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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예술가 정유진의 춤, 몸의 언어로 신뢰를 잇다

[나의 신작 연대기(84)] 정유진(현대무용안무가, ‘B. Art Collective’ 예술감독, 부산과기대 교수)의 '8음', '烏瞰圖 : 까마귀가 내려다본 세상', '7인의 아해', '우리의 속도'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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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진(현대무용안무가, ‘B. Art Collective’ 예술감독, 부산과기대 교수)

정유진(鄭有珍, Jung Yu-Jin)에게 예술은 서로 다른 감각과 해석이 중첩되어 새롭게 생성되는 열린 장(場)이다. 그녀에게 춤은 몸으로 사유하고 관계를 형성하는 감각의 언어이며, 공연은 무용수와 관객의 시간, 기억, 정서가 교차하는 미학적 경험의 과정이다. 그녀의 작품은 결론 제시보다 몸의 움직임이 생성하는 여백과 긴장 속에서 질문을 지속하며, 관객은 자신의 삶과 감각을 투영하는 능동적 해석의 주체로 작품의 의미를 완성한다. 이러한 창작관을 관통하는 핵심은 서로 다른 몸과 경험이 충돌하고 공명하는 과정에서 발견되는 신뢰와 관계의 미학이다. 그녀에게 신체는 타자와 세계를 인식하는 감각의 매개이며, 춤은 차이의 공존을 가능하게 하는 근원적인 예술적 언어가 된다.

정유진은 부암아트센터 대표, 한국홀리스틱융합교육학회·한국예술경영학회 이사로서 창작과 교육, 연구, 예술경영을 미학적 실천으로 통합해 온 공연예술가이다. 그녀의 안무는 몸의 움직임에서 출발하지 않는다. 작품은 먼저 스케치북 위에서 정서적 지형으로 태어나며, 안무는 작품 전체를 관통할 감각의 구조와 분위기를 설계하는 일에서 시작된다. 그녀는 장면을 선과 면의 이미지로 구성하고, 빛의 흐름과 무용수 각자의 신체성이 만들어낼 운동의 궤적, 공간의 밀도와 시선의 방향, 정서의 리듬을 치밀하게 연구한다. 그의 안무에서 움직임은 공간과 시간, 신체와 감각이 상호 침투하며 생성하는 관계의 결과이다. 몸은 공간을 감각하고 타인과의 거리를 새롭게 조직하는 존재론적 장치이다.

정유진의 안무에서 중요한 것은 감각의 일치이다. 작품 안에서 무용수들은 서로 다른 신체와 경험을 지닌 채 동일한 공기와 호흡, 정서적 장(場)을 생성하는 감각의 공동체를 이룬다. 그녀가 말하는 "움직임이 다른 것은 틀린 것이 아니다. 어려운 것은 서로 다른 사람들이 같은 분위기를 품게 만드는 일이다."라는 믿음은 그녀의 예술세계를 관통하는 미학적 원리이다. 춤은 각기 다른 몸들이 관계를 맺으며 감각을 직조해 가는 생성의 과정이 된다. 지난 3년간 축적된 정유진의 작업은 몸을 통해 관계와 신뢰, 공존의 가능성을 탐구해 온 미학적 궤적이며, 그 기록은 동시대 공연예술에서 신체가 어떻게 타인과 세계를 새롭게 감각 하는지를 보여주는 예술적 증언이 된다.

