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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대신 받은 무기, ‘불곰사업’을 아시나요?

소련 붕괴 후, 러시아 정부가 경협차관 현물상환 합의
1차 불곰사업 통해 T-80전차 및 BMP-3 장갑차 들여와
2차 사업에서는 IL-103훈련기와 Ka-32A 헬기로 상환해
2013년 3차 사업 논의 중 러시아 확장정책에 논의 중단

서종열 기자

기사입력 : 2022-03-13 16:52

육군이 운용 중인 러시아제 T-80U 전차. 사진=육군 홍보동영상 캡처 이미지 확대보기
육군이 운용 중인 러시아제 T-80U 전차. 사진=육군 홍보동영상 캡처
우크라이나 침공한 러시아에 대한 제재가 본격화되면서 러시아의 재정상황이 급속도로 악화되고 있다.

13일 주요 외신들에 따르면 러시아는 오는 16일에서 20일을 전후로 '모라토리엄(채무 유예 선언)'을 선언할 것으로 보고 있다. 러시아가 모라토리엄을 발표하게 되면 국제 금융시장에는 또 다른 충격파가 올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나라 역시 러시아로부터 받아야 할 수출대금을 한동안 받지 못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사실 러시아는 과거에도 모라토리엄을 발표한 바 있다. 소비에트연방(옛 소련)이 붕괴되던 1990년대 초 소련의 후신으로 나선 러시아가 당시 모라토리엄을 선언한 바 있어서다. 당시 우리나라는 붕괴하기 전의 소련에 상당량의 경제차관을 제공한 상황이었는데, 결국 러시아가 이 차관 빚을 떠안았다. 러시아는 당시 차관을 갚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자금이 부족했고, 결국 일부 현물과 원자재로 빚을 갚아야 했다.

우리나라 국방사에서 일대 전기로 평가받고 있는 '불곰사업'이 바로 그것이다.

소련의 붕괴, 러시아의 현물출자


불곰사업은 러시아로부터 방산무기 등을 들여왔던 사업을 말한다. 우리나라가 소련에 제공했던 차관을 러시아가 정부가 현금과 원자재, 공산품 등으로 상환했다.

1990년 노태우 정부 당시 소련의 고르바초프 총서기가 냉정해제에 나서면서 우리나라는 소련과 수교를 맺었다. 이 때 우리 정부는 수교와 함께 소련이 요구했던 경제협력 차관 30억달러를 제공키로 결정했다.

하지만 1991년 예정됐던 차관 14억7000만달러를 소련에 보낸 상황에서 소련이 붕괴됐다. 당시 소련에 제공했던 차관 규모는 우리 정부가 보유하고 있던 외환보유고의 10%가 넘는 수준이었던 터라, 국내에서도 논란이 일었다.

1990년 노태우 당시 대통령은 고르바쵸프 당시 소비에트연방(당시 소련·현 러시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통해 수교를 맺었다. 사진=KTV 영상자료 캡처 이미지 확대보기
1990년 노태우 당시 대통령은 고르바쵸프 당시 소비에트연방(당시 소련·현 러시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통해 수교를 맺었다. 사진=KTV 영상자료 캡처


다행히 소련의 후신으로 러시아가 설립됐다. 당시 우리나라는 차관제공 과정에서 발행한 채권에 "국제법상 사라진 국가를 계승한 국가가 사라진 국가가 지고 있던 채무 상 의무를 가진다"고 명시해 놨다.

이에 따라 소련의 후신인 러시아연방이 채무상환 의무를 지게 됐고, 러시아 정부도 1993년 소련의 채무를 계승해 이미 제공됐던 차관을 현금은 3년 거치 5년 균등 분할해 상환하고, 소비재는 2년 거치로 전액 상환한다고 보증했다.

그러나 소련 붕괴 이후 독립국가연합들이 잇달아 홀로서기에 나서면서 채권상황 압박을 받던 러시아의 경제는 파탄 지경이었고, 이후 1995년에서야 현금 1910만달러와 알루미늄 1270만달러를 먼저 상환 받았다.

