젤렌스키, 비밀 사절 아브라모비치 통해 회담 제안했지만 푸틴 공개 거부
휴전 기대감 후퇴에 에너지·방산 시장 변동성 재확대 주목
휴전 기대감 후퇴에 에너지·방산 시장 변동성 재확대 주목
이미지 확대보기영국 일간지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난 7일(현지시각) 사정을 잘 아는 소식통 4명을 인용해, 젤렌스키 대통령이 지난달 국제 제재 대상인 러시아 억만장자 아브라모비치를 키이우로 초청해 러시아와의 직접 평화협상 준비가 됐다는 메시지를 푸틴에게 전달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보도했다.
2022년 러시아의 전면 침공 이후 처음으로 이뤄졌을 양자 정상회담이었다.
아브라모비치, 비밀리에 키이우行… 양측 메시지 교환
아브라모비치는 직접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를 찾아 푸틴의 위임을 받았다고 밝히며 양측 지도자 사이에서 메시지를 전달하겠다고 제안했다. 주요 목적은 우크라이나가 평화협상을 위해 어떤 조치를 취할 의향이 있는지를 타진하는 것이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지난 7일 영국 방송 스카이뉴스(Sky News)와의 인터뷰에서 이 회담을 직접 확인했다.
그는 아브라모비치에게 "돈바스를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는 우크라이나의 확고한 입장을 전달하는 한편, 러시아와 벨라루스 외의 제3국 어디서든, 언제든지 푸틴과 직접 만날 준비가 됐다고 밝혔다. "내일부터라도 좋다. 날짜도, 형식도 당신이 고르면 된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후 가디언(The Guardian)과의 인터뷰에서 젤렌스키 대통령은 아브라모비치가 푸틴으로부터 향후 외교 협상의 틀에 관한 메시지를 가지고 왔다고도 밝혔다.
그는 회담이 "비밀이 아니었다"고 강조하면서도, 아브라모비치 측은 처음에 자신의 역할이 공개되지 않길 원했다고 전했다.
아브라모비치는 젤렌스키 대통령 외에도 우크라이나 최고 라다(의회) 여당 '국민의 종' 대표인 다비드 아라하미아와도 별도로 면담한 것으로 알려졌다. 회담 내용은 비공개이나, 이 자리에서 아라하미아가 모스크바에 전화를 걸어 푸틴과 무언가를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푸틴 "만날 이유 없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공개 거부
푸틴 대통령은 지난 5일 상트페테르부르크 국제경제포럼(SPIEF) 전체회의 연설에서 지난달 21일 키이우를 다녀온 러시아 재계 인사를 만났다고 밝혔다.
그는 이 인물이 비공식적으로 움직였다고 전제하면서, 젤렌스키 대통령을 만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일축했다. 아브라모비치라는 이름은 끝내 입에 올리지 않았다.
푸틴은 "회담의 유일한 의미는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군대의 진격을 멈추는 것뿐"이라고 못 박았다. 이보다 앞서 젤렌스키 대통령이 지난 4일 "전쟁을 끝낼 때가 됐다.
제3국에서 만나자"는 내용을 담아 푸틴에게 처음으로 공개서한을 보냈지만, 푸틴은 "무례한 표현이 담겼다"며 이 제안도 거절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아브라모비치가 2022년 전면 침공 초기부터 러·우 비공식 대화에 관여해왔다고 전했다. 그해 3월 이스탄불 협상 중재에 참여했고, 이후 흑해 곡물 수출 협정 체결에도 이바지했다.
미국이 지난해 직접 협상에 뛰어든 이후 그의 역할은 줄었지만, 포로 교환 등 실무 협상에는 여전히 개입하고 있다고 FT는 전했다.
프랑스 방송 프랑스24(France 24)는 9일(현지시각) "우크라이나 쪽에서 아브라모비치가 필요한 이유는 그가 우크라이나가 유일하게 받아들이는 러시아인이기 때문"이라는 관계자 발언을 전했다.
아브라모비치는 현재 영국과 유럽연합(EU) 제재로 인해 튀르키예와 걸프 지역을 오가며 생활하고 있으며, 키이우 방문에 대한 공식 논평은 거부하고 있다.
미국 공백 속 우크라이나의 독자 외교… 6·7월이 분수령
이번 비밀 접촉의 배경에는 미국의 이란전 집중으로 생긴 중재 공백이 자리잡고 있다. 소식통들은 우크라이나가 미국이 중동 전쟁에 주의를 빼앗긴 상황에서도 직접 평화협상에 적극적임을 보여주려 했다고 전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에스토니아에서 열린 북유럽·발트 정상회의에 참석한 자리에서 "올해 6월과 7월이 많은 것을 결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 비밀 접촉 실패에도 우크라이나가 독자적인 외교 채널 가동을 멈추지 않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모스크바타임스는 "푸틴이 러시아군이 계속 진격하는 동안에는 회담에 아무 의미가 없다며 공개적으로 거부 의사를 밝혔다"고 전했다.
월가에서는 러시아가 전선에서의 군사적 우위를 협상 카드로 최대한 활용하려는 의도가 담긴 것으로 보고 있다. 휴전 협상의 무게추가 어디로 기울지는, 젤렌스키 대통령이 예고한 대로 이번 여름이 가늠자가 될 전망이다.
진형근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inwoo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