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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웨이, 유럽 통신망서 3년 내 강제 퇴출 위기

EU 사이버보안법 개정안, 5G·18개 핵심 인프라 중국산 장비 전면 배제 추진
유럽 RAN 시장 3분의 1 장악 화웨이, 교체 비용만 최대 95조 원 달해
중국 통신장비업체 화웨이와 ZTE. 사진=연합뉴스이미지 확대보기
중국 통신장비업체 화웨이와 ZTE. 사진=연합뉴스

중국 최대 통신장비업체 화웨이(Huawei)가 30년 가까이 공들여 온 유럽 통신 시장에서 사실상 퇴출 위기에 몰렸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가 올해 들어 강제 배제를 위한 법적 근거를 공식화하며 압박 수위를 끌어올린 가운데, EU 최고 법원 법무관마저 회원국의 화웨이 장비 금지 권한을 인정하는 의견서를 제출하면서 화웨이의 방어선이 빠르게 허물어지고 있다.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는 지난 18일(현지시각) '화웨이, 유럽 통신시장에서 생존을 다투다'라는 제목의 기획 기사를 통해, EU 집행위원회가 2020년 5G 보안 권고안을 통해 화웨이·ZTE 장비 사용 제한을 촉구했으나 27개 회원국 중 13개국만 실제 법적·행정적 배제 조치를 이행한 상황에서, 이번엔 화웨이와 ZTE의 네트워크 퇴출을 모든 회원국에 법적으로 강제하는 방향으로 처음 나섰다고 보도했다.
구체적 조치의 차이도 회원국마다 뚜렷이 엇갈렸다. 스웨덴·루마니아·독일·에스토니아 등은 화웨이·ZTE 장비를 5G 네트워크에서 명시적으로 금지하는 법령을 발동했으나, 나머지 회원국 다수는 고위험 공급업체를 제한할 수 있는 규정을 마련하는 데 그쳤거나 아직 입법 절차를 진행 중이었다.

이처럼 회원국별 이행 편차가 커지자 EU 집행위원회가 법적 강제력을 갖춘 새 사이버보안법 제정에 나선 것이다.

EU, '권고'에서 '의무'로… 3년 내 핵심 장비 교체 강제


EU 집행위원회는 올해 1월 20일(현지시각) 브뤼셀 본부에서 사이버보안법(Cybersecurity Act) 개정 초안을 공개했다.

5세대 이동통신(5G) 네트워크뿐 아니라 수자원 공급 시스템, 보건의료기기, 국경 검문 보안 스캐너 등 18개 핵심 인프라 분야에서 고위험 공급업체 장비를 단계적으로 배제하는 내용이 골자다.

헤나 비르쿠넨 EU 기술주권·안보·민주주의 담당 집행위원은 스트라스부르 유럽의회에서 "이번 제안은 경제와 사회를 지탱하는 정보통신기술(ICT) 공급망을 확보해 시민과 기업을 보호하려는 목적"이라고 밝혔다.

집행위가 2020년부터 '고위험 공급업체 기술 사용 자제'를 권고해온 것을 이번에 법적 의무로 전환하는 시도로, 규정을 어길 경우 해당 회원국에 제재 절차와 재정 처벌까지 부과할 수 있도록 했다.

통신사업자들은 법안 통과 후 36개월 안에 고위험 공급업체 장비의 핵심 구성 요소를 교체해야 하며, 광섬유·해저 케이블·위성망 등 유선 네트워크의 교체 기한은 추후 별도로 공지된다.

이와 별개로 EU 최고 법원인 유럽사법재판소(ECJ)의 법무관 타마라 카페타는 올해 3월 27일(현지시각) 에스토니아 소송 사건과 관련한 의견서에서 "회원국은 국가안보 위협을 이유로 2G~5G 통신 인프라에서 화웨이 장비를 배제할 수 있다"고 밝혔다.

코빙턴&버링 법률회사의 기술주권 전문 변호사 폴 메이너드는 "법원이 통상 법무관 의견을 따른다는 점에서 이번 의견서는 EU 사이버보안법 개정 논의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유럽 RAN 시장 30% 이상 장악한 화웨이… 교체 비용 최대 95조 원


화웨이가 유럽 통신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결코 작지 않다. 에릭슨(Ericsson)의 뵤르예 에크홀름 최고경영자(CEO)는 "중국 업체들이 유럽 전체에서 33~40%의 시장점유율을 보유하고 있다"며 "신뢰할 수 있는 공급업체들에 상당한 사업 기회가 열릴 것"이라고 말했다.

