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운전 성수기 앞두고 재고 여유분 빠르게 소진…수출 확대·글로벌 공급 불안이 압박
이미지 확대보기미국 휘발유 재고가 지난 2월 초부터 지난달 말까지 약 15주 사이 4750만배럴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재고 수준 자체가 당장 공급 부족을 뜻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같은 감소 속도는 지난 1990년 이후 미국 에너지정보청(EIA) 주간 통계에서 전례를 찾기 어려운 수준이라며 에너지 전문매체 오일프라이스닷컴이 9일(이하 현지시각) 이같이 보도했다.
오일프라이스닷컴에 따르면 지난달 22일로 끝난 주간 미국 휘발유 재고는 2억1160만배럴이었다. 이는 최근 5년 평균보다 낮고 2014년 이후 5월 기준 최저 수준이지만, 그 자체만으로 즉각적인 공급난을 뜻하는 수치는 아니다.
오일프라이스닷컴에 따르면 문제는 재고가 줄어든 속도다.
미국의 휘발유 재고는 지난 2월 초 2억5910만배럴까지 늘었다가 지난달 말 2억1160만배럴로 감소했다. 약 3개월 반 사이 사라진 재고만 4750만배럴에 이른다. EIA 주간 통계가 시작된 1990년 이후 같은 기간에 이 정도 규모의 감소가 나타난 적은 없으며 과거 큰 폭의 감소 사례도 3000만배럴 안팎에 그쳤다.
◇ 정유공장 풀가동에도 재고 감소
이번 재고 감소가 더 눈에 띄는 이유는 정유공장 가동이 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달 22일로 끝난 주간 미국 정유공장 투입량은 하루 평균 거의 1700만배럴로 전주보다 65만2000배럴 늘었다. 정제가동률은 94.5%까지 올라 이 시기 평균을 소폭 웃돌았다.
완제품 휘발유 생산도 하루 평균 990만배럴로 견조했다. 오일프라이스닷컴은 “보통 이 정도 정유 활동이면 재고 안정에 도움이 된다”면서 “그러나 같은 주 휘발유 재고는 오히려 260만배럴 더 줄었다”고 전했다.
수요만으로 설명하기도 어렵다는 지적이다. EIA에 따르면 같은 주 완제품 자동차용 휘발유 공급량은 하루 평균 926만배럴로 지난해 같은 주보다 낮았다. 4주 평균도 지난해와 거의 비슷했다.
이는 미국인이 갑자기 휘발유를 폭발적으로 더 소비하고 있다는 뜻은 아니라는 지적이다. 오히려 강한 정유공장 가동과 평탄한 수요 흐름에도 재고가 빠르게 줄어드는 배경에 수출과 글로벌 공급 불안, 정제 제품 시장의 구조적 압박이 함께 작용하고 있다는 의미에 가깝기 때문이다.
◇ 수출 확대가 미국 재고 끌어내려
오일프라이스닷컴에 따르면 미국 석유 시스템이 세계 시장과 깊이 연결돼 있다는 점이 주목되고 있다. 최근 EIA 석유 현황 보고서에서 미국의 원유와 석유 제품 순수입은 하루 -584만배럴로 집계돼서다. 이는 미국이 상당한 규모의 순수출국이라는 뜻이다. 1년 전 하루 -287만배럴과 비교하면 순수출 규모가 하루 약 300만배럴 더 커졌다.
정제 제품 수출도 지난해보다 높은 수준을 유지했다. 글로벌 에너지 시장이 긴장된 상황에서는 미국산 휘발유와 석유 제품이 단순히 국내에 머물지 않는다. 가격이 더 높은 시장으로 이동한다.
이 흐름은 올해 특히 중요해졌다. 호르무즈 해협 차질로 세계 에너지 공급망의 핵심 병목 지점이 흔들렸고 유가는 상승했다. 시장은 여전히 이 차질이 재고 문제를 심각한 수준으로 키우기 전에 해소될 수 있다고 보는 분위기지만 재고 추이는 완충 여력이 빠르게 줄고 있음을 보여준다.
오일프라이스닷컴은 “외교적 해법이 나오면 시장이 안정을 되찾을 수 있지만 문제는 해결 방안을 기다리는 동안 석유 제품 재고가 계속 소진되고 있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 전략비축유와 디젤 재고도 부담
전략비축유(SPR)도 배경 변수다.
EIA는 같은 주 SPR 재고가 910만배럴 줄었고 1년 전보다 3620만배럴 낮은 수준이라고 밝혔다. 최근 SPR 방출은 주간 기준으로도 매우 큰 규모에 속한다.
SPR 방출은 정유공장에 원유를 공급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원유가 곧바로 휘발유가 되는 것은 아니다. 원유는 정제와 혼합, 운송을 거쳐 지역 시장에 공급돼야 한다. 에너지 가격 논쟁에서 이 차이가 종종 간과된다.
디젤과 난방유를 포함하는 유분 재고도 경고 신호를 더한다. 유분 재고는 같은 주 210만배럴 줄었고 여전히 정상 수준보다 낮다. 디젤은 트럭, 철도, 농업, 건설, 공급망 전반을 움직이는 연료인 만큼 재고 부족이 운송비와 물가 전반으로 번질 수 있다.
다만 가장 이례적인 수치는 휘발유 재고 감소다. 미국 휘발유 시장은 2월 초까지만 해도 재고가 넉넉한 상태에서 출발했다. 그러나 그 쿠션이 여름 운전 성수기가 본격화하기 전 이미 빠른 속도로 사라졌다.
현재 2억1160만배럴이라는 재고 수치만 보면 다소 빠듯하지만 위기라고 단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2월부터 5월까지의 경로를 보면 시장이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훨씬 큰 압박을 흡수하고 있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휘발유 가격이 곧바로 급등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외교적 돌파구, 수요 둔화, 수입 증가, 정유공장의 안정적 운영이 재고를 안정시킬 수 있다. 그러나 정유공장 사고, 송유관 차질, 허리케인, 지정학적 충격이 발생하면 이미 재고 쿠션을 크게 잃은 시장에 충격이 더 크게 전달될 수 있다.
여름 성수기를 앞둔 미국 휘발유 시장에서 중요한 것은 현재 재고 수치만이 아니다. 얼마나 빠르게 재고가 줄었고 성수기 수요가 정점에 이르기 전에 비축 여력이 얼마나 사라졌는지가 더 큰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