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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국방부의 고려아연 참전… 10조 광물 동맹, 경영권 분쟁 '핵'으로 부상

美 국방부 합작사, 고려아연 지분 10% 확보 및 74억 달러 투자 단행
트럼프 행정부의 '중국 배제' 전략이 최윤범 회장의 '백기사'로 작용하며 지배구조 논란 점화
MBK·영풍의 '신주 발행 금지' 가처분 신청… 서울 법원 판단이 한미 자원 동맹의 운명 가를 분수령
고려아연 CI. 사진=고려아연이미지 확대보기
고려아연 CI. 사진=고려아연
미국 정부가 한국 재계의 뜨거운 감자인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 한복판에 뛰어들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 의존도를 낮추고 전략 광물 공급망을 독자적으로 확보하겠다며 추진한 투자가, 공교롭게도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의 경영권 방어를 위한 '백기사' 역할을 하게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고 로이터통신이 지난 18(현지시각) 보도했다.

74억 달러 '광물 요새' 구축… 속내는 '탈중국'


미국 정부와 고려아연이 맺은 74억 달러(109200억 원) 규모의 프로젝트는 외형상 완벽한 전략적 동맹이다. 중국이 장악한 글로벌 공급망에서 벗어나려는 미국과 세계 1위 제련 기술을 보유한 고려아연의 이해관계가 정확히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이번 계약으로 고려아연은 미국 테네시주에 대규모 제련소를 건설한다. 이곳에서는 아연, , 구리 등 기초 금속뿐만 아니라 미국 정부가 국가안보 핵심 광물로 지정한 안티모니, 게르마늄 등을 생산한다.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은 이번 투자를 "미국을 위한 큰 승리"라고 치켜세웠다.

하지만 자금 조달 방식과 지분 구조를 들여다보면 상황은 복잡하다. 전체 사업비 가운데 47억 달러(69400억 원)는 대출로, 21000만 달러(3100억 원)는 미 정부 보조금으로 충당한다.

문제의 핵심은 나머지 자본금 투입 구조다. 고려아연은 미 국방부가 의결권 40%를 쥔 합작법인(JV)을 설립하고, 이 법인이 고려아연 본사에 19억 달러(28000억 원)를 투입해 신주 약 10%를 인수하는 방식을 택했다. 미 국방부가 의결권을 가진 합작사가 투자 대상인 한국 본사의 지분을 역으로 취득하는 이례적인 '순환 출자' 형태다.

국방부가 쥔 10%, 경영권 판세 뒤집나


시장과 투자은행(IB) 업계에서는 이번 거래를 최윤범 회장이 경영권 방어를 위해 미국 정부를 우군으로 끌어들인 것으로 해석한다.
현재 고려아연의 지분 구조는 초박빙이다. 최 회장 측 지분은 우호 지분을 포함해 약 32%인 데 반해, 경영권 탈환을 노리는 영풍과 사모펀드(PEF) 운용사 MBK파트너스 연합은 약 46%를 확보하고 있다. 이사 15명 중 11명을 최 회장 측이 차지해 이사회를 장악했지만, 지분율 싸움에서는 열세인 상황이다.

이런 국면에서 미 국방부 합작법인이 지분 10%를 확보하면 판세는 단숨에 뒤집힌다. 3자 배정 유상증자로 인해 기존 주주들의 지분은 희석되고, 최 회장 측은 강력한 우군을 확보해 경영권을 굳힐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반발한 영풍과 MBK파트너스 연합은 지난 16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신주 발행 금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다. 이들은 "미국 제련소 건설 자체는 반대하지 않지만, 3자 배정 유상증자 방식은 기존 주주의 이익을 해치고 현 경영진의 자리보전을 위한 꼼수"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트럼프 '힘의 논리' vs 한국의 '상법'


이번 사태는 국가가 민간 기업의 경영권 분쟁에 어디까지 개입할 수 있는지를 묻는 중대한 시험대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8월 경영난에 빠진 인텔 지분 10%를 인수하는 등 '미국 우선주의'에 입각해 전략 산업에 대한 직접 투자를 서슴지 않고 있다.

그러나 한국 법원의 판단은 중대한 변수다. 한국 상법과 판례는 경영권 분쟁 상황에서 경영권 방어만을 목적으로 한 제3자 배정 신주 발행을 엄격히 제한한다. 만약 법원이 MBK 측의 손을 들어 신주 발행을 막는다면, 미 정부의 자원 안보 구상에도 차질이 불가피하다.

로이터통신은 "트럼프 대통령이 국방부를 '전쟁부'로 바꾸는 행정명령에 서명할 때, 한국의 기업 지배구조 싸움까지 염두에 두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국가가 민간 기업 분쟁에 개입할 때 발생하는 위험성을 꼬집었다.

시장의 반응은 냉랭하다. 지난 15일 합작법인 설립 발표 이후 고려아연 주가는 지난 18일 오전까지 약 16% 급락하며 1337000원까지 밀렸다. 대규모 유상증자에 따른 지분 가치 희석 우려가 투자 심리를 짓누른 탓이다.

공은 서울 법원으로 넘어갔다. 법원의 결정에 따라 10조 원 규모의 한미 광물 동맹이 첫 삽을 뜰 수도, 혹은 좌초될 수도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거칠 것 없는 자원 안보 전략과 한국의 엄격한 기업 지배구조 원칙이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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