러시아 정부는 여전한 경제 상황으로 차관 상황에 어려움을 토로했고, 결국 우리 정부는 1995년 7월 현금 상환 대신 현물상환 협정을 체결했다. 이에 따라 러시아 정부는 1993년 만기 도래분인 원금과 연체 이자를 합쳐 4억5000만달러 규모의 부채를 원자재 및 방산물자 등으로 상환하기로 하고 1995년부터 1998년까지 계획에 따라 우리나라에 넘기기로 했다.

탱크와 맞바꾼 초코파이


불곰사업은 총 3차례에 걸쳐 진행됐다. 첫 번째 사업은 1995년부터 1998년까지 진행됐다. 경협차관 2억1400만달러를 상환키로 결정됐다.

제3기갑연단이 운용 중인 T-80UK(지휘형 전차). 사진=뉴시스이미지 확대보기
제3기갑연단이 운용 중인 T-80UK(지휘형 전차). 사진=뉴시스


러시아연방은 이때 우리나라에 다양한 방산물자를 제공했다. 대표적으로 ▲T-80U 전차 33대 ▲BMP-3 장갑차 33대 ▲메티스-M 대전차미사일 70문과 탄약 1250발 ▲이글라 휴대용 대공미사일 50문과 탄약 700발 등이 우리나라로 들어왔다.

당시 우리 군은 러시아연방의 방산물자를 받는 것에 거부감이 높았다. 우리 군이 요청했던 방산물자들을 러시아 정부가 거부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렇게 도입된 방산물자들에 대한 추가 공급 계획도 없어 향후 군수지원체계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도 있었다.

그러나 1차 불곰사업을 통해 들여온 T-80U가 사실상 러시아 연방군이 사용하는 시스템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주목을 받았다. T-80전차는 당시 러시아 군수공장이 이미 생산을 마친 제품들이었는데, 정부가 자금부족을 이유로 인수를 거부하다 결국 경협차관 상환용으로 국내로 보내졌다.

제1차 불곰사업을 통해 국내에 들어온 러시아제 BMP-3 장갑차. 사진=육군 홍보동영상이미지 확대보기
제1차 불곰사업을 통해 국내에 들어온 러시아제 BMP-3 장갑차. 사진=육군 홍보동영상


방산업계에서는 당시 러시아 정부가 T-80의 후속인 T-90을 주력전차로 결정한 상황이었기에 T-80을 가져올 수 있었던 것으로 분석했다.

과정이 어찌됐던 국내에 들어온 T-80U은 우리 군과 미군의 관심을 동시에 받았다. 당시 현대정공이 한대를 불하받아 완전해체에 나섰는데, 이때 우리 군은 물론, 미 본토의 연구진들이 모두 태평양을 건너와 참관했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현대정공(현 현대로템)은 당시 우리 군의 차세대 주력전차인 K-1A1전차를 생산하고 있었는데, T-80U에서 영감을 얻어 신형 전차 개발에 나선다. 이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K-방산의 선봉장으로 활약 중인 K-2 흑표전차다.

방산업계 관계자들은 T-80U는 자동장전장치와 가스터빈 방식의 파워팩이 특징인데, 이중 자동장전장치는 K-2 흑표와 K-9 자주포를 통해 구현됐다.

또한 러시아 정부는 T-80U의 철갑탄으로 '감손우라늄 분리 철갑탄'을 그대로 우리나라에 인계했다. 그 결과 우리 군은 우라늄탄을 비롯한 전차의 주포 제작 기술을 확보할 수 있었다는 분석도 있다.

제1차 불곰사업과정에서 러시아로 넘긴 제품들도 주목된다. 우리 정부는 러시아로부터 방산물자를 받는 대신 공산품을 러시아에 수출했는데, 당시 넘어간 제품들에 팔도 도시락 컵라면과 오리온 초코파이가 포함돼 있었다. 두 제품들은 이후 러시아 지역에서 국민간식으로 자리 매김하며 현재까지 러시아에서 높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잠수함 대신 훈련기와 헬기


1차 불곰사업 이후 우리 육군의 무기체계를 강화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됐다면 2차 불곰사업은 항공 전력이 수혜를 받았다. 2차 사업 과정에서 들여온 물품 중에 훈련기와 헬기 등이 포함됐기 때문이다.

