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세 미만 부모 동거율 33%…취업해도 집값·렌트비 부담에 독립 지연
이미지 확대보기미국에서 35세 미만 성인 3명 중 1명이 부모와 함께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과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사태 때 일시적으로 늘어난 현상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높은 집값과 임대료 부담 속에 새로운 생활 방식으로 굳어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취업률이 크게 흔들리지 않았고 대학 교육을 받은 청년도 늘었지만 독립 주거를 감당하기 어려운 구조가 청년층을 부모 집에 머물게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9일(현지시각)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부동산 정보업체 리얼터닷컴은 최근 펴낸 보고서에서 지난해 기준 35세 미만 성인 중 부모와 함께 사는 비율이 33%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이 비율은 코로나19 사태의 충격이 컸던 2020년 약 34%로 정점을 찍었다. 이후 2022년 31~32% 수준으로 낮아졌지만 하락세는 오래가지 않았다. 2025년 다시 33%까지 올라 팬데믹 당시 수준에 근접했다.
◇ 팬데믹 뒤에도 부모 집 떠나지 못했다
미국에서 성인이 된 뒤 부모 집을 떠나 독립하는 것은 오랫동안 자립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최근 흐름은 달라진 것으로 조사됐다. 팬데믹 당시에는 학교 폐쇄와 실직, 원격근무 확산으로 청년층이 부모 집으로 돌아간 측면이 컸다. 당시에는 일시적 현상이라는 해석이 많았다.
그러나 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이후에도 부모 동거 비율은 크게 낮아지지 않았다. 2025년에는 다시 33%까지 올라갔다. 이는 팬데믹 충격이 지나간 뒤에도 청년층의 독립 여건이 충분히 회복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리얼터닷컴의 한나 존스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이 연령대의 고용률은 비교적 안정적으로 유지됐지만 부모와 함께 사는 비율은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 흐름이 일자리 문제보다 주택 구입 부담과 공급 부족에 더 가깝다는 점을 시사한다고 분석했다.
◇ 취업해도 독립 어려운 주거비
미국 청년층의 부모 동거 증가는 단순한 실업 문제가 아니라는 지적이다.
대부분은 일하고 있다. 대학 교육을 받은 비율도 늘고 있다. 그런데도 독립 주거를 마련하지 못하는 이유는 주거비가 소득 증가 속도를 앞질렀기 때문이다.
주택 구입은 청년층에게 갈수록 멀어지고 있다. 높은 주택 가격과 모기지 금리는 첫 주택 구매를 어렵게 한다. 임대시장도 부담스럽다. 대도시와 일자리 밀집 지역에서는 월세가 빠르게 올랐고 저렴한 주택 공급은 부족하다.
물가 상승도 독립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식료품과 교통비, 보험료, 학자금 대출 상환 부담이 겹치면 월세 보증금과 생활비를 감당하기 어렵다. 취업 상태라도 혼자 살 수 있는 충분한 구매력을 확보하지 못하는 청년층이 늘어난 배경이다.
◇ 부모 집, 실패보다 생존 전략으로
미국 사회에서 부모와 함께 사는 성인 자녀는 오랫동안 부정적 시선을 받았다.
30대가 돼도 부모 집에 산다는 것은 자립 실패나 미성숙으로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주거비 부담이 커지면서 인식도 조금씩 바뀌고 있다. 부모 집 거주는 실패가 아니라 비용을 줄이고 미래를 준비하는 현실적 선택으로 해석되기 시작했다.
NYT가 소개한 30세 남성 에번 월시는 가까운 친구를 잃은 뒤 올해 초 부모 집으로 돌아갔다. 그는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상실과 전환의 시기를 견디는 데 도움이 됐고 돈 걱정을 덜면서 커리어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그의 어머니 웬디 월시는 아들이 어릴 때 일을 많이 해 함께 보낸 시간이 부족했다며 다시 같이 살게 된 시간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부모와 자녀 모두에게 이 생활 방식은 경제적 선택이자 정서적 조정 과정이다. 자녀는 주거비를 아끼며 저축과 학업, 이직을 준비할 수 있다. 부모는 성인 자녀와 다시 생활하며 가족 관계를 새롭게 정리하게 된다.
◇ 뉴욕 떠난 20대의 선택
프란체스카 굴로의 사례도 주거비 압박을 보여준다.
그는 브루클린에서 자랐고 17세에 독립했다. 이후 10년 동안 뉴욕에서 혼자 살았지만 결국 부모가 이주한 테네시 집으로 돌아가 다시 학교에 다니기로 했다.
굴로는 두 가지 일을 하면서도 경제적으로 버티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35세가 됐을 때 저축 없이 살고 싶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이 자란 곳에서 살 여력이 없을 수 있다는 사실이 힘들지만 부모가 도와줄 수 있는 선택지가 있다는 점에는 감사한다고 했다.
이 사례는 미국 대도시 청년층이 겪는 현실을 보여준다. 일자리는 대도시에 몰려 있지만 주거비도 함께 높다. 임금이 생활비를 따라가지 못하면 고향이나 선호 지역에서 독립생활을 유지하기 어렵다.
◇ 부모 세대도 조건 따진다
부모들이 모두 무조건 성인 자녀의 귀가를 반기는 것은 아니다.
상당수의 부모는 경제적 충격이나 질병, 상실 같은 사정이 있으면 자녀를 받아들인다. 그러나 단순히 주거비가 비싸다는 이유만으로 30대 중반까지 집에 머무는 것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시각도 여전히 있다.
웬디 월시는 비극적인 일이 생기면 당연히 문을 열어주겠지만 35세가 돼서 단지 비용이 비싸다는 이유로 집에 사는 것은 개인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는 부모 동거가 가족 내부의 협상 문제이기도 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자녀가 부모 집에 머무는 기간과 생활비 분담, 사생활, 가사 역할, 향후 독립 계획을 둘러싼 긴장이 생길 수 있다.
◇ 미국식 독립 공식 흔들린다
미국 청년층의 부모 동거 증가는 주거시장과 노동시장 변화가 가족 구조를 바꾸고 있음을 보여준다.
취업하고 돈을 벌면 집을 얻고 독립한다는 공식은 더 이상 모든 청년에게 적용되지 않는다. 고용은 유지되지만 주거비가 너무 높아 독립이 늦어지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이는 주택시장에도 영향을 준다. 청년층이 독립을 미루면 임대 수요와 첫 주택 구매 수요의 시점이 늦춰진다. 결혼과 출산, 지역 이동, 소비 패턴도 함께 변할 수 있다.
미국에서는 부모와 사는 성인 자녀가 여전히 문화적 부담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통계는 이 현상이 더 이상 예외적이지 않다는 점을 보여준다. 35세 미만 성인 3명 중 1명이 부모와 함께 산다는 것은 개인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주거비와 소득, 공급 부족이 만든 구조적 변화에 가깝다.
청년층의 독립이 늦어지는 흐름은 미국 경제의 또 다른 단면이다. 일자리가 있어도 집을 얻기 어렵고 학력이 높아도 월세와 집값을 감당하기 어려운 현실이 부모 집을 다시 중요한 생활 기반으로 만들고 있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