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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존 PMI, 이란 전쟁 여파로 10개월 만에 최저…한국 수출 직격

유가 연초比 3분의 2 폭등·공급망 붕괴…ECB 금리 인상 초읽기
유가 10% 상승 시 韓 수출 0.39% 감소·수입 2.68% 급증 분석
이란 전쟁으로 유로존 민간 경기가 10개월 만에 가장 빠른 속도로 식어 들고 있는 가운데, 인플레이션 압력과 스태그플레이션 경고음이 울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이미지 확대보기
이란 전쟁으로 유로존 민간 경기가 10개월 만에 가장 빠른 속도로 식어 들고 있는 가운데, 인플레이션 압력과 스태그플레이션 경고음이 울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호르무즈 해협이 막힌 지 25일째, 유럽 경제는 성장과 물가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놓치는 최악의 국면으로 빨려들고 있다.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 제조업도 그 파장권을 벗어나기 어렵다는 진단이 잇따른다.
로이터통신과 S&P글로벌이 24일(현지시각) 공개한 3월 유로존 민간 경기 지표는 전선이 얼마나 빠르게 무너지고 있는지를 숫자로 보여줬다.

종합 구매관리자지수(PMI)는 50.5로 10개월 만의 최저점을 찍었다. 2월 51.9에서 한 달 새 1.4포인트 밀려난 것으로, 시장 예상치(51.0)도 밑돌았다.

수치가 말하는 것: 성장 둔화와 비용 폭등의 '가위질’


50은 경기 확장과 수축을 가르는 기준선이다. 50.5는 간신히 플러스 영역에 발을 걸치고 있다는 뜻이다. 세부 지표는 훨씬 가파른 변화를 보였다.

제조업 투입 비용 지수는 2월 58.0에서 3월 68.6으로 10포인트 넘게 치솟았다. 3년여 만에 가장 가파른 상승 폭이다. 기업들이 원료와 에너지를 사는 데 훨씬 많은 돈을 쓰고 있다는 신호다.

동시에 납품 기간 지수는 47.3에서 40.9로 수직 낙하했다. 공급망이 2022년 중반 이후 가장 심하게 꼬이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비용은 뛰고 납품은 막힌다. S&P글로벌 마켓 인텔리전스의 수석 비즈니스 이코노미스트 크리스 윌리엄슨은 24일 "중동 전쟁이 물가를 급격히 끌어올리면서 성장을 짓누르고 있다"며 "유로존 PMI는 스태그플레이션 경고음을 울리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에너지 가격 급등과 전쟁에 따른 공급망 차질 속에서 ECB가 성장과 인플레이션 두 측면 모두에서 우호적인 상황에 있지 않다는 점이 이번 데이터로 분명해졌다"고 덧붙였다.

국가별로는 독일이 상대적으로 버텼다. 반면 프랑스에서는 기업 신뢰 지수가 급격히 꺾였고, 오스트리아·핀란드·포르투갈은 에너지 가격 상승을 직접 이유로 들며 성장 전망을 하향 조정했다.

별도 발표된 유로존 소비자신뢰지수는 2023년 말 이후 최저치로 추락했으며, 역대 최대 낙폭 가운데 하나로 기록됐다.

에너지 충격 해부: 유가 3분의 2 급등, 끝이 안 보인다


전쟁의 핵심 뇌관은 에너지다. 호르무즈 해협 통행량이 평시 대비 80% 넘게 줄어들면서 G-News 유로존 유가는 연초 대비 3분의 2 가까이 뛰었다. EU 전역의 휘발유값은 10% 이상, 경유는 20% 넘게 올랐다.
JP모건의 라파엘 브룅-아게르 이코노미스트는 "에너지 가격 충격이 기업 수익성을 갉아먹고 있으며, 수요 여건과 생산 전반에 넓은 상처를 남기고 있다"고 밝혔다.

ECB는 최근 1년간 목표치인 2%를 유지하던 인플레이션이 낙관적 시나리오에서조차 최소 2.6%까지 오를 것이라고 이미 경고한 상태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ECB 총재는 지난주 "중동 분쟁이 인플레이션에 대한 상방 위험과 경제 성장에 대한 하방 위험을 동시에 부추기고 있다"고 말했다. 시장에서는 다음달 ECB가 기준금리를 인상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ING의 베르트 콜레인 이코노미스트는 "에너지 집약 산업의 회복이 더 어려워질 것이며, 이는 전반적인 생산에 상당히 중요한 문제"라고 말했다. 금리 인상 기대는 이미 주택담보대출 금리 상승으로 이어져 가계 가처분소득을 옥죄고 있다.

역사적으로 중동 전쟁이 장기화됐을 때는 유가 안정도 그만큼 오래 걸렸다. 8년 넘게 이어진 이란·이라크 전쟁 당시 두 배 폭등했던 유가는 전쟁 이전 수준을 되찾는 데 6년이 걸렸다.

UBS의 세르지오 에르모티 CEO도 "중동 분쟁이 세계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하는 동안 에너지 가격은 높은 수준을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한국 제조업의 셈법: '간접 충격'이 더 무섭다


유럽 경제의 흔들림은 한국에 남의 일이 아니다. EU는 한국의 3위 수출 시장이다. 유로존 소비 심리와 기업 투자가 위축되면 반도체·자동차·기계류 등 한국 주력 수출품 수요도 함께 식을 수밖에 없다.

한국무역협회는 유가가 10% 오를 경우 국내 수출이 0.39% 줄고 수입은 2.68% 늘어 무역수지가 빠르게 나빠진다고 분석했다.

증권업계에서는 "호르무즈 해협의 실질적 봉쇄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보다 에너지 시장에 미치는 충격이 크다"며 "원유·가스는 물론 석유 제품과 비료 가격도 단기간에 급등세를 나타낼 것"이라고 진단했다.

산업연구원이 16일 발표한 '미국·이란 전쟁의 리스크 확산과 한국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가장 큰 타격이 예상되는 분야는 석유제품 산업으로 생산비 증가율이 6.30%에 달한다. 화학제품 산업은 1.59%, 고무·플라스틱 산업은 0.46%의 생산비 증가가 각각 예상된다.

정부는 UAE로부터 총 2400만 배럴을 확보했다고 발표했으나, 국내 하루 원유 소비량이 300만 배럴 수준인 점을 감안하면 대체 수급처가 더 필요하다는 게 업계 판단이다.

이번 전쟁이 끝나더라도 유럽의 에너지 인프라 복구에는 수개월이 걸린다. 현재 유로존 성장률이 겨우 1% 안팎에 머물러 완충 여지가 소진된 상태에서, 고유가와 금리 인상이 동시에 가계와 기업을 짓누르는 이 구조는 쉽게 풀리지 않을 것이라는 게 시장 안팎의 공통된 시각이다.

호르무즈 해협에 다시 유조선이 자유롭게 다니는 날이 언제가 될지, 그 답이 나오기 전까지 유럽발 경기 냉각 시나리오는 한국 수출의 셈법을 계속 흔들 것이다.


진형근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inwook@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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