업계 추산에 따르면 유럽은 전 세계 무선접속망(RAN) 지출의 약 15%를 차지하며, 화웨이는 그 가운데 약 4분의 1을 점유하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옴디아(Omdia)에 따르면 2024년 연간 매출 기준 글로벌 RAN 시장점유율은 화웨이 34.2%, 에릭슨 25.7%, 노키아 17.6% 순이다.

다만 델로로 그룹(Dell'Oro Group)의 2025년 상반기 집계에 따르면 중국을 제외한 글로벌 시장에서 화웨이가 21%로 선두를 차지했고, 노키아 17%, 에릭슨 16%, ZTE 4%, 삼성전자 3% 순을 기록했다.

이처럼 깊이 뿌리 내린 중국산 장비를 단기간에 걷어내는 데는 막대한 비용이 따른다. 세계이동통신사업자협회(GSMA)가 추산한 유럽 5G 추가 구축 비용은 최대 550억 유로(약 95조 2280억 원)에 달한다.

이는 GSMA가 공개한 분석 보고서에 담긴 수치로, 중국산 통신장비는 동급 유럽산 대비 20~40% 저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때문에 헝가리·이탈리아 등 일부 회원국은 비용 부담을 이유로 그동안 장비 교체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왔다.

화웨이 측은 즉각 반발했다. 화웨이는 "사실적 증거나 기술적 근거가 아닌 국적에 따른 차별"이라며 "EU의 공정성·비차별성·비례성 원칙과 세계무역기구(WTO) 의무를 위반하는 행위"라고 주장했다.

중국 외교부 대변인 궈자쿤도 브리핑에서 "어떠한 증거도 없는 상황에서 비기술적 기준으로 제한을 강행하는 것은 시장 원칙과 공평 경쟁 규칙을 심각하게 위반한 것"이라고 비판하며 "EU가 보호주의의 잘못된 길로 계속 간다면 필요한 조치를 취해 중국 기업의 합법적 권익을 단호히 수호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에릭슨·노키아, 최대 4조 3천억 원 반사이익 기대… 삼성도 유럽 입지 확대


반사이익을 기대하는 쪽은 북유럽 양대 통신장비 업체다. 노키아(Nokia)의 저스틴 호타드 CEO는 화웨이 퇴출 시 노키아가 확보할 수 있는 유럽 사업 기회를 20억~25억 유로(약 3조 4620억~4조 3280억)로 추산했다.

그러나 두 회사는 중국에서의 반격도 감수해야 한다. 델로로 그룹에 따르면 노키아와 에릭슨의 중국 내 합산 시장점유율은 2020년 12%에서 2024년 약 4%로 급락했다.

중국은 중국 국가사이버공간관리국(CAC)을 통해 노키아·에릭슨과의 계약을 국가안보 심사 대상으로 지정해 처리에 3개월 이상 걸리는 사실상의 시장 접근 제한을 가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이 공백을 파고들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유럽 통신사 보다폰(Vodafone)과 독일을 중심으로 유럽 전역에 개방형 무선접속망(Open RAN) 솔루션을 공급하는 계약을 맺으며 유럽 시장에서 입지를 넓히고 있다.

미국 싱크탱크 애틀랜틱카운슬(Atlantic Council)은 최근 보고서에서 "EU 집행위가 중국의 국가 주도 경제와 보조금 정책이 유럽에 구조적 위협이라는 판단 아래 대중국 관여 정책에서 위험 완화(디리스킹) 전략으로 급격히 방향을 틀었다"고 분석했다.

덴마크 스트랜드컨설트(Strand Consult)의 존 스트랜드 대표는 "중국이 유럽 이동통신망을 마비시키거나 속도를 늦추거나 간섭할 수 있다. 이는 유럽 경제를 황폐화할 것이며, 러시아 천연가스 사태가 공포영화의 예고편처럼 보일 수 있다"고 경고했다.

EU 사이버보안법 개정안은 현재 초안 단계로, 회원국 정부와 유럽의회의 승인을 거쳐야 법적 효력을 갖는다.

그러나 ECJ 법무관 의견 제출, 독일·스웨덴 등 주요국의 선제 조치, 스페인 통신사 마소랑주(Masorange)의 자발적 화웨이 단계적 퇴출 선언 등 일련의 흐름은 화웨이가 유럽에서 버틸 공간이 빠르게 줄어들고 있음을 보여준다.


진형근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inwook@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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