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성형 AI로 함정 설계 자동화…POS 문서 혁신으로 조선 생산성 새 국면
캐나다 잠수함 사업 겨냥한 디지털 역량 강화…방산형 ‘주권 AI’ 경쟁 본격 점화
캐나다 잠수함 사업 겨냥한 디지털 역량 강화…방산형 ‘주권 AI’ 경쟁 본격 점화
이미지 확대보기한화오션이 캐나다 인공지능 기업 코히어와 손잡고 함정 설계의 디지털 전환에 본격 착수했다. 지난 4일(현지 시각) 캐나다 디펜스 리뷰(Canadian Defence Review)에 따르면, 양사는 인공지능을 활용해 함정 설계 및 조달의 핵심 문서인 엔지니어링 사양서(POS)를 자동화하고 검증하는 개념 실증(PoC)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수작업 대신 AI가 설계”…POS 문서 자동화의 혁신
이번 프로젝트의 중심에는 구매 사양서(POS)가 있다. POS는 함정 건조 초기 단계에서 작성되는 핵심 엔지니어링 문서로, 이후 조달과 생산, 시스템 통합 전반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다시 말해 선박 설계의 기준점이자 후속 공정 전체를 움직이는 출발점이다. 그동안 이 문서는 여러 설계·조달·생산 부서가 긴밀히 협업해 수작업으로 작성하고 검토해 왔다. 이 과정은 많은 시간과 인력을 필요로 했고, 부서 간 데이터 해석 차이나 반복 입력에 따른 불일치 가능성도 늘 따라다녔다.
한화오션과 코히어는 생성형 AI를 활용해 이런 병목을 줄이려 한다. 양사가 구상하는 체계는 기존 선박 데이터와 새로운 설계 입력값을 바탕으로 POS 문서를 자동 생성하고, 설계 변경 사항을 식별해 문서에 반영하며, 최종 결과물을 표준화된 프레임워크에 따라 검증하는 방식이다. 결국 사람이 일일이 작성하고 대조하던 작업을 AI가 보조함으로써, 설계 속도와 일관성, 확장성을 동시에 끌어올리겠다는 구상이다.
초기 적용 분야가 주기관 사양으로 정해진 것도 이런 이유와 맞닿아 있다. 주기관 분야는 데이터 구조가 복잡하고 반복적인 엔지니어링 판단이 많아, AI 기반 자동화의 효과를 검증하기에 적합한 영역으로 꼽힌다. 한화오션은 이번 개념실증이 성공적으로 검증되면, 같은 방식을 선체 구조와 배관 시스템, 전기·계장 부문 등으로 넓혀 나갈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는 장차 조선소의 설계 프로세스 전반이 AI 기반 문서 생성과 검증 체계 위에서 돌아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뜻한다.
이번 협력에서 더욱 눈길을 끄는 대목은 ‘주권형 AI’라는 개념이다. 조선과 방산은 민감한 설계 정보와 국가 안보 관련 데이터가 오가는 산업인 만큼, AI 도입의 관건은 단순한 성능이 아니라 정확성과 보안이다. 코히어는 보안 중심 AI 기업이라는 정체성을 앞세워, 폐쇄적이고 통제된 환경에서 작동하는 기업형 AI 모델을 제공하겠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군사 기밀을 외부로 흘리지 않으면서 설계 데이터를 내부 통제 아래 운용하고, 국가와 기업이 필요한 방식으로 독립적으로 시스템을 운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방산 산업의 요구와 정확히 맞물린다.
한화오션 역시 이번 협력을 단순한 생산성 개선 사업으로 보지 않는다. 회사 측은 AI를 핵심 엔지니어링 워크플로에 통합하는 능력 자체가 조선업의 새로운 경쟁력이 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정승균 한화오션 특수선해외사업단 부사장도 AI가 실제로 의미를 갖는 지점은 복잡한 사업 전반에서 설계 정보를 어떻게 생성하고, 검증하고, 확장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다시 말해 AI는 보조 도구가 아니라, 설계 체계 전체를 다시 짜는 촉매로 이해되고 있는 셈이다.
캐나다 잠수함 사업(CPSP) 정조준…경제 파급 효과 기대
이번 프로젝트는 캐나다 잠수함 사업(CPSP)과도 맞닿아 있다. 한화오션은 이미 30개가 넘는 캐나다 기업 및 대학과 협력 관계를 구축해 이들을 자사 글로벌 잠수함 공급망에 연결하고 있다. 캐나다 잠수함 사업은 단순한 수출 계약이 아니라 대규모 산업 생태계 재편을 수반하는 초대형 프로젝트다. 한화 측 설명에 따르면 이 사업은 2026년부터 2044년까지 연평균 2만5000개의 일자리를 유지시키고, 캐나다 핵심 산업에 수백억 달러 규모의 무역과 투자 효과를 가져올 수 있는 계획으로 제시되고 있다. 이런 사업에서 설계 속도와 정확성, 데이터 신뢰성은 곧 수주 경쟁력으로 이어진다. 한화오션이 코히어와 함께 AI 기반 설계 자동화에 나선 것도 결국 캐나다를 포함한 국제 특수선 시장에서 디지털 역량을 증명하기 위한 포석으로 볼 수 있다.
더 큰 흐름에서 보면, 이번 협력은 조선업이 제조업에서 데이터 산업으로 이동하는 장면에 가깝다. 설계 단계에 AI가 깊숙이 들어오면, 그다음은 자연스럽게 디지털 트윈 기반 설계, 자동 검증 시스템, 생산 공정 최적화, 후속 군수지원 체계까지 연결될 가능성이 높다. 전통적으로 숙련된 인력의 경험과 문서 축적에 크게 의존해 온 조선업이, 이제는 도메인 지식과 AI 모델을 결합해 더 빠르고 정교한 방식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한화오션이 말하는 ‘스마트 조선소’도 결국 이런 흐름 위에서 현실성을 얻게 된다.
이번 한화오션-코히어 협력의 본질은 분명하다. 이는 단순한 기술 시범사업이 아니라, 조선과 방산의 설계 문법을 다시 쓰려는 시도다. 생성형 AI가 실제 함정 설계의 핵심 문서를 만들고 검증하는 수준까지 올라설 수 있다면, 미래 조선 경쟁의 승패는 더 이상 단순한 용접 능력이나 설비 규모만으로 갈리지 않을 수 있다. 누가 더 정확하고, 더 빠르고, 더 안전하게 설계 정보를 다루느냐가 차세대 해양 방산의 핵심 경쟁력이 될 가능성이 크다.
노정용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noja@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