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글로벌이코노믹 로고 검색
검색버튼

일본, 휴머노이드 패권 탈환 위해 AI 투자 4배 확대

피지컬 AI(물리 인공지능)에 25억달러(약 3조 7722억 원) 집중 투입, 5조 달러 시장 3강 경쟁 본격화
감속기·액추에이터(구동장치) 부품 공급망 재편… 수혜주 촉각
일본은 AI와 핵심 부품 투자를 통해 휴머노이드 로봇 시장 패권 탈환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미지=제미나이3이미지 확대보기
일본은 AI와 핵심 부품 투자를 통해 휴머노이드 로봇 시장 패권 탈환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미지=제미나이3
반세기 동안 산업용 로봇 강국으로 군림해 온 일본이 이번에는 '휴머노이드(인간형 로봇) 패권 탈환'을 공식 국가전략으로 내세우고 미국·중국과의 3강 경쟁에 본격 뛰어들었다.
국제전기전자기술자협회(IEEE) 로봇자동화학회(RAS)는 지난 12일(현지시각) '세계 로봇 전략 시리즈' 두 번째 편을 공개하고 일본의 로봇 국가전략을 집중 분석했다.

보고서는 "일본이 수십 년간 축적해 온 정밀 하드웨어 기술에 피지컬 AI를 결합해, 5조 달러(약 7545조 원·모건스탠리 추산) 규모로 성장할 휴머노이드 시장에서 주도권을 되찾으려 한다"고 진단했다.

고령화·재해가 불러낸 로봇 국가전략


일본이 로봇 개발에 사활을 거는 배경에는 두 가지 구조적 위기가 겹쳐 있다. 일본은 2007년 이미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의 3분의 1에 육박하는 '초고령사회'로 분류됐다.

IEEE RAS 보고서는 "일본 정부 로드맵은 의료·노인 돌봄·생산 현장의 급격한 노동력 부족으로 인한 국내총생산(GDP) 붕괴를 막는 핵심 수단으로 로봇 개발을 규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민으로 노동력 부족을 해소해 온 다른 나라들과 달리, 일본은 역사적으로 강한 이민 규제를 유지해 왔다.

잦은 자연재해도 로봇 개발을 끌어당기는 힘이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위험 환경에서 인명 피해를 줄여줄 재난 대응 로봇의 필요성을 전 세계에 각인시켰다. 산업 경쟁력 유지도 빠뜨릴 수 없다.

일본은 지난 반세기 동안 산업용 로봇 최대 제조·수출국 지위를 지켜왔다. 2022년 기준 전 세계 산업용 로봇 공급량의 45%가 일본산이었고, 출하량의 약 80%는 EU 회원국·미국·중국 등으로 수출됐다.

그러나 중국 제조업의 급성장과 자국 경기 침체가 맞물리면서 이 우위마저 흔들리기 시작했다는 것이 보고서의 분석이다.

문샷(Moonshot) 프로그램·소사이어티 5.0, 30년 승부수


일본의 기술 국가전략 설계도는 5년 주기로 개정되는 '과학기술기본계획'이다. 2026년부터 제7차 계획이 시작되며, 여기에 연간 수정 방식의 '통합혁신전략'을 더해 빠르게 변하는 기술 환경에 대응한다.

이 전략의 궁극적 목표는 AI·로봇이 일상에 스며든 '소사이어티(Society) 5.0', 곧 초지능 사회의 실현이다. 현재 오사카와 쓰쿠바 두 도시가 로봇·AI 관련 규제를 한시적으로 면제받는 '슈퍼시티' 실증 구역으로 지정돼 운영 중이다.

토요타(Toyota)도 지난해 9월 직원들이 거주하며 미래 모빌리티를 시험하는 '우븐 시티(Woven City)'를 공식 가동했다.
특히 주목받는 것은 30년 시한의 고위험·고보상 연구 로드맵인 '문샷(Moonshot) 프로그램'이다. 10개 목표 가운데 두 개가 로봇과 직결된다.

'목표 1'은 인간과 원격 조종 로봇이 감각·동작을 공유하는 '사이버네틱 아바타' 기술 구현이고, '목표 3'은 로봇과 AI의 공진화다.

지난해 12월 문샷 목표 3에 결정적인 전략 수정이 이뤄졌다. 인간 중심 환경에 스스로 적응하는 범용 자율 휴머노이드 로봇 개발이 최우선 과제로 격상된 것이다.

