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확대보기몸은 서로의 중심을 빌려 하나의 생명체를 이루고, 겹친 팔의 선은 공간에 새로운 해부학을 그린다. 정면의 완벽한 축 위에서 생성된 이 형상은 조각과 춤의 경계를 지우며, 움직임은 관계의 구조를 드러낸다. 절제된 빛 속에서 몸은 상징적 존재가 된다. 이 장면은 라반의 공간 이론과 카운터 밸런스 기법, 듀엣 파트너링의 신체 조형성이 연상된다. '둘이 하나가 되는 신체'라는 개념을 시각적으로 구현하여 높은 안무적 완성도를 보여준다.
하나경은 전통춤 어법을 바탕으로 동시대의 감각을 더하는 무용가이다. '숨, 짓'(Flow and Flutter)은 ‘무대디자인’, ‘미디어아트’. ‘창사’(唱詞)가 함께 한다. 창덕궁 후원 연경당을 빌어오고, 글씨와 누에고치로 작품의 이해를 돕는다. 조화되는 라이브 박접무 가사는 순간의 찰나와 찬란함을 거듭 강조한다. 나비의 일생은 현대 음악이 주가 되는 흐름 속에 ‘박’의 소리로 시종을 알린다. 편종과 편경의 활용, 창사 라이브를 통해 정재(呈才)의 정체성이 지켜진다.
전통춤이 시대의 감각과 만나면 운기 생동한다. 하나경은 '숨, 짓'에서 전통예술의 현재성을 설득력 있게 증명한다. 그녀는 궁중정재 박접무(撲蝶舞)를 창작의 원형으로 삼아, 생명의 순환과 존재의 의미를 탐구하는 철학적 무용으로 확장한다. '숨'은 생명의 시작이자 존재의 근원, '짓'은 그 생명이 세계와 관계 맺는 몸의 언어이다. 두 요소는 인간 존재를 설명하는 미학적 장치이다. 안무가는 '숨, 짓'에서 춤은 몸을 통한 사유임을 조용하면서도 깊이 있게 드러낸다.
작품의 중심 모티브인 나비는 동양 미학에서 변화와 순환, 자유를 상징하는 존재이다. 하나경은 박접무 속 나비를 단순한 자연의 이미지가 아니라 인간 존재의 은유로 전환한다. 애벌레에서 번데기, 그리고 비상하는 나비의 과정은 인간이 성장과 인내를 통해 자신의 삶을 완성해 가는 과정과 겹친다. 이때 춤은 서사를 설명하지 않는다. 오히려 움직임의 리듬과 공간의 호흡 속에서 관객 스스로 자신의 삶을 투영하도록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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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확대보기무용현상학의 관점에서 이 작품은 몸을 하나의 대상이 아니라 세계를 경험하는 주체로 바라본다. 무용수들(이도경·박하영·홍유담·김혜령·최승은·소리꾼 김보라)의 몸은 단순히 안무를 수행하는 도구가 아니라 존재를 사유하는 현상이 된다. ‘숨’은 몸 안에서 시작되지만, 공간으로 확장되고, ‘몸짓’은 개인의 표현을 넘어 타인과 세계를 연결하는 관계의 언어가 된다. 이러한 점에서 '숨, 짓'은 움직임 자체보다 움직임이 발생하는 존재의 조건에 더 깊은 관심을 기울인다.
미학적 측면에서도 '숨, 짓'은 높은 완성도를 보여준다. 흑백으로 나뉜 무대는 삶과 죽음, 탄생과 소멸, 현실과 이상이라는 이중적 구조를 상징하며, 창덕궁 연경당에서 착안한 공간 구성은 한국적 미감을 현대적 공간언어로 치환한다. 공간은 또 하나의 춤 의미를 생성한다. 절제된 영상은 움직임의 여백을 확장하고, 보이지 않는 시간의 흐름을 가시화한다. 영상과 조명, 음악이 하나의 리듬으로 어울리면서 관객은 시간의 흐름으로 들어가는 경험을 한다.
