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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분석] 미국, 잠수함 건조 '총체적 난국'...中 추격에 '수중 패권' 경고등

핵심 잠수함 인도 최대 3년 지연...숙련공 부족에 생산라인 '삐걱'
中, 연 4~6척 건조 '맹추격'...美, 290억 달러 투입 '산업 재건' 총력
사진=오픈AI의 챗GPT-5가 생성한 이미지.이미지 확대보기
사진=오픈AI의 챗GPT-5가 생성한 이미지.
세계 최강의 수중 패권을 지켜온 미국 잠수함 산업의 기반이 붕괴 위기에 직면했다. 2020년대 초부터 이어진 공급망 차질과 숙련공 부족, 비용 급증이라는 삼중고가 산업 기반을 약화시킨 가운데, 중국이 무서운 속도로 해군력을 증강하며 미국의 아성에 도전하고 있다고 블룸버그통신이 15일(현지시각) 보도했다. 수십 년간 유지해 온 미국의 절대적 수중 우위가 흔들리자 미 해군과 정부, 의회는 산업 기반을 되살리기 위한 총력전에 나섰다.
지난 9월, 중국은 전승절 열병식에서 미 해군 함정과 해저 케이블 감시를 목적으로 설계된 신형 무인잠수함(Uncrewed Submarine)을 공개하며 수중 영역의 야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반면, 같은 시기 미국의 잠수함 산업은 예산 초과와 일정 지연이라는 이중고에 시달리며 사실상 '정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러한 지연은 단순히 신형 무기 몇 기의 도입이 늦어지는 차원을 넘어, 인도-태평양 지역의 힘의 균형을 뒤흔들고 미국의 군사억제력(deterrence)을 약화할 수 있는 중대한 전략 문제로 부상했다.

미 해군이 직면한 위기는 주요 잠수함 건조 계획의 연쇄적인 차질에서 명확히 드러난다. 존 필런 해군성 장관은 지난 5월 의회에서 "해군이 위태로운 처지에 놓였다"고 경고했을 만큼 상황은 심각하다. 그는 "우리 함정이 준비되지 않았거나 함대가 성장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전력을 투사하거나 항행의 자유를 보장할 수 없다"고 토로했다.

위기의 중심에는 미 핵전력의 가장 은밀하고 생존성 높은 축을 담당할 차세대 컬럼비아급 탄도미사일 잠수함과, 공격 잠수함의 주력인 버지니아급 프로그램이 있다. 해군의 2024년 조선 검토 보고서에 따르면 두 프로그램 모두 심각한 생산 지연을 겪고 있다.
노후한 오하이오급을 대체할 컬럼비아급의 첫 함정인 'USS 디스트릭트 오브 컬럼비아함'은 당초 2027년 10월 인도 예정이었으나, 현재는 최대 2029년 3월에나 인도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비용 또한 눈덩이처럼 불어나, 단가는 2021년보다 12% 오른 최소 161억 달러(약 22조 9600억 원)에 이르며, 프로그램 전체 예상 비용은 2024년 기준 1260억 달러(약 179조7500억 원)에서 최대 1397억 달러(약 199조2680억 원)로 급증했다. 두 번째 함정인 'USS 위스콘신함' 역시 계획보다 12% 뒤처져 있다.

공격 잠수함의 주력인 버지니아급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 최근 10척의 블록은 36개월, 그다음 10척은 24개월이나 인도가 지연된다. 이는 AUKUS 협정(미·영·호 3자 안보 동맹) 이행을 직접 위협한다. 당초 미국은 2032년과 2035년에 호주에 기존 함정 2척을 넘겨주고, 2038년에는 신형 함정 1척을 인도할 예정이었으나 현재로서는 이 계획의 지연 가능성이 매우 커졌다. 대릴 코들 해군참모총장은 "오커스 약속을 이행하려면 해마다 2.3척의 잠수함을 생산해야 한다"고 강조했지만, 현실은 2022년 이후 해마다 1.2척 생산에 머물러 있다. 코들 제독은 "현재 납품 능력의 두 배를 제공할 수 있는 획기적인 개선이 필요하다"며 절박함을 드러냈다.

신규 잠수함 건조뿐 아니라 기존 함정의 유지 보수 역시 한계에 다다랐다. 심각한 보수 적체(backlog) 탓에 로스앤젤레스급 'USS 보이시함'은 2015년부터 수리를 기다리며 10년 넘게 작전 불능이며, 12억 달러(약 1조7100억 원)가 넘는 비용을 들인 정비가 끝나고 임무에 복귀하는 시점은 2029년으로 예상된다.

