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글로벌이코노믹 로고 검색
검색버튼

TSMC 웨이저자 "中 로봇 묘기는 허상"… 로봇 뇌, 반도체 신뢰성이 결정한다

웨이저자 TSMC 회장, 대만 아시아대 특별 강연 "정밀 센서·무결점 제조 없는 로봇은 운동 전시에 불과"
20년간 연산 성능 100배 도약… AI·로봇 시대, 파운드리 패권 가를 핵심 변수로 부상
웨이저자(魏哲家·C.C. Wei) TSMC 회장은 지난 22일(현지시간) 대만 아시아대학교 명예박사 학위 수여식 강연에서 로봇 산업의 진짜 경쟁력이 화려한 동작이 아닌 이를 제어하는 반도체의 '지능'과 '신뢰성'에서 결판 난다고 강조했다. 이미지=제미나이3이미지 확대보기
웨이저자(魏哲家·C.C. Wei) TSMC 회장은 지난 22일(현지시간) 대만 아시아대학교 명예박사 학위 수여식 강연에서 로봇 산업의 진짜 경쟁력이 화려한 동작이 아닌 이를 제어하는 반도체의 '지능'과 '신뢰성'에서 결판 난다고 강조했다. 이미지=제미나이3
로봇이 백플립을 하고, 붓글씨를 쓰고, 복싱을 한다. 중국 로봇 기업들이 최근 쏟아내는 시연 영상은 그 자체로 장관이다. 그러나 세계 최대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기업 TSMC 수장은 냉정한 한마디를 내놓았다. "뇌 없는 몸짓은 서커스일 뿐이다."
웨이저자(魏哲家·C.C. Wei) TSMC 회장은 지난 22(현지시각) 대만 아시아대학교 명예박사 학위 수여식 강연에서 로봇 산업의 진짜 경쟁력이 화려한 동작이 아닌 이를 제어하는 반도체의 '지능''신뢰성'에서 결판 난다고 강조했다. 디지타임즈가 이날 강연 내용을 상세히 보도했다.

20년간 100배 성능 도약… "반도체가 AI를 깨웠다"


웨이 회장이 1998TSMC에 합류했을 당시 양산 주력 공정은 0.25마이크로미터()였다. 28년이 지난 현재, TSMC2나노미터(nm) 양산을 앞두고 있다. 단순 수치 비교가 아니다. 동일 전력 소비 대비 연산 처리 능력, 이른바 '와트당 성능'이 이 기간 동안 100배가량 향상됐다는 것이 웨이 회장의 설명이다.

그는 청중에게 직관적인 비유를 제시했다.

"20년 전 100미터를 10초에 주파하던 육상 선수가 반도체 발전 속도만큼 진화했다면 지금은 0.1초에 결승선을 통과해야 한다. 2004년 당시 100만 대만달러(4700만 원)에 팔리던 고급 승용차가 트랜지스터 단가 하락 속도를 따랐다면 지금은 1만 대만달러(47만 원)에 판매돼야 한다."

이 비약적 성능 향상이 수십 년간 이론에 머물렀던 거대언어모델(LLM)과 생성형 AI를 현실로 끌어낸 토대라는 것이 그의 핵심 주장이다. 반도체가 발전하지 않았다면 오늘의 챗GPT, 로봇 혁명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논리다.

"중국 로봇 묘기, 진짜 시험은 따로 있다"


웨이 회장이 정조준한 것은 최근 중국 로봇 업계가 주도하는 '퍼포먼스 경쟁'이다. 실제로 올해 초 중국 항저우에서는 독일 프리드리히 메르츠(Friedrich Merz) 총리가 참관한 가운데 인간형 로봇들이 고속 복싱과 서예를 시연했다. 최근 중국 AI 기업들이 공개한 영상에서도 인간형 로봇이 백플립과 무술 동작을 완벽하게 소화해 국제적 이목을 끌었다.
웨이 회장은 이러한 '기계적 민첩성'을 실생활의 '서비스 지능'과 철저히 분리해야 한다고 못 박았다.

"의료·돌봄 현장에 투입되는 로봇은 환자를 과도한 힘으로 안아 다치게 해서는 안 된다. 이를 위해서는 정밀 압력 센서, 촉각 및 온도 감지 소자, 정밀 위치 측정 장치 등 인간의 생물학적 감각을 모방한 반도체 생태계가 필수적으로 갖춰져야 한다."

그는 인텔(Intel)·삼성전자(Samsung Electronics) 등 경쟁사를 겨냥해서도 날을 세웠다. "대량 생산 경험과 무결점 제조 이력 없이는 의료 현장이 요구하는 신뢰성을 보장할 수 없다"면서 "나중에 내가 로봇의 돌봄을 받아야 할 때, 그 로봇 안의 트랜지스터가 TSMC 제품인지 반드시 확인하겠다"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경고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들은 이 발언이 단순한 홍보를 넘어선다고 분석한다. 한 국내 파운드리 전문가는 "첨단 AI 칩의 경우 설계 능력 못지않게 양산 수율(불량 없이 생산되는 비율)이 경쟁력의 핵심"이라며 "TSMC의 수율 우위는 단기간에 따라잡기 어려운 구조적 강점"이라고 평가했다.

피지컬 AI 시대, 한국 반도체 업계 영향은


웨이 회장의 이러한 구상은 젠슨 황(Jensen Huang)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GTC 2026에서 제시한 '피지컬 AI(Physical AI)' 개념과 맞닿아 있다. 젠슨 황은 당시 물리 법칙을 실시간으로 연산해 스스로 이동하는 자율 로봇 시연을 공개하며 "모든 제조 기업은 결국 로봇 기업으로 전환된다"고 선언했다. AI -로봇-파운드리로 이어지는 수직 계열화 경쟁이 사실상 시작된 셈이다.

이 흐름은 한국 반도체 수출 전략에도 직접적인 함의를 갖는다. 현재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로봇용 AI 프로세서보다는 고대역폭메모리(HBM) 공급에 집중하고 있다. 그러나 서비스 로봇이 본격 양산 단계에 들어서면 메모리뿐 아니라 첨단 로직 반도체·센서 소자 수요도 급증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 팹리스(설계 전문 기업)와 패키징 업체들이 이 수요 사슬 어디에 자리를 잡느냐가 향후 수년 내 핵심 과제로 떠오를 수 있다.

웨이 회장은 강연 마무리에서 스스로의 '오만 경계론'을 꺼냈다. "기업의 몰락은 경영자의 오만에서 시작된다고들 한다. 강연을 너무 많이 하거나 명예학위를 너무 많이 받는 것이 오만의 징조라기에 걱정했다. 하지만 시험 없이 박사 학위를 준다는 제안은 거절하기 너무 좋은 조건이었다"고 너스레를 떨어 청중의 웃음을 이끌어냈다. 그는 TSMC를 단순한 제조사가 아닌 인류의 더 나은 미래를 뒷받침하는 글로벌 기관으로 봐달라고 당부하며 인재 유치 의지도 함께 내비쳤다.

로봇이 진정으로 사람 곁에 서는 날, 그 판단과 감각을 구현하는 것은 결국 눈에 보이지 않는 수십억 개의 트랜지스터다. 화려한 동작보다 그 안에 담긴 반도체의 신뢰성이 미래 로봇 산업의 진짜 승부처가 될 것이라는 웨이저자의 경고는, 한국 반도체 생태계가 놓치지 말아야 할 이정표다.


김주원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맨위로 스크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