안무가의 시선에서 전통은 현재적 몸 안의 신생 창조 에너지이다. 창사의 활용은 더욱 의미심장하다. 박접무의 전통 창사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면서도 정재의 정신을 살린다. 육성은 움직임과 동일한 비중의 공연 언어이다. 박접무는 오늘날 우리의 삶을 비추는 거울이 된다. 인간의 호흡에서 비롯되는 소리는 춤의 리듬과 만나 생명의 진동을 형성하고, 작품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호흡체로 완성한다. 이는 한국 창작춤의 향방을 제시하는 중요한 미학적 성취다.
'숨, 짓'에서 자연과 쉼의 공간인 양평이라는 장소성은 '숨'이라는 작품의 철학과 연결되며, 인간과 자연의 공존이라는 동시대적 담론을 형성한다. 장소는 의미를 생성하는 중요한 미학적 요소이다. '숨, 짓'은 몸의 움직임을 통해 삶의 본질을 질문한다. 찰나의 날갯짓이 모여 찬란한 비상을 이루듯, 인간의 삶 또한 수많은 작은 순간들이 축적되어 완성된다. 하나경은 단순하지만, 깊은 진실을 전통춤 언어와 현대 공연미학을 결합하여 설득력 있게 형상화하였다.
이미지 구성의 인상을 파일 형식으로 살펴본다.
나비가 가진 존재 방식을 한국춤으로 옮긴다. 낮은 자세는 생명의 근원을 품고, 고요한 호흡은 비상을 준비하며, 부채는 지나간 움직임의 흔적을 남긴다. 반복되는 군무는 하나의 질서 속에서 각자의 생명성을 드러내며 한국무용이 지향하는 미학, 자연의 리듬과 기운을 몸에 머물게 하는 예술이라는 관점과 잘 맞닿아 있다. '나비'는 생명이 움직이기 직전의 고요와 그 움직임이 남기는 여운을 상징한다.
컨템포러리 댄스의 특성이 두드러진다. 움직임은 빠른 기술적 동작보다 호흡, 신체 중심의 안정성, 공간 확장, 지속적인 흐름을 강조한다. 라반 움직임 분석으로는 부드러운 무게감, 지속적 시간감, 자유로운 흐름의 역동적 특성이 두드러지며, 형태적으로는 상승, 개방, 확장의 형태가 나타난다. 물리적 이동보다 내적 에너지의 발산과 신체의 공간적 확장의 움직임이다. 정지된 순간 속에서도 다음 움직임을 예비하는 긴장과 호흡의 흐름이 살아 있다.
신체 간 관계성을 핵심으로 한다. 움직임의 중심은 상호 지지와 무게 공유, 접촉, 집단적 중심에 있다. 라반 움직임 분석으로는 둘러싸기·모아들이기의 형태와 지속적 시간감, 유연한 공간감, 상대를 지지하기 위한 적절한 무게 사용이 두드러진다. 세 무용수는 각자의 몸을 하나의 유기체처럼 기능하며, 움직임은 내부의 관계와 호흡을 형성하는 데 집중한다. 집단의 응집성, 상호 의존성, 공동의 균형을 움직임의 핵심 원리로 삼는 군무가 보인다.
