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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올·에어리스 사모대출 환매 봉쇄…투자자 8조 원 묶인 이유

장부 가격과 실제 가격 괴리…순자산가치(NAV) 평가 허점 재조명
골드만삭스 "2년 내 최대 105조 원 이탈 가능"…유동성 위기 어디까지
뉴욕증권거래소의 트레이더. 사진=연합뉴스 이미지 확대보기
뉴욕증권거래소의 트레이더. 사진=연합뉴스
“내 돈, 과연 돌려받을 수 있을까.”연 9% 안팎의 고수익을 믿고 수천억 원을 사모대출 펀드에 넣었던 투자자들이 공통으로 품은 물음이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월가의 총아'로 불리던 미국 사모대출(프라이빗 크레딧) 시장이 대규모 환매 사태로 흔들리고 있다.

블루올 캐피털(Blue Owl Capital)·에어리스 매니지먼트(Ares Management)·클리프워터(Cliffwater) 등 내로라하는 운용사들이 잇달아 환매에 제동을 걸면서, 투자자들이 돌려받지 못한 자금이 54억 달러(약 8조 1500억 원)에 이른 것으로 집계됐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을 비롯한 복수의 외신들은 지난 3일(현지시각) 이 같은 내용을 보도하였다.

블루올·에어리스 동시에 환매 잠금장치 걸어…역대 최고 수준 이탈 요청


이번 사태의 진앙은 블루올 캐피털이다. 이 회사가 운용하는 비상장 사업개발회사(BDC) '블루올 크레딧 인컴(OCIC)'에는 올해 1분기 전체 주식의 21.9%에 해당하는 환매 요청이 쏟아졌다.

기술주 중심의 '블루올 테크놀로지 인컴(OTIC)'에는 그보다 훨씬 많은 40.7%의 환매 요청이 들어왔다. 두 펀드를 합산하면 투자자들이 꺼내 달라고 한 돈이 54억 달러(약 8조 1500억 원)에 달한다.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서 이 정도 비율의 분기 환매 요청은 업계 역대 최고 수준이라는 말이 나온다.

블루올은 두 펀드 모두 환매 한도를 발행 주식의 5%로 묶었다. OCIC의 경우 약 9억 8800만 달러(약 1조 4900억 원)만 돌려주고 나머지 약 32억 달러(약 4조 8300억 원)는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OTIC는 1억 7900만 달러만 환매하고 약 10억 달러는 돌려주지 못했다.

에어리스 매니지먼트의 '에어리스 전략적 수익 펀드'도 같은 길을 택했다. 주주들이 전체 주식의 11% 넘게 환매를 요청하자 5% 한도를 그대로 적용했다. 블랙록, 아폴로 글로벌, 블랙스톤도 이미 같은 5% 상한선을 지키는 대열에 합류한 상태다.

블루올의 두 펀드 최고경영자 크레이그 패커는 주주 서한에서 "이번 환매 급증은 포트폴리오의 실제 성과와 무관하게 자산군 전반에 쏠린 부정적 심리를 반영한 것"이라고 밝혔다.

OCIC 주주의 90%가 환매를 요청하지 않은 가운데, 일부 소수 투자자에게 요청이 집중됐다는 점은 이탈이 일반 소매 투자자보다 기관이나 자산관리 채널에서 집중 발생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펀드 속 펀드의 덫…NAV 평가 허점이 위기 키운다

환매 봉쇄는 단순한 유동성 문제로 그치지 않는다. 클리프워터처럼 다른 사모대출 펀드에 재투자하는 이른바 '펀드 속 펀드' 구조를 취하는 운용사들에는 자산 가치 왜곡이라는 더 깊은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 순자산 316억 달러(약 47조 7100억 원) 규모의 클리프워터 기업대출 펀드는 OCIC 주식 1620만 주를 1억 5120만 달러(약 2283억 원)로, 에어리스 펀드 주식 380만 주를 1억 490만 달러(약 1584억 원)로 각각 장부에 올리고 있다.

