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주주 기망" vs 이 회장 "기망 의도 無"
삼성 기술력 위기 극복에 이재용 리더십 요구
2심 무죄면 사법족쇄 풀려…유죄면 '보폭 제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다음 달 3일 삼성물산-제일모직 부당합병과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부정 의혹에 관한 항소심 선고에 출석한다. 항소심 선고 결과가 앞으로 이 회장이 이끄는 삼성의 리더십 향배를 좌우할 전망이다. 삼성 기술력 위기 극복에 이재용 리더십 요구
2심 무죄면 사법족쇄 풀려…유죄면 '보폭 제한'
30일 법조계와 재계에 따르면 이 회장은 2월 3일 서울고등법원 형사13부(백강진 김선희 이인수 부장판사)가 여는 자신의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 사건 항소심 선고기일에 출석한다. 이 회장은 2015년 두 회사의 합병 과정에서 자신이 최대 주주로 있는 제일모직에 유리하게 합병 비율을 산정하기 위해 부정 거래와 시세 조종, 회계 부정 등에 관여한 혐의로 2020년 9월 검찰에 기소된 뒤 재판을 받아왔다.
검찰은 지난해 11월 25일 결심 공판에서 이 회장에게 징역 5년과 벌금 5억원을 구형했다. 검찰은 이 자리에서 “이 사건에서 피고인이 훼손한 것은 우리 경제의 정의와 자본시장의 근간을 이루는 헌법적 가치”라며 “합병 당시 주주 반발로 합병 성사가 불투명해지자 합병 찬성이 곧 국익을 위한 것이라며 주주들을 기망했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같은 날 최후진술을 통해 “(2015년 이뤄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간) 합병이 회사의 미래에 분명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며 “개인적 이익을 취하기 위해 주주들에게 피해를 주거나 투자자 속이거나 하는 등의 의도는 결단코 아니”라고 말했다.
다음 달 항소심 판결은 향후 이 회장의 경영 행보를 좌우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이 회장은 2022년 10월 삼성전자 회장 자리에 오른 뒤 “창업 이래 가장 중시한 가치가 인재와 기술”이라며 “세상에 없는 기술에 투자하고 성별과 국적을 불문하고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인재를 양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재판 결과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데다 기소 이후 총 100차례의 법원 출석에 시간을 들인 탓에 ‘사법 리스크’에 묶여 있었다.
이런 가운데 최근 세계 시장에서 기술 경쟁력이 뒤처질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돌기 시작했다. 반도체 사업은 휴대전화와 함께 이건희 선대 회장이 역점을 두고 투자해 삼성을 세계적 반열에 올려놓았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인공지능(AI) 시대 데이터 센터 등 각종 장치와 설비에 필요한 고대역폭메모리(HBM) 투자가 늦었던 탓에 SK하이닉스를 추격해야 하는 상황이다.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사업은 60%의 점유율로 압도적 1위를 차지하는데다 2나노미터 공정을 가장 먼저 개발한 TSMC에 뒤처졌다.
DS부문을 책임지는 전영현 부회장은 지난해 3분기 잠정 실적을 발표한 직후 이례적으로 투자자와 임직원에게 사과문을 내고 “시장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성과로 근원적인 기술 경쟁력과 회사의 앞날에 대해서까지 걱정을 끼쳤다”며 위기를 인정했다.
삼성의 위기극복 리더십은 다음 달 3일 항소심 선고에 따라 향배가 좌우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 회장이 원심에 이어 항소심에서도 무죄를 받으면 사법 리스크와 경영 공백 리스크가 사실상 해소된다. 원칙적으로 상고심은 사실관계를 따지지 않고 법리 적용과 해석, 재판 절차 등을 두고 재판을 진행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유죄 판결을 받으면 이 회장이 전면에 나서는 모습을 기대하기 어려워진다. 이 회장의 경영 보폭이 좁아진 채 전영현 부회장과 한종희 부회장(DX부문장), 정현호 부회장(사업지원TF장)을 중심으로 격랑을 헤쳐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 회장은 지난해 11월 25일 “많은 분들의 걱정과 응원을 접하면서 삼성에 대한 국민 기대가 크다는 사실 다시 한번 깨닫게 됐다”며 “삼성이 마주한 환경은 그 어느 때보다 녹록지 않지만, 이를 극복하고 앞으로 한 발 한 발 나아가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정승현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rn72benec@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