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딥마인드 CEO 전격 교체
세계 인공지능(AI) 혁명의 심장부인 구글 딥마인드(Google DeepMind)에서 큼지막한 리더십 개편 소식이 나왔다. 딥마인드의 창업자이자 알파고(AlphaGo)와 알파폴드(AlphaFold) 신화를 일궈낸 데미스 허사비스(Sir Demis Hassabis)가 딥마인드 최고경영자(CEO) 직에서 전격 물러난다는 내용이다. 구글 모회사 알파벳은 허사비스가 딥마인드 CEO 보직을 내려놓는 대신, 알파벳의 '최고과학책임자(Chief Scientist)' 및 딥마인드 의장(Chairman)으로 자리를 옮긴다고 발표했다. AI 기술 경쟁이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하게 불붙은 시점에서 전 세계 빅테크와 학계는 그의 CEO 사퇴가 뜻하는 바를 두고 열띤 논쟁을 이어가고 있다.
2. 왜 물러나나
겉으로는 'CEO 퇴진'이라는 자극적인 헤드라인이 도배되었으나 구글측에서는 실질적인 문책성 파면이 아닌 철저히 계산된 전략적 배치 전환이라고 해명하고 있다. 행정적 굴레로부터의 탈피시켜줌으로써 연구에 올인토록 한다는 것이다. 딥마인드가 구글 브레인(Google Brain)과 통합된 이후 허사비스는 거대한 비즈니스 조직을 관리하고 예산과 인사를 조율하는 비효율적인 행정 업무에 노출되어 왔다.그 부담을 덜어주겠다는 것. AGI 실현과 신약 개발은 허사비스 본인이 지속적으로 강조해 온 평생의 숙원이다. 범용인공지능(AGI)의 완성 및 AI 신약 개발 자회사인 아이소모픽 랩스(Isomorphic Labs)의 경영에 전념하기 위한 여유 공간 확보가 이번 인사 개편의 목적이라는 이야기다.
허사비스는 수석과학자 임명 이후에도 미국 실리콘밸리로 이주하지 않고 영국 런던 연구소에 머물며 장기적 과학 탐구를 지휘할 방침이다.기업 경영이라는 직무적 중압감에서 벗어나 '초지능(Superintelligence)' 개발이라는 과학 본연의 영역에 최첨단 화력을 집중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3. 잇단 과학자 이탈 문책
이번 직함 교체를 바라보는 또 다른 시선은 구글 AI 진영의 극심한 인재 이탈과 연관되어 있다. 구글에서 27년간 근무하며 현대 AI 인프라의 기초를 놓은 '살아있는 전설' 제프 딘(Jeff Dean) 수석과학자가 회사를 떠나 새로운 스타트업을 창업한다고 전격 발표했다. 제프 딘(Jeff Dean)은 구글 수석과학자 직에서 퇴사한 후 신규 스타트업 '디스커버리 루프'를 창업하며 27년간의 구글 경력을 마무리하였다. 제프딘의 사표 이후 데미스 허사비스(Demis Hassabis)는 딥마인드 CEO 직에서 사퇴한 후 알파벳 최고과학자 직을 승계하였다. 그러면서도 딥마인드 의장 및 아이소모픽 CEO 직을 겸임한다. 그 대신 코라이 카부크추오글루(Koray Kavukcuoglu)가 딥마인드 CTO에서 수석부사장으로 승진하여 딥마인드의 실무 운영을 총괄하게 되었다.
허사비스 인책 퇴진론도 있다. 오픈AI, 메타, 앤트로픽 등 경쟁사들의 거센 스카우트 공세와 핵심 연구원들의 연쇄 이탈, 챗GPT 대비 상업화 속도 지연 등에 대한 조직 내부의 위기 의식이 리더십 개편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나온다. 허사비스에게 경영 실책의 책임을 묻는 대신, 그를 기술의 최고 존엄 자리에 배치함으로써 연구진의 동요를 막고 기술적 패권을 유지하려는 알파벳 경영진의 고육지책 성격도 배어있다.
