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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석유달러’ 12월 끊기나…해상 재고 3분의 1로

봉쇄 밖 원유 9000만→2900만배럴…10월 중순 소진 전망
물가 80% 넘어·올해 성장률 -5.4%…미 압박에도 굴복은 불투명
지난 4월 12일(현지시각) 오만 무산담주 해안 인근 호르무즈해협을 선박 한 척이 지나고 있다.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지난 4월 12일(현지시각) 오만 무산담주 해안 인근 호르무즈해협을 선박 한 척이 지나고 있다. 사진=로이터
미국의 대이란 해상봉쇄가 장기화하면서 이란 경제를 떠받쳐온 ‘석유달러’가 빠르게 말라가고 있다.
지난 7월 중순 미국이 봉쇄를 재개한 이후 이란에서 새로 실린 원유는 봉쇄선을 넘지 못하고 있다. 그동안 중국 등에 판매되던 봉쇄선 밖 해상 원유 재고도 약 9000만배럴에서 2900만배럴까지 급감했다.

현재 속도라면 이 물량은 10월 중순께 소진되고 이미 판매한 원유 대금도 12월 중순께부터는 사실상 끊길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8일(이하 현지시각)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선박추적업체 케이플러는 미국 해군이 7월 중순 봉쇄를 재개한 이후 이란산 원유가 새로 봉쇄선을 통과한 사례가 없다고 전날 밝혔다.
이란은 여전히 걸프 해역 안에서 일부 원유를 유조선에 싣고 있지만 이 물량은 봉쇄선 안쪽에 갇혀 구매자에게 전달되지 못하고 있다.

반면 봉쇄 재개 이전에 이미 걸프 밖으로 빠져나간 원유는 그동안 이란에 마지막 외화 수입원을 제공해왔다.

케이플러에 따르면 이 같은 해상 원유 재고는 7월 중순 약 9000만배럴에서 현재 약 2900만배럴로 줄었다.

대부분 중국으로 향하는 이 물량의 현재 인도 속도는 하루 약 100만배럴이다.
이 속도가 계속되면 해상 재고는 10월 중순께 바닥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기존에 인도한 원유의 판매대금까지 감안해도 현금 유입은 12월 중순께 급격히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케이플러의 분석이다.

◇ 8월 신규 선적 하루 25만5000배럴…85% 급감


이란의 신규 원유 공급 능력도 크게 위축됐다.

지난달 기준 걸프 해역 안에서 유조선에 실린 이란산 원유는 하루 평균 25만5000배럴이었다. 이는 전쟁 초기인 2~4월 평균보다 85% 적은 규모다.

이 물량 역시 봉쇄선을 빠져나가지 못해 실제 구매자에게 전달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란은 6월 중순 미국과 양해각서를 체결하면서 봉쇄가 수주 동안 완화된 틈을 이용해 상당한 물량의 원유를 미리 해외로 내보냈다.

이란은 그동안 이 원유를 중국 등에 판매하면서 외화를 확보해왔다.

모흐센 파크네자드 이란 석유장관도 4일(현지시각) 원유 판매와 고객 인도 작업이 페르시아만과 오만해에서 수천㎞ 떨어진 해역에서 이뤄져왔다고 밝혔다.

그러나 봉쇄 밖에 남아 있던 원유 자체가 빠르게 줄면서 이 같은 우회 방식의 지속 가능성도 낮아지고 있다.

이란 국가예산의 약 3분의 1은 통상 원유 판매수입으로 충당된다.

미 재무부는 이란군과 이슬람혁명수비대(IRGC)도 별도 기업과 ‘그림자 선단’을 이용해 원유를 팔고 군사예산을 보충해왔다고 보고 있다.

따라서 원유 판매대금 감소는 이란의 정부 재정뿐 아니라 군사자금에도 직접적인 압박이 될 수 있다.

◇ 중국도 사우디·이라크산으로…이란산 가격 경쟁력까지 약화


중국 구매업체들도 대체 원유 확보에 나서고 있다.

WSJ에 따르면 일부 중국 정유업체는 이란산 대신 사우디아라비아, 이라크, 아랍에미리트(UAE)산 원유 구매를 늘리고 있다.

이란산 원유 자체가 부족해지면서 일부 시장에서는 이란산 가격이 경쟁 원유보다 오히려 비싸지는 현상까지 나타났다.

이라크는 일부 원유에 배럴당 약 30달러(약 4만500원)에 달하는 할인폭을 제공하고 있다.