오브제를 활용한 현대무용의 특성을 보인다. 무용수들은 꺾인 척추와 낮아진 무게중심으로 오브제의 하중을 몸 전체로 분산시킨다. 라반 움직임 분석에서는 강한 무게감, 지속적 시간감, 직접적 공간감, 묶인 흐름의 움직임의 질이 두드러지며, 형태적으로는 굽히기, 둘러싸기, 응축하기 유형이 나타난다. 트리오가 동일 동작 반복의 동시 움직임은 신체와 오브제가 하나의 동체를 이루며, 균형·하중·반복을 통해 신체의 물리적 경험과 집단적 움직임을 탐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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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확대보기무용수의 몸은 더 이상 하나의 육체가 아니다. 움직임 자체보다 움직임이 남기는 흔적을 작품의 핵심 언어로 삼고 있으며, 신체는 동작의 수행자가 아니라 공간과 시간의 매개체가 된다. 중첩된 팔의 궤적은 시간을 조각하고, 수직으로 낙하하는 빛은 공간을 건축한다. 안무는 시간의 결을 드러내며, 관객은 움직임의 기억을 바라보게 된다. 이 작품은 라반의 움직임 이론, 미니멀리즘 무대 미학, 현대 질감의 신체·공간·시간 통합 개념을 효과적으로 구현한다.
안무는 시선을 움직인다. 신체·공간·빛·오브제를 하나의 조형 언어로 통합한다. 사인무의 경우 하나의 호흡을 공유하면서도, 집단적 신체를 구성하며, 무대는 움직임을 조직한다. 사선으로 흩어지는 팔과 굽이치는 몸의 선은 공간에 보이지 않는 생명의 맥을 표현하며, 후면의 백색 사각은 탄생과 통과의 문처럼 군무를 감싼다. 전경의 유기적 오브제는 신체의 서사를 무대 밖으로 연장하며, 안무는 응축된 시간의 서사적 밀도를 획득한 살아 있는 조형물로 완성된다.
몸은 바닥을 향해 깊이 엎드리고, 한 사람만이 빛의 문턱 앞에 선다. 반복되는 절의 자세는 집단적 의례의 리듬을 형성하며, 청록의 천은 신체 위를 흐르는 바람과 물의 기억처럼 움직임을 이어간다. 부채는 팔의 연장을 넘어 호흡을 가시화하고, 절제된 무대는 한국춤의 여백과 현대무용의 최소주의가 만나는 지점을 드러낸다. 안무는 의식의 시간을 체현하며, 관객은 움직임을 둘러싼 침묵의 밀도를 경험한다.
낮고 안정된 중심을 기반으로 좌우 대칭의 공간 구성, 부채를 활용한 곡선적 팔동작, 체중 이동과 몸통 회전, 부드럽게 지속되는 움직임의 흐름이 조화를 이룬다. 무용수들은 각기 다른 자세를 취하면서도 하나의 통합된 조형미를 형성하며, 정지된 순간에서도 다음 동작을 예고하는 긴장감과 연속성을 만든다. 이러한 구성은 공간을 균형 있게 활용하면서도 에너지가 중앙에서 외곽으로 확장되는 인상을 주어, 시각적 리듬과 서정적인 움직임의 미학을 그려낸다.
정지와 이동, 독무와 군무, 개인과 집단의 대비를 중심으로 구성된 안무 장면에서 전경의 무용수는 최소한의 움직임과 안정된 자세를 통해 응축된 감정과 존재감을 드러내고, 후경의 무용수들은 일정한 속도의 보행과 규칙적인 대형을 유지하며 시간의 흐름과 공동체성을 표현한다. 부채는 상징적 소품, 전후 공간을 명확히 구분한 무대 구성은 관객의 시선을 효과적으로 이끌며 작품의 서사와 정서를 더욱 깊이 전달한다.
'숨, 짓'은 그 모색이 형식적 실험에 머무르지 않고 존재와 삶에 대한 철학적 성찰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한국 창작춤은 이제 전통성과 동시대성 사이에서 새로운 균형을 모색한다. 전통은 이 작품 안에서 더 이상 과거가 아니다. 그것은 오늘의 숨이며, 지금, 이 순간 살아 움직이는 몸짓이다. 바로 그 지점에서 '숨, 짓'은 동시대 한국무용이 도달한 미학적 성취를 웅변하고, 앞으로의 한국 창작춤이 나아갈 방향을 조용하지만 깊은 울림으로 제시하였다.
장석용 문화전문위원(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 사진=푸트로아트프로젝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