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만㎞ 달린 테슬라도 장거리 운행 가능
배터리 교체 공포 줄면 중고 전기차 시장도 달라진다
배터리 교체 공포 줄면 중고 전기차 시장도 달라진다
이미지 확대보기전기차 배터리가 예상보다 훨씬 오래 버티고 있다는 실사용 데이터가 쌓이고 있다.
초기 전기차 시절에는 배터리 성능 저하와 고가 교체 비용이 전기차 구매를 가로막는 가장 큰 불안 요인이었다. 그러나 최근 전기차는 수십만㎞를 달린 뒤에도 주행거리를 상당 부분 유지하고 있고 배터리 교체 비율도 크게 낮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신형 전기차 배터리가 자동차 업계의 기존 예상보다 더 안정적으로 버티고 있으며 이 변화가 소비자 신뢰를 높이는 전환점이 될 수 있다고 5일(현지시각) 보도했다.
영국에서 전기차 전문 중고차 판매업체를 운영하는 리처드 사이먼스는 최근 5년 된 테슬라 모델3로 영국을 가로지르는 260마일(약 418㎞)의 장거리 운전을 충전 없이 마쳤다. 이 전기차는 누적 주행거리가 24만7000마일(약 39만8000㎞)에 이른다.
사이먼스는 자신이 ‘마일스’라고 부르는 이 차량이 여전히 장거리 운행을 자주 소화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전기차 배터리가 수십만㎞를 달린 뒤에도 매우 안정적이라는 점이 확인되고 있다”고 말했다.
◇ 5년 뒤에도 초기 주행거리 95%
배터리 데이터 업체 리커런트에 따르면 평균적인 전기차는 도로에 나온 지 5년이 지난 뒤에도 초기 주행거리의 최대 95%를 유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자동차 업계가 초기에 예상했던 수준보다 양호한 결과라고 WSJ는 전했다.
예컨대 새 차 때 500㎞를 달릴 수 있던 전기차라면 5년 뒤에도 약 475㎞ 안팎의 주행거리를 유지할 수 있다는 뜻이다. 실제 주행 환경과 충전 습관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배터리가 몇 년 만에 급격히 망가질 것이라는 우려와는 거리가 있다.
전기차 배터리 수명에 대한 불신은 여전히 크다. 자동차 정보업체 에드먼즈의 제시카 콜드웰 인사이트 책임자는 “일반 소비자들이 아직 전기차 배터리를 충분히 신뢰하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업계 조사에서도 배터리 교체 비용에 대한 두려움은 전기차 구매를 피하는 가장 큰 이유로 꼽힌다. 전기차는 엔진과 변속기가 없는 대신 배터리가 차량 가격의 핵심을 차지하기 때문에 소비자 입장에서는 배터리 상태가 곧 차량 가치로 인식된다.
◇ 초기 전기차와 최신 전기차는 다르다
초기 전기차 소비자의 우려에는 근거가 있었다.
2011~2016년에 생산된 전기차 가운데 배터리 교체를 경험한 차량은 약 12대 중 1대 수준으로 집계됐다. 2010년 출시된 초기 닛산 리프는 배터리 냉각 기술이 부족해 성능 저하 문제가 두드러졌고 전기차 배터리에 대한 불신을 키운 대표 사례가 됐다.
그러나 최신 전기차는 상황이 다르다. 리커런트의 2025년 연구에 따르면 2022년 이후 생산된 전기차의 배터리 교체 비율은 0.3%에 그쳤다. 배터리 화학 조성, 배터리관리시스템(BMS), 열 관리 기술이 개선되면서 과거보다 성능 저하 속도가 크게 낮아졌다.
스콧 케이스 리커런트 공동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는 “소비자 인식이 아직 기술 발전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배터리 수명에 대해 지금보다 훨씬 더 자신감을 가져도 된다는 뜻이다.