브렌트유는 7일 배럴당 약 97달러(약 13만1000원)에 거래됐다.

미국의 추가 금융제재도 이란의 원유 판매대금 회수를 어렵게 만들고 있다.

미 행정부는 이란 거래를 중개하는 은행과 금융망을 집중적으로 제재하고 있다.

따라서 원유가 이미 중국 등에 인도됐다 하더라도 이란이 판매대금을 실제 외화로 회수하는 과정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 육로 수출 하루 4만배럴 한계…석유화학도 3분의 2 감소


해상 수출을 대체할 육로도 현실적인 대안이 되기는 어렵다는 지적이다.

케이플러는 이란이 트럭으로 수송할 수 있는 원유가 하루 최대 약 4만배럴에 불과하다고 추산했다.

전쟁 전 이란의 원유 수출량이 하루 약 200만배럴에 가까웠던 점을 고려하면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철도를 이용한 대규모 운송도 쉽지 않다. 이란에는 원유와 석유제품 운송에 필요한 철도 차량이 충분하지 않다.

원유에 이어 두 번째로 중요한 외화 수입원인 석유화학제품 수출도 타격을 받고 있다.

케이플러에 따르면 8월 석유화학제품 선적량은 올해 초보다 약 3분의 2 감소했다.

반면 다른 걸프 산유국들은 미군의 호르무즈 해협 호위를 이용하거나 해협을 우회하는 송유관을 활용해 상당한 물량의 원유를 계속 수출하고 있다.

이란만 상대적으로 더 강한 수출 차단을 받고 있는 셈이다.

◇ 물가 80% 넘어…IMF “올해 경제 5.4% 역성장”


원유 달러 감소는 이미 악화한 이란 경제를 더 압박하고 있다.

이란의 공식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전년 대비 80%를 넘어섰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이란 경제가 5.4% 역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1980년대 이후 최악의 경기침체가 될 수 있는 수준이다.

원유 수출이 줄면 이란 정부가 리알화 가치를 방어하거나 공장에 필요한 원자재를 수입하는 데 쓸 외화도 감소한다.

수입가격이 다시 오르면서 물가를 더 끌어올리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

리알화 가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8월 새로운 경제 압박 캠페인을 발표한 이후 달러 대비 약 15% 하락했다.

비석유 부문 교역도 감소하고 있다.

이란은 3월 중순부터 8월 중순까지 약 150억달러(약 20조2500억원)의 비석유 제품을 수출했지만 지난해보다 규모가 줄었다.

주요 교역창구였던 UAE도 지난달 이란과 금융·경제 거래를 중단한다고 밝힌 뒤 공식 교역이 대부분 멈췄다.

일부 거래는 우회기업을 통해 계속되고 있고 튀르키예, 이라크, 오만, 파키스탄 등을 통한 교역도 늘고 있지만 운송시간과 비용이 더 들어간다.

◇ 경제압박 커져도 “이란 굴복은 미지수”


문제는 경제적 압박이 실제로 이란의 군사·외교적 양보로 이어질지 여부라는 지적이다.

미국은 원유 수출과 금융망을 동시에 압박해 이란 정부가 전쟁을 지속할 경제적 능력을 약화시키려 하고 있다.

스콧 베선트 미 재무부 장관도 최근 이란의 원유 수출 감소와 통화가치 하락을 미국 경제압박 정책의 성과로 내세웠다.

그러나 걸프 지역 정부 관계자들과 전문가들은 이란이 경제적 피해 때문에 곧바로 협상에서 물러설 가능성에는 회의적이라고 WSJ는 전했다.

사우디아라비아 관계자들은 이란이 오히려 예멘의 후티 반군에 무기와 인력, 정보 지원을 늘리고 있다고 보고 있다.

경제적 압박이 커질수록 이란이 양보하기보다 역내 군사적 대응을 확대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의미다.

미국은 5일 이란이 항공모함을 포함한 미 해군 함정 2척을 향해 탄도미사일을 발사한 뒤 이란 유조선 3척을 공격했다.

WSJ는 결국 미국의 전략이 성공할지는 이란 지도부가 경제적 고통을 어느 수준까지 감수하면서 군사적·지정학적 목표를 유지하려 하는지에 달렸다고 분석했다.

다만 봉쇄선 밖에 남아 있던 원유까지 10월 중순께 소진되고 판매대금 유입이 12월부터 급격히 줄어든다면 이란 경제에 가해지는 압박은 지금보다 한층 커질 전망이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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