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원유 수출 85% 구매 두 강국, 공급선 재편·비용 부담 불가피…'미·중·인 완충 국면'"
이미지 확대보기이번 조치로 글로벌 원유 공급의 7% 비중을 차지하는 러시아산 원유의 주요 수입국인 인도와 중국은 대체 공급선 확보 부담과 수입 비용 상승, 경제성장 타격 등 복합 딜레마에 직면했다고 지난 23일(현지 시각) 월스트리트저널이 전했다.
러시아산 원유 수출 85% 인도·중국이 사들여…제재 직격탄
에너지와 청정공기 연구센터(CREA)에 따르면, 유럽연합(EU)이 2022년 말부터 러시아산 원유 수입 대부분을 중단한 이후 중국과 인도는 러시아 원유 수출의 핵심 시장으로 부상했다. CREA는 올해 5~7월 중국이 러시아 원유 수출량의 47%를 수입했고, 인도는 38%를 수입한 것으로 집계했다.
중국은 올해 러시아산 원유를 월 약 30억 달러(약 4조3100억 원) 규모로 수입해 왔으며, 이는 중국 전체 원유 수입량의 약 5분의 1을 차지한다. 러시아는 인도 석유 수요의 약 3분의 1을 공급하고 있다. 인도는 올해 9월 기준 러시아에서 일평균 약 160만 배럴을 수입했으며, 이는 인도 전체 원유 수입량의 36%에 해당한다.
미 재무부는 지난 22일 러시아 최대 석유 기업인 로스네프트와 루코일 그리고 약 30개 자회사를 제재 대상에 포함했다. 이들 기업은 러시아 원유 수출량의 절반가량을 차지한다. 미국은 제재 대상 러시아 기업과 거래하는 외국 기업들을 2차 제재 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고 밝혔으며, 오는 11월 21일까지 관련 거래를 중단하도록 요구했다.
대체 공급선 확보·수입 비용 급증 '이중고'
인도의 주요 정유업체들은 즉각 대응에 나섰다. 인도 최대 러시아 원유 수입업체인 릴라이언스 인더스트리즈는 로스네프트와의 일평균 약 50만 배럴 규모 장기계약을 중단하거나 축소할 것으로 전해졌다. 릴라이언스 대변인은 "러시아 원유 수입 재조정이 진행 중이며, 인도 정부 지침에 전면 부합할 것"이라고 밝혔다.
인디언 오일, 바라트 페트롤리엄, 힌두스탄 페트롤리엄 등 인도 국영 정유사들도 로스네프트와 루코일에서 직접 공급받는 물량이 없는지 무역 서류를 검토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인도 국영 정유사들이 대부분 중간 거래상을 통해 러시아산 원유를 구매해 왔기 때문에 미국의 제재를 우회할 여지가 있다고 전했다.
중국에서도 시노펙, CNOOC, 젠화 오일 등 주요 국영 석유 기업들이 해상 운송되는 러시아산 원유 구매를 일시 중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데이터 분석업체 케이플러의 무위 쉬 수석 원유분석가는 "중국의 주요 석유 기업들이 로스네프트·루코일 관련 선적 물량에 매우 신중한 태도를 보일 것"이라면서 "러시아 원유 유입이 완전히 중단되지는 않겠지만 단기적 중단은 불가피해 보인다"고 전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인도가 중동·라틴아메리카·미국 등지에서 더 많은 석유를 구매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케이플러의 수밋 리톨리아 수석 분석가는 "인도 정유업체들이 중동·브라질·라틴아메리카·서아프리카·캐나다·미국으로부터 조달량을 늘릴 것으로 예상되나, 높은 운송비가 차익거래 기회를 잠식하고 대규모 대체를 제한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신용평가사 이크라의 프라샨트 바시슈트 부사장은 러시아산 원유에서 벗어나는 것이 인도의 수입 비용 증가로 이어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러시아를 대신해 중동과 다른 지역에서 원유를 구매할 수 있지만 원유 수입 비용이 증가할 것"이라면서 "연간 기준으로 시장 가격의 원유로 대체할 경우 수입 비용이 2% 미만 증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인도가 미국과 무역 협상을 통해 추가 비용을 상쇄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인도 현지 언론은 미국이 인도 상품에 대한 관세를 현행 50%에서 15~16%로 인하하는 대신 인도가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점진적으로 줄이는 내용의 무역 협정이 논의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노무라홀딩스는 최근 보고서에서 "단기적으로 러시아산 원유 재조정 비용이 발생하더라도 미국 관세 인하 혜택으로 상쇄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뉴델리의 싱크탱크 옵서버연구재단의 하시 V. 팬트 전략연구 책임자는 "각국이 트럼프 대통령의 변덕에 따라 극적인 변화를 이룰 수는 없을 것"이라면서도 "모디 총리가 새로운 러시아 제재를 활용해 트럼프 대통령의 석유 관련 요구를 현지 이해당사자들에게 설득하는 수단으로 삼을 수 있다"고 말했다.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트럼프 대통령의 조치가 일방적이며 국제법상 근거가 없다고 비난했다.
글로벌 에너지 시장 '충격파'…유가 5% 급등·OPEC 완충 움직임
트럼프 행정부의 러시아산 석유 제재 발표 직후 지난 23일(현지 시각) 뉴욕상업거래소의 12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은 전장 대비 5.6% 오른 배럴당 61.79달러, 런던 ICE선물거래소의 브렌트유는 5.4% 상승한 배럴당 65.99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미국 재무부와 유럽연합은 동시에 러시아의 주요 에너지기업·금융기관을 대상으로 자산동결·수입금지 등 합동 압박에 나섰다.
시장 분석가 캐피털이코노믹스 등은 "미국의 러시아 에너지 분야 제재 확대로 내년 세계 석유시장이 공급부족 상태에 접어들 만큼 충격이 예상된다"고 진단했다. 러시아산 원유는 전 세계 공급량의 약 7%를 차지하는데, 중국·인도 외 다른 지역에서 단기적으로 이를 대체하기 어려워 국제유가 변동성이 커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반면 일부 투자은행은 "제재 효과가 전쟁 상황의 판도를 바꿀 수준까지는 아닐 것"이라고 비교적 신중한 분석을 내놨다.
미국의 대러시아 원유 제재 조치는 중국·인도의 조달 비용 상승과 경제 충격을 유발하고 있으며, 두 나라 모두 대체 공급선 확보와 무역협상 조정을 통한 부담 완화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에너지 시장 참여자들은 이번 제재가 글로벌 원유 가격·수급 구조와 국제 무역질서에 중장기적 파장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보고 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