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U집행위원회는 2026년부터 일종의 ‘탄소 관세’를 부과하기에 앞서 올해 10월 1일부터 2025년 12월 31일까지 EU로 탄소 집약 제품을 수출하는 제3국 기업의 탄소배출량 보고를 의무화한다. 이 기간에는 별도 관세를 부과하지 않고, 보고가 올바른지 들여다본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EU 내에서도 제도를 처음 시행하는 만큼 다양한 방안을 검토하기 위해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하지만 예상한 수준의 수치가 명기되지 않으면 EU 측 향후 산정 방식을 결정할 때 강한 기준을 마련할 수 있으므로 첫 보고에 대한 반응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EU집행위가 한국 정부와 기업의 입장을 일부 반영했다는 점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코트라(KOTRA)는 EU가 CBAM의 입법 과정에서 탄소배출량 산정 방식이 생산 공정에 대한 가중평균 산정 방식에서 생산 공정별 내재 배출량 계산으로 변경한 것이 국내 기업의 우려가 반영된 것으로 해석된다고 평가했다. 다만, 보고 과정에서 국내 기업의 경영 정보가 불필요하게 노출될 우려가 있어 대표 수입상 또는 관세 대리인을 통해 일괄 보고하는 등의 보안조치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런 가운데 최근 미국도 민주당과 공화당 등 여야가 함께 EU와 유사한 탄소 국경세 도입을 위한 입법을 추진하고 있어 철강업계의 위기감을 고조시키고 있다. 미 상무부는 지난 2018년부터 철강 수입이 미국의 경제·국가 안보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고 철강 수출국에 적용할 수입 규제 권고 등을 담은 무역확장법 232조를 시행하고 있는데, 탄소 국경세까지 도입하면 대미 수출이 더욱 까다로워질 것으로 우려한다.
무리수를 둬서라도 EU와 미국이 탄소 국경세를 도입하려는 것은 결국 기존 규제가 실패했기 때문이다. 과거 철강 선진국이었던 EU와 미국은 패권을 한국과 중국, 일본 등에 빼앗기고 후진국으로 전락했다. 낙후한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덤핑,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 상계관세, 쿼터 등 통상 규제를 적극 활용해 외국산 철강 수입을 규제하고 있지만, 수입 물량 증가를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무엇보다도 고부가가치 철강재를 개발‧생산할 수 있는 기술과 인력이 없기 때문이다.
또 다른 국내 철강업계 관계자는 “CBAM 시행 예고 직후인 지난해부터 사내 TF를 운영하는 등 대내외 대응체계를 구축해 대비 중이며, 주도 TF를 바탕으로 민관 합동으로 대응하고 있다”면서 “회사의 밸류체인을 구성하는 파트너들과 충분히 소통해 우리 철강재를 사용하는 데 부정적인 영향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채명석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oricms@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