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태국·UAE·사우디 중앙은행 참여…국경 간 결제 수수료 절반 수준 목표
이미지 확대보기홍콩, 태국, 아랍에미리트(UAE), 사우디아라비아 중앙은행이 참여하는 이 결제망은 중국 디지털 위안화의 국제 사용을 넓히고 일대일로 교역국과의 금융 연결을 강화하려는 시도로 풀이된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중국이 ‘엠브리지(mBridge)’로 알려진 디지털 통화 기반 국경 간 결제 플랫폼의 상용 출시를 준비하고 있다고 14일(현지시각) 보도했다.
엠브리지는 중국 본토와 홍콩, 태국, UAE, 사우디 중앙은행이 뒷받침하는 결제 플랫폼이다. 이 사안에 정통한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 플랫폼의 운영을 감독할 홍콩 기반 법인도 설립될 예정이다.
상용화의 구체적인 날짜는 공개되지 않았다. 다만 준비 작업은 상당히 진전된 상태이며 수수료는 기존 국제 결제 시스템의 절반 수준이 될 것으로 전해졌다. 국제 결제망 이용 비용이 높고 절차가 까다롭다고 느끼는 중소기업들이 주요 이용자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 디지털 위안화 국제화 시동
FT에 따르면 엠브리지는 디지털 위안화를 국경 간 결제에 활용하려는 중국의 핵심 프로젝트다. 중국은 이미 위안화 국제 결제망인 위안화국제결제시스템(CIPS)을 운영하고 있다. CIPS는 중국판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스위프트) 결제망으로 불린다.
FT는 “이란 전쟁 이후 중국의 기존 위안화 결제망인 CIPS 사용이 급증했다”고 전했다. 달러 중심 결제망에 대한 지정학적 부담이 커지면서 위안화 기반 결제 수단의 필요성이 더 부각됐다는 뜻이다.
엠브리지는 CIPS와 별개의 보완적 시스템이다. CIPS가 전통적인 은행 결제망에 가깝다면 엠브리지는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를 활용해 국가 간 결제를 직접 처리하는 구조다.
이 플랫폼은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해 각국 중앙은행의 디지털 통화가 직접 거래되도록 설계됐다. 이를 통해 달러가 중간 결제 통화로 쓰이는 비중을 낮추고 외환 거래 시간을 초 단위로 줄이는 것이 목표다.
◇ 달러 중심 결제망 균열
국제 결제망은 오랫동안 스위프트를 중심으로 운영돼 왔다. 그러나 최근에는 각국 중앙은행과 민간기업이 더 빠르고 저렴한 결제망을 구축하려는 움직임을 강화하고 있다.
유럽중앙은행(ECB)의 단일유로결제지역(SEPA)이나 앤트그룹의 국경 간 QR코드 결제망도 이같은 흐름의 일부다. 특히 관광객이나 중소상공인의 소액 실시간 결제에서는 기존 국제 결제망보다 빠르고 저렴한 대안 수요가 커지고 있다.
영국 왕립합동군사연구소(RUSI)의 톰 키팅 금융안보센터 창립 이사는 “대체 금융시스템 군비 경쟁이 조용히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스테이블코인을 적극 수용하는 흐름도 이런 경쟁의 한 축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스테이블코인은 달러 등 법정통화 가치에 연동되는 암호자산이다. 미국이 민간 스테이블코인을 통해 달러의 디지털 영향력을 유지하려 한다면, 중국은 디지털 위안화와 엠브리지를 통해 자국 통화의 글로벌 역할을 키우려 한다는 분석이다.
키팅 이사는 중국이 엠브리지 같은 시스템을 활용해 디지털 위안화의 글로벌 금융 내 역할을 확보하려 한다며 “디지털 통화판 일대일로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 홍콩 법인이 운영 맡을 듯
엠브리지 프로젝트는 처음부터 중국 주도로 시작된 것은 아니다. 홍콩금융관리국(HKMA)과 태국 중앙은행의 초기 협력 사업인 ‘인타논-라이언록’에서 출발했다. 이후 2021년 국제결제은행(BIS), 중국 인민은행, UAE 중앙은행 등이 참여하면서 현재의 엠브리지 형태를 갖췄다.
그러나 이 프로젝트는 달러 결제망을 우회하거나 제재 회피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여러 차례 정치적 논란에 휘말렸다.
BIS는 지난 2024년 엠브리지 프로젝트를 참여국 파트너들에게 넘겼다. FT는 당시 이 결정이 미국 워싱턴의 압력 때문이었다고 보도한 바 있다. 다만 아구스틴 카르스텐스 당시 BIS 사무총장은 그런 압력이 있었다는 주장을 부인했다.
BIS와 중국 인민은행 관계자들은 엠브리지가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의 자금세탁 방지 규정을 준수한다고 설명해왔다. 불법 금융망을 차단하기 위한 국제 규범을 따르고 있다는 주장이다.
◇ 이미 105조원 거래 처리
엠브리지는 아직 본격 상용화 전 단계지만 이미 상당한 규모의 거래를 처리한 것으로 파악됐다. 프로젝트 관계자들에 따르면 지금까지 엠브리를 통해 처리된 거래 규모는 약 4700억위안(약 105조원) 수준이다.
상업은행도 각국 중앙은행의 감독 아래 엠브리지 거래에 참여할 수 있을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중앙은행 간 직접 결제망을 기반으로 하되 실제 기업과 금융기관의 국제 거래에도 활용될 수 있음을 뜻한다.
중국 증권사 궈선증권의 왕젠 수석 금융부문 애널리스트는 “수출기업 입장에서는 현금 회전 속도가 빨라지고 유동성 압박 위험이 줄어든다”고 말했다. 그는 더 넓게 보면 엠브리지가 글로벌 통화 질서에서 중국의 발언권을 강화하고 위안화 국제화를 뒷받침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 제재 우회 논란은 계속
엠브리지의 상용화는 국제 금융질서의 분절화 흐름을 보여준다는 지적이다. 한때 스위프트가 사실상 지배하던 글로벌 결제망이 여러 경쟁 네트워크로 나뉘고 있다는 뜻이다.
국제금융협회(IIF)의 진마 중국 리서치 책임자는 “글로벌 결제 환경은 한때 스위프트가 지배했지만, 이제는 경쟁 네트워크들의 체계로 쪼개지고 있으며 엠브리지 역시 그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엠브리지가 실제로 달러 패권을 단기간에 흔들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는 관측이다. 달러는 여전히 국제 무역 결제와 외환보유액, 금융시장 거래에서 압도적인 지위를 갖고 있어서다. 디지털 위안화의 해외 사용도 아직은 제한적이다.
그럼에도 엠브리지는 중국이 달러 중심 결제망 밖에서 더 독자적인 금융 인프라를 만들려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는 분석이다. 특히 홍콩과 동남아, 중동 주요 국가가 참여한다는 점은 중국이 일대일로 교역권을 중심으로 디지털 금융망을 확장하려 한다는 해석을 낳고 있다.
엠브리지가 본격 상용화되면 국제 결제 비용 절감과 속도 개선이라는 실용적 효과를 앞세워 중소기업과 교역 기업을 끌어들일 수 있다. 동시에 미국과 서방은 이 플랫폼이 제재 회피나 달러 질서 약화로 이어질 가능성을 계속 경계할 전망이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