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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순영 음악평론가의 오페라 이야기 ② 오페라의 사회적 기능

루소의 '마을의 점쟁이(The Village Soothsayer)'이미지 확대보기
루소의 '마을의 점쟁이(The Village Soothsayer)'
카젤의 신념은 1971년, 함부르크 국립오페라단에 의해 초연된 Mauricio Kagel의 'Staatstheater' 작품이 오페라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음악극 전체에 대한 부정이라고 본다. 카젤은 가수들이 오페라 무대 위에서 자신의 삶인 것처럼 가장하는 것은 전달자의 주체성에 목적을 두지 않고 의미 체계에 토대를 두는 전통적인 오페라의 줄거리 상연이 진부하다고 하며 이를 혁신하고자 했다.
프랑스 오페라의 재료와 아리아의 사용, 희극적 결말, 진지한 내용 대신에 선율의 즐거움에 치중하는 것 등의 특징은 고대 비극의 정신에 위반되지만, 오페라는 언어를 중시하는 관점으로만 판단해서는 안되며, 그런 딜레마는 개혁을 통해 극복할 수 있다. 절대군주체제가 붕괴되면서 외면적 변화의 자유주의 사상과 계몽주의 사상이 흐른다. 예술작품은 계몽주의와 합리주의 영향을 받게 되었고 오페라도 이성과 빛의 세기를 맞이하여 새로운 관심사를 반영하게 된다.

개인의 자유와 평등에 대한 열망, 인간의 이성과 인식 진보에 대한 믿음, 정신적 개혁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백과전서파와 루소의 사상이 크게 영향을 미쳤다. 바로크 시대의 오페라는 봉건귀족의 위신을 나타내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된다. 그들은 자신들이 진정한 귀족임을 과시하기 위해 도덕적, 정신적 덕목을 갖춘 기사도 이상을 신봉하는 신사인 것처럼 행동했고 영웅적 행위와 의리, 절제력과 자제력, 관용과 예절은 이런 부류의 사람이 갖추어야 할 덕목이었다.

군주의 귀족들이 일반인들에게 보여주던 아름답고 조화된 세계의 외관에 속한 것으로, 궁정 예술은 화려하고 장엄한 외관을 과시하는 목적으로 제작되고 수용된다. 신고전주의의 대표적 저술가인 부알로도 쌩떼 브르몽도 같은 입장을 취한 그는 이탈리아 오페라의 특징인 여흥 위주의 오페라관을 배격하고 륄리는 대본을 주요 비판 대상으로 삼고 오페라 작품의 재료로 사랑을 선택하는 것을 비난하였다.
17C 프랑스 비평가들이 오페라의 문제점으로 가장 많이 비난했던 것이 사랑을 예술적 재료로 택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들은 고대 그리스 전통을 따라 도덕적 교화 측면에서 사랑이란 소재는 사회의 도덕성을 해친다고 여겼다. 혁명세력들은 오페라를 통해 혁명 정신을 전파하고 국민을 계몽하고자 오페라 공연 활동은 혁명기에도 지속되었다. 계몽시민 사회에서, 혁명세력은 오페라를 통해 혁명의 정당성을 피력하였고, 작품은 오페라 꼬미끄 양식으로 제작되었다.

계몽 시민사회에서 특히 오페라 꼬미끄가 주목된 것은 서정 비극의 양식화된 연설을 사용하지 않고 대화를 통해 대중의 접근이 용이했고 합창을 중요시했다는 점에 있다. 대다수의 민중들은 자율적인 사고 능력이나 기본적으로 읽고 쓸 수 있는 능력이 없었기 때문에 혁명 세력들이 그들을 일깨워 혁명에 동참시키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예술작품이 개인적으로 생산되기 시작한 것에 이어 시민사회에 이르면 수용도 개인적으로 이루어진다. 시민사회의 예술작품은 그들이 속한 계급의 자기 이해를 객과화한 표현물이라고 할 수 있다. 자기 이해를 위한 것으로 생산되고 수용되는 예술은 더 이상 실제 생활과 결부되지 않고 삶의 외부에 위치하여 이루어졌고, 일상생활 속에서 유용성에 근거한 활동의 하나로 축소되었던 시민은 예술 속에서 자신을 인간으로서 경험하게 된다.

라모는 18C의 지도적인 음악미학자로서의 태도를 표명하면서 '음악에 대한 우리의 직관에 대한 고찰'을 발간하고 루소가 비난했던 모놀로그들을 조목별로 분석하여 표현력이 뛰어남을 반증하였고, 선율이 아니라 화성에 기인하는 것이라 주장한다. 라모는 화성이 기초하고 있는 통일성에서 원리를 찾으려고 했고, 그 목적은 최고의 이성을 현시하는 것이었다. 당대의 오페라는 비극의 요건인 진지한 줄거리를 지녀야 했고 예술적 재료 역시 신화 속에서 취해야 했다.
륄리의 '까드뮈와 에르미온느'이미지 확대보기
륄리의 '까드뮈와 에르미온느'

륄리는 그리스 비극을 신화에게 제재를 취한 양식으로 서정비극을 탄생시켰다. 이는 왕을 칭송하는 말로 가득찬 노래로 첫머리를 시작하는데, 우리는 17C 절대군주 시대의 오페라의 지위와 생산과 수용의 조건을 파악할 수 있다. 서정비극은 륄리의 '까드뮈와 에르미온느: Cadmus et Hermione'로 첫 발을 내딛었다. 르쩨르는 오페라를 당대의 프랑스 문학 비평계의 기준이었던 신고전주의적 관점으로 고찰하여 이성이 가장 중요한 판단기준으로 내적 감정은 법칙에 의해 교정되고 강화되어야 하며 음악은 보완적 요소로 착용해야 하는 것이 17C에 륄리가 성취하려고 노력한 것이다.

이탈리아 오페라는 감정에 호소하는 비합리적인 면이 있고 프랑스 오페라는 자연스러움을 가장 잘 나타낼 수 있었다. 예술의 사회적 기능이라는 것은 단지 현실의 불합리한 상황에 대한 불만 해소와 자기만족을 추구하는 것만이 아니며 , 작품의 내용을 사회화함으로써 성취되는 것도 아니다. 시대에 따라 특정 지어지는 생산과 수용 계층에 따른 가변적인 것으로서, 예술과 사회 영역 어느 한편에 종속되지 않고 비판적이며 상호 보완적 관계를 유지할 때 이루어 진다.

오페라 논쟁은 글룩이 종지부를 찍는다. 18C 프랑스에서 마지막 논쟁은 글룩의 지지자들과 피치니 지지자들을 중심으로 일어났다. 피치니를 옹호자들이 유희의 지능에 초점을 두었던데 반해, 글룩은 칼짜비치와 함께 이탈리아적인 오페라 경향을 비판하고 진지한 오페라를 강조한다. 그는 양립하는 진영들의 가장 근본적 원리들을 조화시켜 전통주의와 진보주의, 루소의 추종자들과 라모의 추종자들, 합리주의자와 경험주의자간의 투쟁을 완화 해결하여 글룩의 오페라관은 프랑스 고전주의, 백과전서파, 카메라타의 초기 오페라 미학 등 여러 요소들을 취합한 종합적 성격을 띤다.

정순영(음악평론가 겸 작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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