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C·실리콘 아성 넘보는 GaN…초고속 스위칭·비용 절감 '강점'
인피니언·ST 등 IDM '참전'…자동차·산업 자동화로 전선 확대
인피니언·ST 등 IDM '참전'…자동차·산업 자동화로 전선 확대

이 거대한 기술 경쟁의 승패를 가를 '게임 체인저'로 '질화갈륨(GaN)'이 급부상하고 있다. 대표적인 와이드 밴드갭(wide bandgap) 반도체인 GaN이 AI 서버의 심장을 뛰게 할 차세대 전력 기술의 핵심으로 떠오른 것이다.
본래 GaN은 과거 고전압 환경에서는 그 성능과 적용이 다소 제한적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다수의 글로벌 기업이 공격적 연구개발(R&D)과 막대한 투자를 단행하면서, GaN은 기술 한계를 극복하고 적용 범위를 폭발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특히 방대한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처리해야 하는 AI 서버 분야는 GaN 기술 잠재력에 거는 기대가 그 어느 때보다 높다.
SiC 아성 넘는 GaN, 고전압 시장 '핵심' 부상
현재 시장에 제시되는 800V AI 서버 전원공급장치용 전력 반도체 솔루션은 대부분 와이드 밴드갭 반도체를 기반으로 한다. 많은 주요 제조업체들은 기존의 실리콘(Si) 소재는 물론, GaN과 실리콘 카바이드(SiC)의 장점을 결합해 하나의 솔루션으로 통합하는 '3-in-1'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이러한 혼용 추세에도, 업계 내에서는 앞으로 소재 사용량 증가 잠재력 측면에서 GaN이 SiC를 능가할 것이라는 공감대가 뚜렷하다.
업계 관계자들은 GaN의 눈부신 진화를 주목한다. 질화갈륨(GaN)이 본래 뿌리를 둔 시장은 스마트폰용 고속 충전기를 위시한 소비자 가전 분야였고, 이 시장이 GaN의 주력 응용처였다. 하지만 최근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고전압 분야로의 본격적인 영역 확장이다.
대표적인 예가 자동차 부문이다. 전통적으로 GaN은 차량 내부의 실내 충전 기능(in-cabin charging) 등에 제한적으로 사용되었으나, 이제는 자동차용 고전압 전력 모듈에도 본격적으로 도입되기 시작했다. 일부 공급업체는 이미 1,000V를 초과하는 초고전압 환경에서도 안정적으로 작동하는 GaN 기술을 개발해내는 데 성공했다.
이러한 기술 성과는 GaN의 활용도를 자동차 산업에 국한시키지 않는다. 더 높은 전압을 요구하는 에너지 저장 인프라(ESS)나 각종 산업용 애플리케이션 시장에서도 GaN이 유리한 고지를 점했다. 고전압 AI 서버의 전력 공급 시스템을 감당하기에도 충분한 역량을 입증한 셈이다.
유럽의 한 주요 제조업체 관계자는 GaN의 차별화된 강점을 특히 강조했다. 그는 "GaN은 SiC와 비교할 때, 기존의 전통적인 실리콘(Si) 소재와의 통합이 훨씬 용이하다"고 밝혔다. 이러한 특징은 제품 개발 과정의 복잡성을 현저히 낮추는 동시에, 신제품의 시장 출시 기간(time-to-market)을 획기적으로 단축시키는 핵심 요인으로 작용한다. 결과적으로 전체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드는 총 비용(BOM) 절감 효과까지 기대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AI 서버 환경에서 GaN의 가치는 더욱 빛난다. AI 서버는 끊임없이 변동하는 AI 모델의 복잡한 연산을 안정적으로 처리하기 위해 극도로 정밀한 전압 조정을 실시간으로 요구한다. GaN이 보유한 '매우 빠른 스위칭 속도'는 이러한 까다로운 요구 조건을 충족시키는 데 있어 다른 어떤 소재보다 확실한 기술 우위를 제공한다.