'8음'(2023) : 인간이 완성하는 마지막 음(音). '8음'은 정유진의 창작 철학이 가장 응축된 작품이다. 클래식 음악은 일곱 개의 음으로 완성된다. 그녀에게 마지막 한 음은 인간이 살아가며 완성된다. 깃털 의상의 무용수들은 수개월 동안 연습했다. 무대에서의 아름다움과 달리, 연습실에서는 매일 같이 깃털이 흩날렸고 검은 염료와 먼지가 공기 속에 떠다녔다. 연습을 마치고 귀가하면 멈추지 않는 기침에 콧속은 까맣게 물들었다. 누구도 의상을 바꾸자는 말을 하지 않았다. 무대 위에서는 비로소 '그들만의 여덟 번째 음'이 완성되었다. 작품 속 지팡이는 오선지의 선처럼 인간을 둘러싼 규율과 경계를 상징했다. 무용수들은 그 선을 넘고, 기대고, 버티며 각자의 삶을 하나의 음악으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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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진 안무의 '8음'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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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진 안무의 '8음'
부산국제연극제 정유진 안무의 '8음' 포스터이미지 확대보기
부산국제연극제 정유진 안무의 '8음' 포스터
정유진 안무의  '오감도: 까마귀가 내려다본 세상'이미지 확대보기
정유진 안무의 '오감도: 까마귀가 내려다본 세상'
정유진 안무의  '오감도: 까마귀가 내려다본 세상'이미지 확대보기
정유진 안무의 '오감도: 까마귀가 내려다본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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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진 안무의 '오감도: 까마귀가 내려다본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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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진 안무의 '오감도: 까마귀가 내려다본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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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진 안무의 '오감도: 까마귀가 내려다본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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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진 안무의 '오감도: 까마귀가 내려다본 세상'

'烏瞰圖 : 까마귀가 내려다본 세상'(2024)​ : 정유진이 안무 이전에 문학을 사유하고 존중하는 법을 익힌 시간이었다. 이상의 '오감도'를 몸 언어로 표현하기 위해 텍스트를 읽고, 움직임으로 응답하며, 다시 이미지를 그리고 문학으로 되돌아가는 해석의 순환이 거듭되었다. 그 과정은 시가 품은 낯선 감각과 리듬을 신체의 지각으로 전이시키는 미학적 탐구였다. 장면을 위해 축적된 수십 장의 스케치는 무대 전체의 감각을 설계하는 시각적 악보였으며, 조명의 결, 공간의 밀도, 무용수 사이의 거리와 침묵까지 정서적 풍경으로 다듬어졌다. 안무의 완성도는 무대 전체를 관통하는 분위기와 감각의 응집력에서 드러난다. 서울무용제 우수작은 문학과 춤이 공명하는 공동의 감각장을 구축해 내었다.

'7인의 아해'(2025)​ : 이상의 '아해'를 동시대 인간 존재의 감각으로 재맥락화한다. 현대인의 내적 불안은 현대무용의 신체 언어로 감각의 층위로 전환된다. 절제된 움직임과 폭발적인 신체 에너지가 교차하는 무대는 긴장과 여백 공존의 장을 형성하며, 반복과 중첩, 응축과 이완을 거듭하는 움직임은 신체가 기억하는 시간과 감각의 결을 축적해 나간다. 무용수들의 몸은 끊임없이 불안정한 균형을 형성하고, 그 관계의 역학은 현대인의 초상을 집단적 신체성으로 가시화한다. 이 작품을 기점으로 정유진의 안무는 분위기와 정서를 공동으로 경험하게 하는 감각의 미학으로 진전한다. 춤은 몸과 몸 사이에서 생성되는 긴장과 공명을 통해 관객의 지각을 새롭게 환기하는 미학적 사건으로 기능한다.