4. 출생과 혈통
데미스 허사비스는 1976년 7월 27일 영국 런던에서 태어났다. 그의 독특한 지적 성향과 문화적 배경은 가계 혈통에서 비롯된다. 아버지는 그리스계 키프로스인, 어머니는 중국계 싱가포르인이다. 동양적 절제미와 규율을 강조하는 어머니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러면서도 서양적 사유와 철학적 기질을 지닌 아버지의 영향이 어우러진 집안 환경에서 성장했다. 본래 성(姓)은 그리스어로 '도살자'를 뜻하는 '하사피스(Hassapis)'였으나, 향후 연구자로서의 삶을 시작하며 스스로 '허사비스(Hassabis)'로 철자를 변경하기도 했다.
5. 체스 신동
허사비스의 성장 과정은 체스 신동, 게임 개발자, 뇌과학자를 거쳐 AI 연구자로 이어지는 독특한 궤적을 보인다. 아버지가 삼촌과 체스를 두는 모습을 보고 4세에 체스를 독학했다. 13세에 Elo 레이팅 2300점을 기록하며 유소년 세계 2위에 올랐다. 16세에 A-level 시험을 통과하고 케임브리지 대학교에 조기 합격했으나, 연령 제한으로 입학이 1년 유예되자 게임 회사 '불프로그'에 입사했다. 17세에 세계적 히트작 《테마파크(Theme Park)》의 리드 프로그래머로 시뮬레이션 AI를 직접 구축했다. 케임브리지 컴퓨터공학과를 최우등(Double First Class)으로 졸업한 뒤 자신의 게임 회사 '엘릭서 스튜디오'를 운영했다.
2000년대 후반 간의 지능을 기계로 구현하려면 인간의 뇌부터 이해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고 학계로 돌아갔다.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CL)에서 인지뇌과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며 해마(Hippocampus) 손상 환자가 미래를 상상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세계 최초로 입증하여 《Science》 및 《Nature》지에 논문을 게재했다.
6.알파고와 알파폴드
2010년 셰인 레그, 무스타파 술레이만과 함께 딥마인드를 창업한 허사비스는 2014년 구글에 회사를 매각한 후 본격적인 AI 혁명을 주도했다.강화학습(Reinforcement Learning)과 딥러닝을 결합하여 2016년 한국의 이세돌 9단을 4승 1패로 제압했다. 직관과 통찰의 영역으로 여겨지던 바둑에서 AI가 인간을 뛰어넘을 수 있음을 전 세계에 각인시킨 사건이었다. 단백질의 아미노산 배열만으로 3차원 입체 구조를 예측하는 AI 모델을 완성했다. 이는 2억 개가 넘는 지구상 거의 모든 단백질 구조를 규명하는 기적을 일으켰다.
7. 노벨상 수상
데미스 허사비스는 2024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IT 기업의 컴퓨터 과학자가 순수 과학 분야 최고의 상인 노벨 화학상을 거머쥔 것은 노벨상 역사상 매우 이례적인 대사건이었다.1972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 크리스천 안핀슨이 제시한 "아미노산 수열로 단백질 3차원 구조를 예측할 수 있는가"라는 50년 묵은 난제를 알파폴드 2로 완전하게 풀었다. 허사비스는 알파폴드의 예측 데이터베이스를 전 세계 과학자들에게 무료로 개방했다. 그 결과 암 치료제 개발, 항생제 저항성 세균 연구, 플라스틱 분해 효소 설계 등 생명과학 및 의학의 발전 속도가 수백 년 단축되었다.
8. AGI의 미래
데미스 허사비스의 딥마인드 CEO 사퇴는 한 인물의 퇴진이 아니라, AI 기술사가 '상업적 경쟁'에서 '학문적·기술적 특이점(Singularity)'으로 대전환함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체스 신동, 게임 프로그래머, 뇌과학자, AI 기업가, 노벨상 수상자를 거친 그의 궤적은 언제나 인간 지능의 한계를 확장하는 데 맞추어져 있었다. 경영이라는 중압감을 털어내고 알파벳 최고과학자로서 다시 연구실 전면으로 나선 허사비스가 인류에게 어떠한 AGI와 과학적 선물을 안겨줄지 귀추가 주목된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