런던정경대에서 전기차를 연구하는 비엣 응우옌 티엔 연구원도 최신 배터리 전기차의 수명이 내연기관 차량과 비교 가능한 수준에 도달했다고 분석했다. 오히려 더 많은 거리를 운행하는 경우에도 배터리 차량이 충분히 긴 수명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 교체 비용은 여전히 부담
배터리 내구성이 개선됐지만 비용 부담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보증기간이 지난 뒤 배터리 전체를 교체하려면 제조사와 차종에 따라 5000~1만6000달러(약 766만~2450만원)이 들 수 있다. 이는 중고차 소비자에게 여전히 큰 부담이다.
다만 수리 구조도 바뀌고 있다. 최근 전기차 제조사들은 배터리팩 전체를 통째로 교체하는 대신 일부 모듈이나 부품을 수리할 수 있도록 설계를 바꾸고 있다. 이 방식이 확산되면 소비자는 전체 배터리 교체 비용을 피할 수 있고 중고 전기차의 잔존가치도 안정될 수 있다.
배터리 가격 하락도 긍정적이다. 블룸버그NEF에 따르면 전기차 배터리 가격은 2010년 이후 90% 넘게 떨어졌다. 배터리 가격이 낮아지고 수리 가능성이 높아지면 전기차 유지비에 대한 소비자 부담도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 충전 습관이 수명 좌우
전기차 배터리가 오래 간다고 해서 관리가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고출력 급속충전을 자주 하면 배터리 주행거리 감소 속도가 저속 충전 차량보다 평균적으로 두 배 빠를 수 있다고 텔레매틱스 업체 지오탭은 분석했다. 배터리를 자주 100%까지 충전하거나, 0% 상태로 오래 방치하는 습관도 장기적인 성능 저하를 키울 수 있다.
극심한 추위와 더위도 주행거리에 영향을 준다. 전기차는 온도 변화에 따라 실제 주행거리가 인증 주행거리보다 짧아질 수 있다. 특히 겨울철 난방 사용과 저온 환경은 배터리 효율을 떨어뜨린다.
다만 이는 배터리 결함이라기보다 리튬이온 배터리의 물리적 특성에 가깝다는 지적이다. 적절한 충전 습관과 열 관리가 이뤄지면 최신 전기차 배터리는 장기간 안정적인 성능을 유지할 수 있다는 데이터가 늘고 있다.
◇ 미국 전기차 둔화 속 신뢰 회복 변수
배터리 내구성 개선은 미국 전기차 시장에도 중요한 변수다.
미국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전기차 보조금과 전동화 규제를 폐지한 뒤 전기차 열기가 식었다. 모터인텔리전스 자료에 따르면 올해 미국 전기차 판매는 지난해보다 25% 줄었다.
그러나 업계는 미국 전기차 둔화가 영구적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컨설팅업체 알릭스파트너스는 미국 신차 판매에서 전기차가 차지하는 비중이 2030년 11%까지 높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전기차가 이미 신차 판매의 15%를 차지하고 있으며 2030년에는 거의 4분의 1 수준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소비자가 전기차 구매를 망설이는 이유가 가격과 충전 인프라뿐 아니라 배터리 수명 불안이라면 실제 내구성 데이터는 수요 회복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특히 중고 전기차 시장에서는 배터리 상태를 투명하게 확인할 수 있는 진단 서비스가 가격 형성의 핵심이 될 가능성이 크다.
전기차 보급 초기에는 배터리가 차량보다 먼저 망가질 수 있다는 인식이 강했다. 그러나 최근 데이터는 반대 방향을 가리킨다. 최신 전기차 배터리는 수십만㎞를 달린 뒤에도 실사용에 충분한 성능을 유지하고 있고 교체 비율도 크게 낮아졌다.
전기차 시장의 다음 경쟁은 주행거리 숫자를 키우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소비자가 배터리를 얼마나 오래 믿고 탈 수 있는지, 중고차로 팔 때 배터리 가치를 얼마나 인정받을 수 있는지가 전기차 대중화의 핵심 조건으로 떠오르고 있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