2000년 혼다(Honda)의 '아시모(ASIMO)'로 세계를 놀라게 했던 일본이 수십 년 만에 다시 휴머노이드 주도권 탈환을 공식 선언한 셈이다.

그러나 현실은 만만치 않다. 업계에서는 "중국과 미국의 휴머노이드가 서빙·마라톤·공연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세계의 주목을 받는 동안, 로봇 강국으로 불렸던 일본의 로봇들은 공장 안에 갇혀 있었다"는 평가가 잇달았다. 뒤처진 격차를 좁히려는 절박함이 이번 전략 수정에 그대로 담겨 있다.

80억 달러 투입·16개 산업 전면 배치… 부품 공급망 재편 주목


전략의 뼈대는 대규모 재정 투입이다. 일본 경제산업성(METI)은 지난해 12월 AI 투자 지원 규모를 기존의 4배인 80억 달러(약 12조 720억 원)로 늘리기로 했으며, 이 가운데 약 25억 달러(약 3조 7725억 원)가 피지컬 AI, 즉 로봇 분야에 집중 투입된다. AI 예산 규모로 일본은 중국·미국에 이어 세계 3위로 올라섰다.

올해 3월에는 통합혁신전략 개정을 통해 물류·간병·농업·재해 대응·방위·경비·폐기물 처리 등 총 16개 분야에 AI 로봇을 전면 배치하는 계획도 확정됐다.

2030년까지 실제 현장에서 AI 로봇이 작동하는 환경을 구축하고, 이를 통해 대규모 학습 데이터를 축적하겠다는 구상이다.

산업계의 움직임도 빠르다. 와세다대학교·무라타제작소·반도체 기업 르네사스·스미토모중공업·마부치모터 등 13개 기업·기관이 참여하는 '교토 휴머노이드 연합'은 올해 말까지 재해 대응용(높이 2.5m)과 연구용(1.8m) 두 종류의 휴머노이드 시제품을 완성할 계획이다.

소니(Sony)는 지난해 말 1㎏ 미만의 초경량 팔 관절용 액추에이터를 공개했고, 정밀 감속기 분야의 강자 하모닉드라이브시스템스(Harmonic Drive Systems)는 휴머노이드 손가락용 소형 구동장치 개발에 나섰다.

감속기와 액추에이터는 이번 패권 경쟁의 숨은 변수다. 휴머노이드 로봇의 관절 하나하나에 들어가는 핵심 부품으로, 현재 글로벌 정밀 감속기 시장은 일본 기업들이 장악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하모닉 감속기나 유성 롤러 스크류 같은 정밀 부품을 일본과 유럽 기업들이 쥐고 있어, 휴머노이드 대량 생산의 최대 병목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국내에서도 삼현이 최근 글로벌 휴머노이드 로봇 기업으로부터 핵심 관절용 액추에이터 시제품을 수주하며 공급망 진입 가능성을 높였고, 현대차그룹 로보틱스랩도 하모닉드라이브(일본)·나브테스코(일본)·에스비비테크·에스피지(이상 한국) 등 국내외 감속기를 시제품에 접목하면서 양산 단계에서 국산 비중을 최대한 높인다는 방침이다.

한편 일본은 올해 2월 미국과 공동으로 로봇 잠수정을 동원한 심해 희토류 채굴 시험에 처음으로 성공했다. 문샷 목표 3의 해양 적용이자, 중국에 집중된 희토류 공급망을 분산하려는 미·일 협력의 구체적 성과다.

또 올해 3월 확정된 제7차 과학기술기본계획에는 무인기·드론 기술 개발이 처음으로 안보 우선 과제로 포함됐으며, 국내총생산(GDP)의 2%를 국방 연구개발에 쏟기로 했다.

IEEE RAS 보고서는 "미국은 AI 분야의 세계 선두이지만 정부 차원의 로봇 하드웨어 전략이 없는 반면, 일본은 수십 년간 쌓아온 정밀 하드웨어 생태계를 갖추고 있다"며 양국 협력의 상호보완성을 강조했다.

일본의 하드웨어 강점에 미국의 소프트웨어·AI 역량이 결합될 경우 중국 추격을 막는 가장 강력한 연대가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진형근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inwook@g-enews.com
맨위로 스크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