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체 안 되면 팔지 마라" EU 수리권 직격탄…공급 부족설 뒤에 숨은 규제 리스크
美 상원도 '안면인식' 사생활 침해 정조준…빅테크 하드웨어 전략 '사면초가'
美 상원도 '안면인식' 사생활 침해 정조준…빅테크 하드웨어 전략 '사면초가'
이미지 확대보기지난 25일(현지시각) 기즈모도(Gizmodo)와 블룸버그(Bloomberg) 등을 종합하면, 메타와 레이밴(Ray-Ban)이 합작한 '레이밴 디스플레이' 스마트안경의 유럽 출시가 무기한 연기될 처지에 놓였다. 이번 사태는 단순한 재고 문제가 아니라, 일체형 배터리 구조와 인공지능(AI)의 사물 인식 기능이 유럽의 법적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면서 발생한 '규제 리스크'의 결과로 풀이된다.
배터리 일체형 설계의 한계…EU '수리할 권리' 법안과 정면충돌
메타 스마트안경의 유럽 진출을 막아선 첫 번째 장벽은 기기 내부에 고착된 '배터리'다. EU는 최근 전자폐기물을 줄이기 위해 오는 2027년부터 역내에서 판매하는 모든 가전제품에 소비자가 직접 분리·교체할 수 있는 배터리 장착을 의무화했다.
현재 메타의 제품은 안경테 내부에 배터리가 밀봉된 일체형 구조다. 사용자가 수명을 다한 배터리를 직접 갈아 끼울 수 없다는 뜻이다. 블룸버그는 메타가 웨어러블 기기의 특수성을 이유로 규제 면제를 요청했으나, 환경 보호를 우선시하는 EU 당국의 기류를 고려할 때 승인 여부는 매우 불투명하다고 전했다.
이미 시장에는 대안이 존재한다. 중국 알리바바의 '쿼크 AI S1'이나 '인모 고 3(Inmo Go 3)' 같은 경쟁 제품은 배터리 교체형 설계를 채택해 사용 시간을 확보했다. 메타가 세련된 디자인과 경량화를 포기하지 않는 한, 유럽 시장을 위한 전면적인 재설계는 불가피할 전망이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게 데이터"…유럽 AI법(EU AI Act)의 파고
메타가 사활을 걸고 있는 '메타 AI' 기능 역시 유럽의 엄격한 인공지능 규제(EU AI Act)에 가로막혔다. 유럽 당국은 AI 기능을 위험도에 따라 분류해 관리하는데, 안경 카메라를 통해 실시간으로 사물을 식별하고 정보를 제공하는 '컴퓨터 비전' 기능이 개인정보 침해 소지가 크다고 보고 있다.
메타는 AI 기능을 제거한 채 출시하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으나, 이는 제품 경쟁력을 스스로 깎아먹는 악수(惡手)가 된다. 메타 AI는 스마트안경의 정체성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AI 비서 기능이 빠진 스마트안경은 단순한 고가 촬영 장비에 불과해질 것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미 상원 "안면 인식은 사생활 위협"…안팎으로 번지는 '빅브라더' 공포
규제의 파고는 유럽을 넘어 메타의 본진인 미국으로도 확산 중이다. 지난 20일(현지시간) 미국 상원의 론 와이든(Ron Wyden) 의원과 제프 머클리(Jeff Merkley) 의원은 메타가 스마트안경에 안면 인식 기능을 탑재하려는 계획에 대해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보냈다.
의원들은 서한을 통해 "안경 착용자가 타인의 동의 없이 신원을 즉석에서 파악하는 것은 심각한 프라이버시 침해"라고 정조준했다. 미국 정치권마저 눈을 부릅뜨면서 메타의 글로벌 확장 전략은 심각한 차질을 빚게 됐다.
'성능'보다 '지속 가능성' 요구하는 시대…국내 업계에 주는 교훈
메타의 이번 사례는 빅테크 기업이 하드웨어 시장에 진출할 때 직면하는 새로운 '글로벌 스탠더드(국제표준)'를 보여준다. 과거에는 혁신적인 기능과 미려한 디자인만으로 시장을 선도할 수 있었으나, 이제는 설계 단계부터 '환경(수리권)'과 '윤리(데이터 주권)'를 반영하지 않으면 시장 진입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입증된 셈이다.
시장 참여자들 사이에서는 메타가 유럽 시장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제품의 무게 증가를 감수하더라도 배터리 교체 구조를 도입하거나, 규제 당국이 납득할 만한 수준의 개인정보 보호 기술을 새롭게 입증해야 한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이는 향후 AR(증강현실) 글래스 시장 진출을 준비 중인 국내 IT 기업들에게도 '규제 준수 설계(Compliance by Design)'가 기술력만큼이나 중요한 경쟁 요소임을 보여준다.
김주원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