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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을 것은 가족밖에"…舊怨 자식 대까지 대물림 안돼

[심리학자 한성열의 힐링마음산책(134회)] 가족 동일체 문화와 심리적 연좌제

한성열 고려대 교수

기사입력 : 2018-03-14 11:00

우리나라는 유독 ‘가족주의’가 강한 문화를 가지고 있다. 아마도 5000년 동안 강대국에 둘러싸여 있는 지리적 조건 때문에 수많은 내우외환(內憂外患)에 시달린 아픔의 역사에서 배태된 문화일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안으로는 탐관오리와 양반들에게 시달리며 고통 받았던 역사에서 “힘들 때 역시 믿을 것은 가족밖에 없다”라는 지혜를 터득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나라 가족주의의 특징을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가족동일체” 의식이다. 온 가족이 모두 하나라고 느끼는 이 의식은 아직도 가족을 분리될 수 없는 가장 기본적인 단위로 여기는 것이다. 가족 중 어느 하나에게 해를 입히면 그것은 바로 가족 전체에 해를 입힌 것으로 간주하고, 온 가족이 또는 가족 중 힘센 누구라도 나서서 맞대응을 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심지어는 부모 대(代)에서 해결하지 못한 구원(舊怨)을 자식 대까지 대물림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기도 한다.

국내 가족주의 특징 "가족동일체"


온 가족이 모두 하나라고 느껴


절대 분리할 수 없는 기본 단위


‘인간 경험의 사회문화적인 차원과 심리적인 차원의 상호관련성’을 연구하는 심리인류학에 큰 공헌을 한 프랜시스 슈(Francis Hsu, 1920-1973)에 의하면,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아시아 국가들은 가족 관계 중에서 아버지-아들(父-子)의 관계를 중요시하는 특징이 있다. 아버지-아들 중심의 문화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연속성(連續性)이다. 현재의 나는 아버지의 아들인 동시에 내 아들의 아버지다. 내 아들은 아들인 동시에 그의 아들, 즉 나의 손자의 아버지다. 이처럼 부-자 중심의 가족관계에서는 아들은 동시에 아버지이기도 하다. 이와 같은 관계는 윗대로 올라가도 마찬가지다. 즉 이들은 조상(祖上)이 된다. 이처럼 나의 존재는 조상과의 연결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다.

한국은 가족관계 중에서 부자지간(父子之間)의 관계를 중요시한다. 부자지간의 관계는 또 연속성을 특징으로 하며, 결국 나의 존재는 조상과의 연결을 통해 만들어진다.

마찬가지로, 현재의 아들은 동시에 손자의 아버지이고, 손자는 증손자의 아버지이고 증손자는 고손자의 아버지다. 이와 같이 현재의 아들은 동시에 아버지이고, 그 자손들의 관계도 앞으로도 계속 마찬가지로 이어진다. 이들은 내 아들과 그 아들을 통해 계속 이어져 내려가는 자손(子孫)이 된다. 즉 아버지-아들의 연대(連帶)는 위로는 조상과 아래로는 자손을 이어주는 연결고리의 역할을 한다. 이 고리가 대대로 이어지는 가족동일체 의식의 문화적 기원(起源)이 된다. 이런 문화적 배경에서, 자기 대에서 아들을 못 낳으면, 즉 대가 끊기면 ‘죽어 조상 뵐 면목’이 없게 된다.

이런 문화에서는 아버지와 아들은 ‘한 몸’ 즉 동일체이다. 아버지와 아들은 한 몸이므로 아버지의 것은 당연히 아들의 것이 된다. 즉 아버지의 것을 물려받는 ‘세습(世襲)이 당연시된다. 아버지는 모든 어려움을 감내해가면서 가문을 일으켜야 한다. 그리고 그 결과는 자연히 아들 특히 맏아들에게 물려주는 것이 관례이다. 북한에서 최고 권력이 할아버지부터 손자까지 3대에 걸쳐 세습이 가능한 것도 이런 문화적 배경이 있어서 가능한 것이다.

3월 8일 세계여성의 날을 맞아 서울 명동 거리에서 미투운동 동참을 뜻하는 검정색, 보라색 의상을 입은 한국YWCA 연합회원들이 여성의 날을 상징하는 장미, 미투운동 지지와 성폭력 근절을 위한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뉴시스이미지 확대보기
3월 8일 세계여성의 날을 맞아 서울 명동 거리에서 미투운동 동참을 뜻하는 검정색, 보라색 의상을 입은 한국YWCA 연합회원들이 여성의 날을 상징하는 장미, 미투운동 지지와 성폭력 근절을 위한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뉴시스

남편과 아내는 ‘일심동체(一心同體)’의 관계, 즉 마음과 몸이 하나로 모아진 관계이다. 이 관계는 촌수(寸數)도 없는 관계이며, 다른 어떤 관계에서도 볼 수 없는 밀접하고 굳게 결합한 사이이다. 물론 가부장제에서 남편과 아내가 동등한 지위를 가지지는 않는다. ‘부창부수(夫唱婦隨)’라는 말에서 보듯이 남편이 주가 되고 아내는 그 뜻에 순종하는 관계이다. 하지만 둘 사이는 한 몸과 한 마음을 가지는 관계이다.