러시아로는 1998년 8월 다시 한 번 모라토리움을 선언하면서 경협차관의 상환이 한발 더 늦춰졌다. 이때 우리 군은 러시아로부터 킬로급 잠수함(3000톤급) 3척을 도입하려 했다.

독도함에 접안하는 무레나급 고속공기부양정(LFS-II·한국명 솔개). 사진=뉴시스이미지 확대보기
독도함에 접안하는 무레나급 고속공기부양정(LFS-II·한국명 솔개). 사진=뉴시스


하지만 잠수함 도입을 위해 실사에 나섰던 해군이 강력하게 반대했다. 실사에 나섰던 잠수함의 상태가 위험할 정도였고, 창정비 시설 역시 사실상 방치 수준에 가까웠던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이미 진행 중이던 KSS-II(손원일급 잠수함 개발사업)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판단한 해군은 러시아제 잠수함 도입을 반대했다.

결국 우리 정부는 1차 불곰사업과 유사하게 2차 불곰사업을 진행했다. 단 2차 사업에서는 1차 사업에서는 볼 수 없던 항공전력들이 다수 포함됐다.

2차 사업을 통해 국내에 들여온 러시아 방산물자를 살펴보면 ▲T-80UK(지휘형 전차) 2대 ▲메티스-M 대전차미사일 156문과 탄약 1만1500발 ▲무레나 공기부양정(한국명 솔개) 3척 ▲IL-103(일류신 고등훈력기) ▲Ka-32A(카포므 다목적 헬기) ▲ANSAT헬기(카잔 경헬기) 6대 등이 도입됐다.

제2차 불곰사업을 통해 국내에 들어온 러시아제 IL-103 훈련기. 한국명은 K-103 초등훈련기다. 사진=뉴시스이미지 확대보기
제2차 불곰사업을 통해 국내에 들어온 러시아제 IL-103 훈련기. 한국명은 K-103 초등훈련기다. 사진=뉴시스


2차 사업을 통해 국내에 들어온 러시아제 방산제품 중 눈에 띄는 것은 바로 IL-103과 Ka-32A다. 러시아 일류신 항공국을 의미하는 IL-103은 프로펠러형 훈련기로 기본적인 항법 장치 외에 별다른 전자장비가 없는 훈련기다. 우리나라는 총 23대를 도입해 공군의 훈련기로 활용했다. 이후 한국항공우주산업(KAI)가 개발한 KT-100 훈련기로 모두 교체됐다.

Ka-32A는 러시아군이 사용하는 중대형 다목적 헬기다. 같이 들여온 ANSAT헬기와 함께 대부분 산림청에서 배속 받아 산불 화재 진압용 헬기로 사용됐다. 당초 군용 헬기로 개발됐던 만큼 무장능력이 매우 높다.

지지부진한 3차 사업


불곰사업은 현재도 진행 중이다. 3차 사업을 위한 논의가 2008년부터 시작됐지만, 러시아와의 협상이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방산업계에서는 러시아 정부가 우리나라에 넘겨준 방산물자들이 K-방산을 통해 세계로 수출되는 모습을 보면서 기술유출에 대한 부담감이 높아진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제2차 불곰사업을 통해 국내에 들어온 Ka-32a 까모프 다목적 헬기. 현재 산림청에서 산불진압용 헬기로 사용되고 있다. 사진=뉴시스이미지 확대보기
제2차 불곰사업을 통해 국내에 들어온 Ka-32a 까모프 다목적 헬기. 현재 산림청에서 산불진압용 헬기로 사용되고 있다. 사진=뉴시스


2013년 11월 당시 러시아 정부는 방산물자 대신 아예 군사기술을 제공하겠다는 뜻을 우리 정부에 전했다. 하지만 러시아의 2014년 크림침공 이후 흑해를 놓고 서방세계와 주도권 경쟁을 벌이면서 논의는 중단됐다.

이후 2019년 6월 재논의에 나섰지만, 타스 통신에 따르면 러시아 정부가 카모프헬기(Ka-32A)로 상환하겠다고 밝히면서 논의는 다시 지지부진해졌다. 최근에는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아예 대화 자체를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서종열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seojy78@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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