붕괴된 산업 기반..."냉전 후 평화배당의 대가"


이런 총체적 난국의 근본 원인으로는 숙련 인력 부족과 약화된 공급망, 축소된 생산 시설 등 산업 기반의 붕괴가 꼽힌다. 2025년 2월 회계감사원(GAO) 보고서는 잠수함 산업의 인력 문제를 "특히 심각하다"고 진단했다. 조선소의 해마다 이직률이 20~30%에 이르는 등 숙련공 유지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핵심 기술인 용접, 기계가공, 원자로 제작 등에 숙련된 인력은 턱없이 부족하다.

제임스 포고 퇴역 제독은 "냉전 종식 후 '평화배당(peace dividend)'을 이유로 군비를 축소하는 결정을 내렸지만, 결과적으로 좋지 않았다"며 과거의 정책적 판단이 현재의 위기를 불렀다고 지적했다. 코로나19 시기 공급망 붕괴 이후 중소 기술업체들이 후속 세대 확보에 실패하며 폐업이 잇따른 것도 공급망을 더욱 취약하게 만들었다. 제너럴 다이내믹스의 피비 노바코빅 최고경영자(CEO)는 "자재와 부품이 늦게 도착하고, 때로는 예비 검사를 통과한 품질 결함이 발견된다"며 공급망의 불안정성을 인정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70개가 넘었던 조선소는 현재 잠수함 건조가 가능한 민간 조선소 2곳(제너럴 다이내믹스 일렉트릭 보트, 헌팅턴 잉걸스)과 정부 정비창 4곳으로 급감했다. 한정된 시설에서 신규 건조와 유지 보수 수요가 동시에 몰리면서 병목 현상이 극에 달했다.

위기감을 느낀 미국 정부와 의회는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며 산업 기반 살리기에 나섰다. 2025년 재집권한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 해양력 재건'을 기치로 내걸고, 2025 회계연도에 조선소 현대화, 노동력 개발, 공급망 지원을 위해 약 290억 달러(약 41조 3800억 원)의 예산을 배정했다.

2026년 국방 예산안에도 지원책을 구체화했다. 하원은 공급망과 인력 기반 시설 지원에 15억 달러(약 2조 1400억 원), 민간 조선소 임금 인상에 5억2100만 달러(약 7430억 원)를 책정했다. 상원 역시 함정 건조 예산 87억 달러(약 12조4100억 원) 중 27억 달러(약 3조8500억 원)를 잠수함 산업 기반 강화에 직접 지원하기로 했다.

특히 인력 양성에 사활을 걸고 있다. 앞으로 10년간 10만 명이 넘는 신규 인력 채용을 목표로, '국방 제조업 속성 훈련(ATDM)'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 16주 집중 교육으로 숙련공을 길러내고 있다. 또한, 비영리 단체 '블루포지 얼라이언스'와 협력해 3억 달러(약 4200억 원) 규모의 인재 유치와 기술 훈련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온라인 취업 연계망 'buildsubmarines.com'을 개설해 1만 5000개가 넘는 협력업체와 구직자를 연결하고 있다.

中, 건조 속도 4배...미 '수중 우위' 흔들


미국이 내부 문제로 흔들리는 동안, 중국은 무서운 속도로 잠수함 전력을 키우고 있다. 싱가포르 국방전략연구소의 콜린 코 선임 연구원 등은 중국이 해마다 원자력 추진 잠수함 4.5척에서 6척을 건조할 능력을 갖췄다고 분석한다. 미 국방부는 2035년까지 중국의 잠수함 보유량이 80척에 이를 것으로 예측했다.

양국의 격차는 건조 속도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미국의 건조 기간이 평균 84개월이 넘게 걸리는 반면, 중국은 약 48~60개월 만에 한 척을 완성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워싱턴 스팀슨 센터의 켈리 그리코 선임 연구원은 "스텔스는 전투기뿐 아니라 잠수함 함대 역시 핵심적인 축"이라며 "이는 미국이 여전히 상당한 우위를 유지하는 분야"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 우위가 영원할 수는 없다. 콜린 코 연구원은 "미국의 생산 지연은 중국에게 기회가 될 수 있으며, 미국의 인도-태평양 동맹국들을 불안하게 만들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러한 위기 속에서 돌파구를 찾으려는 노력 또한 치열하다. ATDM 프로그램으로 새로운 경력을 시작한 해병대 출신 윌리엄 카이슨은 졸업식 연설에서 결의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일하러 갑시다. 우리가 따라잡아야 할 일이 좀 있는 것 같군요."

카이슨의 다짐은 미국의 수중 패권을 지키려는 힘겨운 추격전이 이제 막 시작됐음을 암시한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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