두 종목 모두 취득 원가를 각각 1%, 5% 웃도는 가격이다. 클리프워터가 이 가치 산정에 해당 펀드들의 공식 순자산가치(NAV)를 그대로 적용한 결과다.

클리프워터의 최고투자책임자(CIO) 블레이크 네스빗은 WSJ와의 인터뷰에서 "환매를 100% 돌려주지 못하는 비상장 사업개발회사의 NAV를 별도로 조정한 적은 아직 없다"고 밝혔다.

회계 기준상 사모 자산 펀드에 투자하는 경우 공정가치 산출이 어렵다는 이유로 상대 펀드의 공시 NAV를 그대로 쓰도록 예외를 허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예외 규정이 시장 현실과 동떨어진 장부 가격을 지속시키는 허점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이 월가 안팎에서 나온다. 관련 회계 기준은 운용사가 NAV 조정을 '검토해야 한다'고 명시할 뿐, 실제 조정을 강제하지 않는다.

환매 창구가 잠긴 상황에서도 장부 가격은 그대로 유지될 수 있는 구조다. 시장 참여자들 사이에서는 "NAV와 실제 매각 가능 가격의 괴리가 좁혀지지 않는 한, 투자자들의 불신은 환매 요청을 계속 부추길 것"이라는 해석이 우세하다.

클리프워터 자체도 예외가 아니다. 최근 분기 이 펀드에 쏟아진 환매 요청 비율은 전체의 14%였으나 실제 수용은 7%에 머물렀다. 전체 투자자산 가운데 28%가 다른 사모 투자 펀드에 편입돼 있으며, 그 전부를 상대 펀드의 NAV로 평가하고 있다.

18개월 만에 소매 자금 6.5배 급팽창한 시장…골드만삭스 "2년 내 최대 105조 원 이탈“


이번 사태를 이해하려면 사모대출 시장이 얼마나 빠르게 팽창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사모대출 펀드에 유입된 소매 투자자 자금은 2021년 말 340억 달러(약 51조 3400억 원)에서 지난해 말 2220억 달러(약 335조 원)까지 불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은행 규제가 강화되면서 비은행권 운용사들이 중견기업 대출 시장을 빠르게 잠식한 결과다.

그러나 급성장의 이면에는 구조적 취약성이 자리하고 있었다. 사모대출 펀드들은 장기 대출 자산을 담보로 하면서도 투자자들에게 분기별 환매를 허용하는 '유동성 불일치' 구조를 취하고 있다.

코빈 캐피털 파트너스의 존 코크 신용 부문 부최고투자책임자는 "시장 불안이 고조되면 신규 자금 유입은 한 줄기로 줄어들고 유동성을 찾는 투자자만 줄을 잇는다"며 "환매를 막으면 신규 투자자 유치가 더 어려워지고, 그것이 다시 유출 관리를 어렵게 만드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UBP의 니콜라스 로트 사모시장 자문 총괄은 CNBC와의 인터뷰에서 "현재의 환매 요청 물결은 이 자산군이 규모 면에서 처음 맞이하는 실질적 유동성 시험"이라며 "환매 압박, 거래 흐름 둔화, 시가평가 격차가 동시에 덮치고 있다"고 말했다.

골드만삭스 리서치 애널리스트 알렉스 블로스틴은 지난달 20일 자사 팟캐스트에서 "소매 사모대출 상시 개방형 펀드는 2026년 내내, 나아가 2027년까지도 순유출 기조가 이어질 것"이라며, 이 기간 소매 채널에서 빠져나갈 자금을 500억~700억 달러(약 75조~105조 원)로 추산했다.

블루올 주가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장중 사상 최저치인 7.95달러까지 내려앉았으며, 올해 들어 시가총액의 절반 가까이 증발했다.

사모대출 시장 전체 운용 규모가 현재 1조 8000억 달러(약 2718조 원)에 달하는 만큼, 이번 환매 도미노가 어디서 멈출지 금융시장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진형근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inwook@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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