현재 AI 서버 설계의 최신 경향은 전원공급 방식이나 냉각 방식에 구애받지 않고, 연산을 담당하는 컴퓨팅 모듈과 전력을 공급하는 파워 모듈을 물리적으로 분리하는 것이다. AI 연산용 칩의 크기와 집적도는 기하급수적으로 커지는 반면, 서버 랙(rack) 내부의 한정된 공간으로 인해 전력 반도체를 포함한 여타 부품들은 오히려 더 작아져야 하는 모순에 직면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고 시스템의 전체 전력 밀도를 극대화하기 위해, GaN과 같은 와이드 밴드갭 반도체의 채택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고 있다. 그 사용량은 필연적으로 급증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글로벌 IDM '총력'…AI 넘어 車·산업계로 확산
인피니언(Infineon),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STMicroelectronics), 로옴(Rohm), 텍사스 인스트루먼트(Texas Instruments) 등 전력 반도체에 막대한 투자를 집행해 온 글로벌 종합 반도체 기업(IDM)들은 이미 GaN 관련 핵심 기술력과 안정적인 생산 능력(캐파)을 확보하고 시장 개화에 대비를 마쳤다. 이와 동시에, 파워 인테그레이션스(Power Integrations)와 같은 팹리스(IC 설계 전문 기업)들 역시 자사가 보유한 독보적인 고전압 GaN 전문성을 무기로 AI 서버 공급망 진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실제 상용화 사례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일본의 무라타파워솔루션즈(Murata Power Solutions)는 2025년부터 5.5kW(킬로와트)급 AI 서버용 전원공급장치에 로옴(Rohm)의 650V GaN HEMT(고전자 이동도 트랜지스터)를 채택, 시스템의 고효율화와 소형화를 동시에 실현했다. GaN 특유의 낮은 손실과 고속 스위칭 성능, 그리고 낮은 기생성 커패시턴스가 스위칭 손실을 극적으로 줄이고 고주파수 운용을 용이하게 만든 덕분이다. 특히 고주파 운용은 인덕터와 같은 주변 부품의 소형화를 가능하게 해, 80+ 티타늄(Titanium) 등급의 엄격한 고효율 요구를 충족시키면서도 1U(유닛)의 얇은 디자인을 구현해 시스템 공간 절감에 크게 기여했다.
전력 반도체 업계의 한 베테랑 전문가는 "SiC를 포함한 와이드 밴드갭 반도체 전반에 걸친 균형 잡힌 기술 발전도 물론 중요하지만, 현시점에서 AI 서버 비즈니스의 승패를 가르는 결정적인 변수는 바로 GaN 기술의 혁신적 돌파구가 될 것"이라고 단언했다.
앞으로 GaN은 AI 서버 시장을 넘어, 산업 자동화, 로보틱스 등 AI 기술이 주도하는 다양한 미래 산업 분야 전반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강력히 전망된다.
업계는 AI 서버 랙(Rack)의 총 전력 소비가 기존 5.5kW 수준에서 12kW, 나아가 30kW 이상으로 급증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에 따라 전력 효율을 극대화하면서도 고밀도 전력 분배를 구현하는 것이 시스템 설계의 필수 요구사항이 되었다. GaN 기반 전원공급장치는 기존 실리콘(Si) 기반 솔루션과 달리 더 작고, 가벼우며, 효율이 뛰어나 데이터센터의 총 전력 소비와 운영 비용(OPEX)을 절감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된다.
데이터센터의 전력 아키텍처 역시 3상 AC 전원 사용 및 고전압 DC 배포 등으로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이러한 차세대 설계에서는 GaN과 SiC 기술의 상호보완적 조합이 핵심이 될 전망이다. GaN 기술은 AI 서버 시장을 넘어 앞으로 전기차, 에너지저장시스템(ESS) 등 다양한 고전압 응용 분야에서 필수 기술로 자리 잡을 것이 확실시된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