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산 대체·식량 안보 강화… 브라질 산투스항에 최대 수출 터미널 건설 추진
철도·항만 인프라 투자 확대… 남미 농산물 시장 영향력 확대 전략
철도·항만 인프라 투자 확대… 남미 농산물 시장 영향력 확대 전략

중국이 급증하는 곡물 수요를 충족하고 미국산 농산물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남미 지역에 대대적인 항만 건설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지난 12일(현지시각) 상세히 보도했다. 특히 중국 국영 곡물 거래업체인 코프코(Cofco)는 브라질 산투스 항에 중국 외 지역 중 최대 규모의 곡물 수출 터미널을 건설할 계획으로, 이는 중국의 식량 안보 전략에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WSJ에 따르면, 코프코가 브라질 산투스 항에 건설 중인 수출 터미널은 연간 1,400만 톤의 곡물을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다. 이는 현재 코프코의 연간 수출 능력인 450만 톤에서 무려 3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 WSJ는 이 거대 터미널이 내년쯤 본격적인 가동에 들어갈 것으로 내다봤다.
브라질의 주요 대중국 수출 관문인 산투스 항은 현재 용량 부족과 낡은 기반 시설로 인해 심각한 병목 현상을 겪고 있다. WSJ는 이러한 상황에서 코프코의 대규모 투자가 중국의 안정적인 곡물 확보에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분석했다.
◇ 중국, 남미 인프라 투자로 식량 안보 강화
중국의 남미 지역 기반 시설 투자는 산투스 항만 개발에 그치지 않는다. WSJ는 중국 기업들이 브라질 농업의 핵심 지역을 가로지르는 수백 마일의 철도 건설을 활발히 추진하고 있으며, 페루 태평양 연안에는 35억 달러(약 4조 9598억 원) 규모의 심해 항만 건설 작업이 막바지 단계에 이르렀다고 전했다. 이는 자국 내 물 부족과 경작지 감소 문제에 직면한 중국이 남미의 풍부한 농산물 자원에 대한 접근성을 확보하기 위한 장기적인 전략의 하나로 풀이된다.
미국과의 무역 갈등은 중국의 이러한 움직임에 더욱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주 베이징에서 열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브라질 대통령을 포함한 남미 주요국 정상들의 회담에서도 양측의 경제 협력 강화 방안이 심도 있게 논의된 것으로 알려졌다. 브라질 정부는 낙후된 자국의 도로, 철도, 항만 기반 시설 개선을 위한 중국의 적극적인 외국인 투자를 환영하는 입장이다.
헤난 필류 브라질 교통부 장관은 WSJ와 한 인터뷰에서 "우리는 점점 더 많은 기반 시설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WSJ는 중국의 이러한 남미 공략이 과거 미·중 무역 갈등 국면에서 브라질이 누렸던 반사이익을 떠올리게 한다고 지적했다. 워싱턴 소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분석에 따르면, 2017년부터 2024년 사이 중국의 브라질산 대두 수입은 35%나 늘어난 7,300만 톤에 달한 반면, 같은 기간 미국산 대두 수입은 14% 줄어든 2,700만 톤으로 나타났다. 브라질-중국 비즈니스 협의회 회장인 클라우디아 트레비잔은 WSJ에 "트럼프 행정부 첫 임기 동안 벌어진 상황을 보면 명확히 알 수 있다. 트럼프가 중국산 수입품에 관세를 부과하자 중국은 즉각 보복했고, 브라질은 미국이 주로 공급하던 대두와 같은 품목의 대중국 수출을 크게 늘릴 수 있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 브라질 산투스항, 물류 병목 현상 해소가 '관건'
WSJ는 2023년 기준으로 브라질이 중국 농산물 수입의 약 4분의 1을 차지하며 미국의 점유율은 약 14%로 떨어졌다고 보도했다. 특히 현재 브라질은 중국으로 향하는 대두 물량의 약 70%를 공급하고 있으며, 이 가운데 약 30%가 산투스 항을 통해 운송된다. 파라나구아 항과 북부의 이타키 항, 바카레나 항을 통한 운송량은 상대적으로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산투스 항의 물류 처리 능력은 이미 한계에 달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WSJ는 지난해 산투스 항이 기록적인 1억 8000만 톤의 화물을 처리했으며, 이 가운데 약 60%가 농산물이었다고 전했다. 또한, 물류 컨설팅 업체 마크로인프라의 분석을 인용해 브라질 농산물 벌크 수출 항만 용량의 90% 이상이 사용 중이며, 이는 운영 안전 한계치인 85%를 넘어선 위험 수준이라고 경고했다.
미국과 달리 광범위한 철도망이 없는 브라질은 대부분의 농작물을 트럭으로 산투스 항까지 운송하고 있으며, 하루 최대 2만 대에 달하는 트럭 행렬이 이어지면서 극심한 교통 체증을 유발하고 있다. 산투스 주민인 실비아 페헤이라는 WSJ와 한 인터뷰에서 "이 나라에서 어떻게든 물건이 외부로 나간다는 사실 자체가 놀라울 따름"이라고 현지 상황을 꼬집었다.
뿐만 아니라 브라질 농업은 비료 가격 급등이라는 새로운 난관에 직면해 있다. WSJ는 브라질이 비료 수요의 85%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으며, 주요 공급국인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미국-캐나다 간의 무역 긴장으로 인해 비료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분석했다.
농업 컨설팅 회사 다타그로의 플리니우 나스타리 대표는 WSJ에 "브라질이 엄청난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단숨에 생산량을 늘려 중국의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브라질 자체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산적해 있으며, 이러한 모든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신중한 입장을 밝혔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