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정부, 고성능 AI 칩 공급 일부 허용…베이징은 규제 강화하며 AMD와 밀착
엔비디아 독점 깨려는 미·중 지정학 이중 게임…국내 소부장 공급망 다변화 사활
엔비디아 독점 깨려는 미·중 지정학 이중 게임…국내 소부장 공급망 다변화 사활
이미지 확대보기야후파이낸스는 20일(현지시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중국 방문 직후 엔비디아가 알리바바, JD닷컴, 바이트댄스, 레노버 등 중국 기술기업 10곳에 인공지능 반도체 'H200'을 조건부로 공급하는 수출 동의안이 타결됐다고 보도했다. 중국 시장은 과거 엔비디아 데이터센터 부문 매출의 최대 25%를 차지하던 핵심 거점이다. 이번 조치로 엔비디아는 거대 시장의 빗장을 다시 열 기회를 잡았다.
미국이 열어준 문, 중국은 닫았다
중국 규제 당국은 일부 완화 조치 소식이 전해진 직후 엔비디아 반도체를 정부의 특수 감시 대상에 올렸다. 미국 기술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국가 안보 리스크를 차단하겠다는 명분이다. 엔비디아가 중국 인공지능 반도체 시장의 80% 이상을 장악한 상황에서 기술 종속이 심화하는 상황을 방어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반면 베이징은 AMD를 향해 이례적인 러브콜을 보냈다. 리사 수 AMD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18일 허리펑 중국 경제담당 부총리의 직접 요청으로 베이징에서 회담을 가졌다. 중국 정부가 미국 반도체 기업 최고경영자를 공식 초청해 협력을 제안한 행보는 이례적이다.
중국 시장 내에서 AMD의 인공지능 반도체 점유율은 미미한 수준이다. 베이징 당국은 이 점을 오히려 정치적 부담이 적은 기회로 판단했다. 엔비디아 대비 소프트웨어 종속성이 낮은 AMD의 구조는 중국 입장에서 기술 자립 전환의 '브리지 옵션'으로 작용한다. 점유율이 높은 엔비디아를 누르고 가속기 시장의 도전자 역할을 하는 AMD를 키워 미국 유일 독점 체제를 무력화하겠다는 전략이다.
엔비디아 쏠림 완화…주가수익비율과 성장성의 함수관계
금융투자업계는 두 기업의 밸류에이션 차이에 주목한다. 엔비디아의 12개월 선행 주가수익비율(Forward P/E)은 19배 수준인 반면, AMD는 31배에 이른다. 주가수익비율은 AMD가 더 높지만, 올해 매출 성장률 전망치는 엔비디아가 73%, AMD가 42%로 엔비디아가 앞선다.
엔비디아의 시장 지위는 독점적 선두 주자, AMD는 고속 성장 추격자 위상을 갖는다.
엔비디아의 주가수익비율이 낮은 것은 단순한 저평가라기보다 인공지능 매출 급증에 따른 이익 레버리지 효과에 가깝다. 반면 AMD는 아직 인공지능 매출 비중이 작아 주가수익비율 왜곡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AMD는 인공지능 가속기 'MI300' 시리즈를 앞세워 대형 클라우드 기업들을 공략하고 있다. 중국 정부가 인공지능 인프라 수요를 의도적으로 AMD로 몰아줄 경우 시장이 예상하지 못한 가파른 매출 성장을 기록할 가능성이 열려 있다.
한국 소부장·HBM 업계, 안방 싸움 격화에 전략 수정 속도 필요
중국의 'AMD 육성책'은 한국 반도체 생태계의 판도를 흔들 변수다. 엔비디아의 칩 독점 구조가 깨지면 엔비디아 공급망에 사활을 걸었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고대역폭메모리 납품 전선도 재조정되어야 한다. 기존 엔비디아 중심 구조에서는 고대역폭메모리3E(HBM3E)를 주도한 SK하이닉스의 우위가 뚜렷했지만, AMD 수요가 확대될 경우 공급망 진입과 동시에 AMD 유치에 공을 들였던 삼성전자에 유리한 판으로 재편 가능성이 거론된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미국과 중국의 기술 패권 경쟁 속에서 공급망의 결이 촘촘해졌다고 분석한다. 미·중 반도체 무역의 불확실성이 상존하는 상황에서 특정 설계기업에만 의존하는 구조는 위험하다고 본다. 증권가에서는 국내 소부장 기업들이 AMD가 다지는 중국 내 틈새시장을 겨냥해 고대역폭메모리와 차세대 패키징 소재의 공급처를 빠르게 다변화해야 승산이 있다고 말한다.
투자자가 지금 당장 주목해야 할 4대 지표
첫째, 빅테크 기업의 설비투자(CAPEX) 변동성 지표다. 미국과 중국의 거대 기술기업들이 인공지능 인프라에 투입하는 자금 규모의 증감 추세를 확인해야 한다.
둘째, AMD MI300 시리즈의 중국 내 점유율 변화 추이다. 베이징의 행정적 밀어주기가 실제 중국 데이터센터의 제품 채택률 상승으로 이어지는지 지켜봐야 한다.
셋째, 국내 반도체 기업들의 고대역폭메모리(HBM) 다변화 성과다. 엔비디아 편중에서 벗어나 AMD를 비롯한 거대 팹리스 고객사를 추가로 확보하는지도 중요하다.
넷째, 엔비디아 쿠다(CUDA) 대비 AMD 록엠(ROCm) 생태계의 확장 속도다. 인공지능 반도체 경쟁의 본질은 하드웨어가 아닌 소프트웨어 생태계에 있으므로, 실제 개발자 전환이 일어나지 않으면 점유율 변화는 제한적일 수 있다.
미·중 기술 전쟁의 구도가 무조건적인 봉쇄에서 특정 기업을 선택적으로 키우는 교묘한 통제 구조로 진화하고 있다. 승자의 독식 체제에 균열이 생기는 지금이 공급망 재편의 실질적인 전환점이다.
김주원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