'우리의 속도'(2026) : 이전 작업들이 던져온 인간과 관계에 대한 질문이 하나의 신체적 사유로 집약된 무용극이다. 세워진 18장의 전지는 타인과 나 사이의 심리적 경계이자 관계의 구조를 시각화하는 장치이다. 무용수들이 종이를 찢고 전진하는 행위는 고정된 경계를 통과하며 새로운 관계의 가능성을 열어가는 몸의 선언이다. 신체는 끊임없이 충돌하고 기대며 서로의 리듬을 조율하는 관계적 존재로 번진다. 개인과 집단의 움직임은 분리와 결합을 반복하며 유기적 풍경을 형성하고, 타자와 함께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미학적 탐구가 된다. 라이브 음악과 움직임은 각자의 호흡으로 존재하며 하나의 정서를 생성한다. 이 공연은 관객 각자가 자신의 기억과 경험을 통해 작품의 의미를 재구성하도록 열어 둔 감각의 공간이며, 춤이란 서로 다른 존재들이 만나 생성하는 지속적인 해석의 과정임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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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진 안무의 '7인의 아해'
정유진 안무의  '7인의 아해'
정유진 안무의 '7인의 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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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진 안무의 '7인의 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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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진 안무의 '우리의 속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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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진 안무의 '우리의 속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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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진 안무의 '우리의 속도'
정유진 저 '극장, 예술을 경영하다'이미지 확대보기
정유진 저 '극장, 예술을 경영하다'
부암아트센터이미지 확대보기
부암아트센터

정유진에게 부암아트센터는 예술이 지속되는 환경을 만드는 공연예술 플랫폼이다. 오랜 창작과 교육 현장을 경험하며 그녀는 명작 창조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예술가가 연구하고 창작하며 성장하는 기반 조성임을 깨닫는다. 이에 부암아트센터를 창작, 교육, 연구, 축제, 국제 교류가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복합문화예술 플랫폼으로 운영하며, 예술가와 관객, 교육과 현장, 지역과 사회를 잇는 문화예술 생태계를 구축한다. 그녀의 저서 '극장, 예술을 경영하다'는 이러한 철학이 담겨 있으며, 예술 경영을 사람과 예술을 연결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설계하는 창조적 실천을 제시한다.

이러한 비전은 부암공연예술제와 즉흥연기페스티벌 INTERPLAY를 비롯한 여러 프로젝트로 실현되고 있다. 신진예술가 공모, 창작 리서치, 쇼케이스, 문화예술교육, 국제예술교류 등은 예술가의 지속적 성장 구조를 만드는 과정이다. 정유진은 자신의 작품 창작보다 더욱 많은 예술가가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고 다음 무대로 전진할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드는 예술가로 기억되기를 바란다. 그녀는 부암아트센터를 중심으로 국내외 예술가들이 함께 연구하고 협업하는 국제 공연예술 플랫폼을 구축하며, 몸의 언어를 통해 사람과 사람, 예술과 사회를 연결하는 미래를 만들고자 한다.

정유진은 자신을 안무가에 한정하지 않는다. 창작자, 교육자, 예술경영자는 서로 다른 역할이 아니라 하나의 예술을 완성하는 과정이라고 믿는다. 창작은 시대를 향한 질문을 몸의 언어로 풀어내는 일이며, 교육은 그 경험을 다음 세대와 나누어 스스로 사고하는 예술가를 길러내는 일이다. 예술경영은 좋은 예술이 지속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실천으로, 부암아트센터와 비아트컬렉티브(B. Art Collective)를 통해 공연 제작, 문화예술교육, 국제교류, 신진예술가 지원 등 창작과 교육, 현장을 연결하는 예술 생태계를 구축해 나가고 있다.

정유진의 예술 철학은 오랜 창작과 교육, 단체 운영의 경험 속에서 더욱 깊어졌다. 그녀는 완성도 높은 작품보다 사람을 이해하는 일이 예술의 본질임을 깨달은 이후, 창작의 중심은 기술이 아닌 사람과 관계, 결과보다 과정으로 옮겨갔다. 이제 그녀가 만들고 싶은 것은 작품만이 아니라 예술가가 자신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오래 창작할 수 있는 환경이다. '얼마나 좋은 작품을 만들었는가'보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자신의 가능성을 발견하도록 도왔는가'라는 질문은 오늘도 정유진이 예술과 삶을 이어가는 가장 중요한 가치가 되고 있다. 그녀의 안무작은 그렇게 탄생되었다.


장석용 문화전문위원(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 사진=B. Art Collect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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