남편과 아내가 일심동체이고, 아버지와 아들이 동일체이니 당연히 모든 가족이 하나, 즉 동일체이다. 이런 의식은 힘들 때나 혼란스러울 때 일치단결하여 고난을 극복하는 데 제일 효과적인 관계가 된다. 만약 가족구성원 각자가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고, 자신의 주장대로 행동한다면 어려움을 극복하기 이전에 이미 지리멸렬해질 것이고 ‘콩가루 집안’이라고 비난받는다. 문화는 ‘한 조직이 주어진 환경에 제일 효과적으로 적응하는 생활양식’이라고 손쉽게 정의한다면, 최근까지는 이런 문화를 가지고 있는 것이 제일 효과적으로 가족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생활양식이었을 것이다.

이처럼 가족동일체 의식은 환경에 효과적으로 적응하는 생활양식이다. 하지만 이 의식으로 인한 피해도 역시 적지 않았다. 예를 들면, 연좌제(緣坐制)를 둘 수 있다. 연좌제는 범죄인과 특정한 관계에 있는 사람에게 연대책임을 지게하고 처벌하는 제도이다. 조선시대에는 반역죄를 범한 자의 친족•외족•처족 등 3족을 멸하는 처벌을 내렸다. 가족동일체 문화에서는 연대책임이 당연하고, 후환을 제거하기 위해서도 연좌제를 운영하는 것이 효과적일 수 있다.

가족관계 중 父子之間 중시


연속성…나의 존재는 조상과 연결


代 끊기면 '죽어 조상뵐 면목' 없어


법적으로는 연좌제가 폐지되었다고 하지만 문화적으로 그리고 심리적으로는 아직도 연좌제의 흔적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정치 경력이 일천(日淺)하지만 단지 대통령이나 수상의 부인이나 자녀라는 이유로 대통령이나 수상으로 당선되는 예를 우리나라를 포함한 동아시아에서는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연좌제의 문화적 심리적 바탕에는 가족동일체 의식과 연속성이 자리잡고 있다.

‘나도 당했다’며 우리 사회의 성폭력을 고발하는 ‘미투(#MeToo)’ 운동이 요즘 우리나라의 거의 모든 영역에서 거세게 몰아치고 있다. 이는 그동안 약자 특히 여성들이 가부장적인 서열문화 속에서 얼마나 힘들고 괴로운 삶을 살았는지를 반증하는 마음 아픈 결과이다. 이 운동의 결과로 이제는 더 이상 단지 약자라는 이유로 부당한 대우를 받는 문화는 청산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런 피해를 받았을 경우에는 더 이상 혼자 가슴앓이를 하며 숨죽이고 사는 것이 아니라 피해를 밝히고 가해자는 응분의 처벌을 받고, 피해자는 법적 심리적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 운동에 의해 본의 아니게 억울한 대접이나 피해를 받는 사람도 역시 없어야 할 것이다. 특히 가해자의 가족에게 비난이나 조롱에 가까운 모멸감을 주는 행동을 자제해야 한다. 최근 일각에서는 가해자 가족에 대한 공세가 매우 거칠게 나타나고 있다. 평소 존경하고 친근감을 느꼈던 사람이 뒤에서는 비도덕적인 행동을 했다는 사실에 실망하고 분노를 느끼는 것은 인지상정(人之常情)이다. 그리고 ‘하나’라고 여기는 가족들에게도 그 실망과 분노를 표하는 심정은 이해할 수 있다.하지만 가해자의 가족들 역시도 이미 큰 상처를 받은 피해자다. 믿었던 남편이 그리고 존경했던 아버지가 성폭력의 가해자였다는 사실을 알고 더할 수 없는 심리적 고통과 상처를 입고 있다. 더군다나 가해자의 가족이라는 이유로 누구에게 자신의 속마음을 편하게 털어놓지도, 하소연도 못하고 마치 자신이 그런 가해를 한 사람인양 죄책감에 시달리며 숨죽여 지내고 있을 것이다. 이들도 가족동일체 문화가 몸에 배어 있기 때문에 남편이 혹은 아버지가 저지른 비도덕적 행위를 마치 자신이 한 것처럼 느끼고 죄책감에 힘들어 할 것이다.

이런 가족들에게 또다시 아픔을 가한다는 것은 가해자와 가해자 가족을 ‘하나’라고 보는 가족동일체 의식에서 나온 ‘심리적 연좌제’라고 할 수 있다. 성폭력 피해자를 사회가 보호하고 2차 피해를 당하지 않도록 세심한 배려를 하는 것이 당연하다. 이미 큰 피해를 보고 있는 가해자의 가족들에게 또다시 상처를 준다면 이것도 역시 2차 피해이다. 가해자가 도덕적 비난과 법적 처벌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고 해서, 가해자의 가족도 또한 비난하는 행위가 정당화될 수는 없다.

이런 피해를 막으려고 대한민국헌법 제13조 3항에서 “모든 국민은 자기의 행위가 아닌 친족의 행위로 인하여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아니한다”는 규정을 신설하여 연좌제를 금지하고 있다. 가해자 가족에게 조롱과 비난보다는 위로하고, 불필요한 죄책감에 시달리지 않도록 도와주는 사회가 ‘미투’ 운동이 진정으로 바라는 사회일 것이다.


필자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는 국내 긍정심리학계의 최고 권위자로 미국 심리학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 심리학이 문화의 영향력을 경시하는 것을 비판하고 인간 행동에 미치는 문화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특히 한 교수는 심리학 전공자가 이론보다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업체, 대학, 교회 등을 찾아다니며 몸 건강 못지않게 마음의 건강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명의 심리학’이 있으며 역서로는 ‘성공적 삶의 심리학’ ‘노년기의 의미와 즐거움’ ‘남자 나이 마흔이 된다는 것’ 등이 있다.


한성열 고려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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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열 고려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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