써 폐기물의 무분별한 처리를 막았다.
회사 관계자는 "최 명예회장의 지속적인 투자와 기술개발의 결과는 창업초기와 경영성과를 비교해 보면 아연 생산 능력은 연 5만t에서 65만t, 매출은 114억에서 12조원 수준까지 늘어났다"며 "시가총액은 최대 20조원에 육박하는 등 괄목할 만한 성장세를 이루었다"고 말했다.

소외된 이웃 돌보며 나눔 실천


최 명예회장은 아버지의 물고기를 잡아주는 일보다 물고기 잡는 법을 알려주라는 가르침을 이어받아 지역사회와 소외 계층을 위해 나눔을 실천했다. 1981년 명진보육원 후원을 시작으로 아동복지 분야에 꾸준히 애정과 관심을 쏟았으며, 많은 학교와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해 학업 중단을 막았다.

임직원들에게도 사회공헌 활동을 적극 권장했다. 고려아연 전 임직원 기본급 1% 기부하기 운동과 매칭그랜트를 통해 기부 문화를 확산시켰고, 회사 내 자원봉사회 활동에도 솔선수범해 임직원들의 귀감이 됐다.


김정희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h1320@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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