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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 디코드] 中 "엔비디아 칩 쓰지 마라"…틱톡 등 떠민 곳은 화웨이

신규 데이터센터에 국산 칩 강제…바이트댄스, 사둔 수조원 H100 '발 동동'
'애국' 앞세운 베이징의 자충수…SW 생태계 무시한 '묻지마 국산화' 역풍 우려
사진=오픈AI의 챗GPT-5.1이 생성한 이미지이미지 확대보기
사진=오픈AI의 챗GPT-5.1이 생성한 이미지
중국 정부가 자국 최고의 글로벌 플랫폼 기업인 바이트댄스(ByteDance)를 상대로 엔비디아(Nvidia) GPU 사용 금지라는 '극약 처방'을 내렸다. 미국 정부의 수출 통제 빗장을 가까스로 뚫고 확보한 엔비디아의 고성능 AI 반도체조차 신규 데이터센터에는 투입하지 말라는 명령이다. 이는 "기술 자립을 위해서라면 민간 기업의 막대한 매몰 비용과 효율성 저하도 감수하라"는 베이징의 서늘한 경고로 해석된다.
디지타임스 아시아 등 외신은 27일(현지 시각) 디 인포메이션과 로이터를 인용, 베이징 당국이 바이트댄스의 신규 데이터센터 구축 과정에서 엔비디아 GPU 배치를 전면 불허했다고 보도했다. 이번 조치의 핵심은 단순한 '권고'가 아닌, 국가가 자금을 지원하는 인프라 프로젝트에 국산 칩 사용을 의무화한 강력한 '규제'라는 점이다.

수조원 칩 '고철' 위기…틱톡의 비명


가장 충격적인 대목은 바이트댄스가 지난 1년간 대중(對中) 제재의 틈새를 노려 천문학적인 자금을 쏟아부어 확보한 엔비디아 칩들이 '무용지물'이 될 위기에 처했다는 사실이다.

외신에 따르면 바이트댄스는 2025년 폭증할 것으로 예상되는 10억 명 사용자 기반의 트래픽과 AI 연산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엔비디아의 'H20' 및 규제 전 확보한 'H100' 칩을 대량으로 사들였다. 바이트댄스는 중국 내에서 엔비디아의 최대 큰손으로 꼽힌다. 그러나 지난 8월부터 적용된 베이징의 새로운 가이드라인에 따라, 이 칩들은 신규 프로젝트에 투입되지 못한 채 재고로 쌓여 있게 됐다.

기업 입장에서 이는 치명적인 자본 비효율(Capital Efficiency)을 초래한다. 수십억 달러(수조 원) 가치가 매겨진 최첨단 자산이 가동되지 못하고 유휴 상태로 방치되는 것은 단순한 손실을 넘어, 기업의 투자 리스크 관리 시스템 자체를 붕괴시키는 요인이다. 정책 불확실성이 기술 기업의 목을 조르는 전형적인 사례가 연출되고 있는 셈이다.

SW 격차 무시한 '화웨이 강제 이식'


중국 당국이 대안으로 제시한 것은 화웨이(Huawei)의 AI 칩 '어센드(Ascend)' 시리즈다. 정부는 엔비디아의 빈자리를 화웨이 칩으로 채워 '반도체 굴기'를 완성하겠다는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 하지만 현장의 목소리는 다르다. 하드웨어 스펙상으로는 화웨이 칩이 엔비디아의 A100 등에 근접했을지 몰라도, 이를 구동하는 소프트웨어 생태계에서는 '넘을 수 없는 벽'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문제의 본질은 엔비디아가 10년 넘게 구축해 온 '쿠다(CUDA)' 생태계다. 전 세계 AI 개발자의 절대다수가 사용하는 쿠다 프레임워크와 심층신경망 라이브러리(cuDNN)는 엔비디아 GPU의 강력한 해자(Moat)다. 바이트댄스를 비롯한 중국 빅테크들은 이미 이 생태계 위에서 모든 AI 모델과 알고리즘을 최적화해 왔다.
이를 화웨이 기반으로 전환(Migration)한다는 것은 단순히 부품을 갈아 끼우는 차원이 아니다. 기초 코드부터 다시 짜야 하는 수준의 '생태계 재개발'을 의미한다. 외신은 이 과정에서 막대한 운영 비용 상승과 AI 모델 상용화 지연이 불가피하다고 분석했다. AI 기술 경쟁은 속도전이다. 모델 배포가 늦어질수록 글로벌 경쟁사와의 격차는 벌어진다. 중국 정부의 '강제 국산화' 조치가 역설적으로 중국 AI 기업들의 글로벌 경쟁력을 갉아먹는 '자충수'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샌드위치 된 빅테크…SI 업계만 '반색'


이번 조치는 미·중 기술 패권 전쟁의 전선이 중국 내부로까지 확장되었음을 시사한다. 미국은 고성능 칩 수출을 막고(H20 등 저사양만 허용), 중국 정부는 그나마 들어온 미국 칩조차 쓰지 말라고 압박하는 형국이다. 바이트댄스 등 민간 기업들은 생산성 유지와 당국의 규제 준수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강요받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혼란 속에서 새로운 파생 시장이 형성될 것으로 내다봤다. 당장 효율성 저하를 막기 위해 특정 하드웨어에 종속되지 않는 '오픈소스 아키텍처'나, 엔비디아와 화웨이 칩을 혼용해 관리할 수 있는 '머신러닝 운영(MLOps) 플랫폼'에 대한 수요가 급증할 전망이다. 또한 엔비디아 기반 코드를 화웨이 시스템으로 자동 변환해주는 마이그레이션 도구 시장이 시스템 통합(SI) 업체들에게는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

결국 베이징의 이번 조치는 화웨이 등 토종 칩 제조사들에게는 확실한 시장과 성장판을 열어주겠지만, 그 비용은 고스란히 바이트댄스와 같은 서비스 기업들이 떠안게 됐다. '반도체 자립'이라는 국가적 대의명분 아래 민간의 희생을 어디까지 강요할 수 있을지, 중국 기술 생태계는 지금 거대한 시험대에 올랐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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