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확대보기미국과 중국의 경제 관계가 반도체와 식량, 에너지 등 핵심 분야를 중심으로 빠르게 분리되는 이른바 ‘질서 없는 이혼’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무역과 기술 경쟁이 국가안보 문제로 직결되면서 양국 모두 경제 전략의 최우선 목표를 자립과 위험 차단에 두고 있다는 얘기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중 양국이 가장 민감한 분야를 중심으로 경제적 분리를 관리하는 단계에 들어섰다고 5일(현지시각) 보도했다.
WSJ는 중국 동북부 곡창지대에서는 정부 보조금을 받아 콩 재배를 늘리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고 미국 중서부에서는 제조업체들이 중국산 부품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공급망 재편에 나서고 있다며 이같이 전했다.
WSJ에 따르면 중국 지도부는 미·중 경제 분리가 피할 수 없는 흐름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이른바 디커플링이나 디리스킹으로 불리는 이 전환은 중국이 더 이상 서방의 하위 파트너에 머물지 않겠다는 오랜 목표를 반영한다. 저가 상품을 미국에 판매하고 미국 자본과 기술을 흡수해 성장하던 기존 모델에서 벗어나 독자 노선을 걷겠다는 의미다.
미국 역시 중국과의 경쟁을 경제 문제가 아닌 국가안보 사안으로 인식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중국과의 무역을 “비민감 분야 중심으로 균형 있게 재편해야 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지난해 말 공개된 국가안보전략에서도 미국의 경제적 독립 회복을 핵심 목표로 제시했다.
◇ 중국, 1조 달러 투입해 자립 가속
중국은 지난 2024년 초부터 농업과 에너지, 반도체 등 전략 분야의 자급을 위해 약 1조 달러(약 1465조 원)를 투입한 것으로 분석됐다. 인공지능 산업의 핵심인 반도체를 비롯해 식량과 에너지 안보를 동시에 강화하겠다는 전략이다. 이같은 투자로 중국은 이미 친환경 에너지와 전기차 분야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확보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중국은 미국의 기술 통제를 우회하기 위한 전략도 병행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엔비디아의 일부 인공지능 반도체 판매를 승인한 조치조차 중국 내부에서는 장기적으로 미국 기술 의존에서 벗어나는 계기를 앞당길 수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사라 베런 매크로어드바이저리파트너스 파트너는 “중국은 이제 미국을 동등한 경쟁자로 인식하고 있으며 디커플링을 받아들인 상태에서 그 속도를 통제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 미국, 관세·동맹으로 중국 의존 축소
미국은 희토류 등 전략 자원의 중국 의존을 줄이기 위해 일본과 멕시코, 유럽연합(EU)과 협력을 확대하고 있다. 동맹국 간 우대 무역 구역을 설정해 중국의 지배력을 견제하겠다는 구상이다. 중국이 희토류 수출을 제한하면서 이같은 움직임은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관세의 영향도 점차 가시화되고 있다. 중국의 미국 수입 비중은 2025년 말 기준 약 7.5%로 낮아져 2001년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이후 20여 년간의 증가분이 사실상 사라졌다. 미·중 교역 규모는 2010년 수준으로 되돌아갔고 투자와 관광도 양방향 모두 급감했다.
다만 중국은 우회 전략으로 대응하고 있다. 부품을 동남아시아 등 제3국으로 보내 최종 조립한 뒤 미국으로 수출하는 방식이다. 이에 미국은 베트남과 태국 등과 협정을 맺고 중국산 부품 비중을 줄일 경우 관세를 완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 리쇼어링은 제한적…공급망 재편 진행 중
일부 미국 기업들은 관세를 피하기 위해 생산기지를 미국으로 되돌리고 있지만 규모는 아직 제한적이다. 멕시코와 동남아시아가 중국을 대체하는 주요 생산지로 부상하고 있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2025년 미국 오하이오주의 제조업체 가운데 약 9%가 일부 생산을 미국으로 이전했다고 답했다.
미국 산업 부품업체 허스코의 오스틴 라미레스 최고경영자(CEO)는 “일부 고객은 중국과의 연결을 완전히 끊으라고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전기 코일 부품 생산을 미시간주로 옮기는 데 성공했지만 노동 집약적인 주물 부품 등은 여전히 중국 의존이 불가피하다고 설명했다.
자동화와 인공지능은 미국 제조업체의 경쟁력을 높이는 수단으로 주목받고 있다. 오하이오주의 플라스틱 업체 몬트빌플라스틱앤러버의 트레이시 로버츠 CEO는 관세와 자동화 투자가 결합되면서 중국과의 비용 격차를 일부 줄일 수 있었다고 밝혔다.
◇ 콩과 반도체가 상징하는 ‘이혼의 대가’
미·중 분리의 상징적 품목 중 하나는 콩이다. 중국은 쌀과 밀은 자급하지만 사료용 콩은 80% 이상을 수입에 의존해 왔다. 이에 중국은 최근 미국 대신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에서 콩을 조달하는 동시에 자국 생산을 늘리기 위해 파격적인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 헤이룽장성에서는 콩 재배 보조금이 옥수수의 약 17배에 달한다.
반도체 분야에서도 중국은 대규모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2024년 중국 반도체 산업에는 약 475억 달러(약 69조6000억 원)가 유입됐고 중국 집적회로산업투자기금, 이른바 ‘빅 펀드’가 핵심 역할을 하고 있다. 미국의 첨단 장비 수출 통제로 한계에 부딪힌 중국은 수직 적층 방식 등 대안을 모색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미·중 경제 관계가 완전한 단절로 가지는 않겠지만 가장 민감한 영역에서는 분리가 불가피하다고 본다. 미국과 중국 모두 상대방과의 연결을 최소화하면서도 나머지 세계와의 연결은 유지하려는 전략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월가와 외교가에서는 이같은 ‘관리된 이혼’이 향후 수십 년간 글로벌 경제 질서를 규정하는 핵심 변수로 작용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