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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석재의 프롭테크'썰'] AI 시대, 부동산의 승부는 ’AI’가 아니라 ’데이터’에서 갈린다

오석재 알스퀘어 C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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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석재 알스퀘어 CTO
등산을 잘하는 사람은 비싼 등산화를 신은 사람이 아니다. 어느 길이 위험한지, 어디에서 쉬어야 하는지, 정상까지 가장 안전하게 오르는 길이 어디인지 아는 사람이다.
인공지능(AI)도 마찬가지다. 좋은 모델을 쓰는 것과 AI를 잘 활용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같은 툴을 써도 누구는 업무 시간을 줄이고, 누구는 기대한 결과를 얻지 못한다. 차이를 만드는 것은 모델 자체가 아니라 어떤 데이터를 연결하고 업무를 어떻게 설계하느냐다.

생성형 AI 등장 이후 부동산 산업에서도 활용 시도가 이어졌다. 계약서를 분석하고, 시장 정보를 요약하고, 투자 의사결정을 지원하는 서비스가 잇따라 나왔다. 의미 있는 디지털 전환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한 가지가 분명해졌다. AI만으로는 산업이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다.

모델은 상향평준화된다: 스케일링 법칙이 알려준 것


한때 AI 경쟁은 곧 모델 크기 경쟁이었다. 그러나 딥마인드의 이른바 ‘친칠라(Chinchilla)’ 연구는 이 통념을 뒤집었다. Hoffmann 외(2022)는 400여 개 모델을 학습시켜 주어진 연산 예산에서 최적의 성능을 내려면 모델 크기와 학습 데이터의 양을 같은 비율로 함께 키워야 한다는 점을 보였다. 당시의 거대 모델 상당수가 사실은 ‘데이터가 부족한(undertrained)’ 상태였다는 것이다. 즉, 성능의 병목은 파라미터가 아니라 데이터였다.

학습의 병목이 데이터라면, 활용의 병목은 도메인 데이터다. 파운데이션 모델(Bommasani 외·2021)은 이제 API 몇 줄이면 누구나 호출할 수 있는 공용 인프라가 됐다. 모델이 상품화될수록 차별화의 축은 누구나 살 수 있는 모델에서 아무나 가질 수 없는 데이터로 옮겨간다. 앤드루 응이 제기한 ‘데이터 중심 AI(data-centric AI)’ 담론도 같은 맥락이다. 모델을 고정한 채 데이터의 품질과 라벨 일관성을 끌어올릴 때 성능이 더 크게 개선되는 경우가 많다는 관찰이다.

AI는 ‘박사급 인턴’, 데이터는 산업의 맥락


나는 AI를 ’박사급 지식을 가진 인턴’이라고 생각한다. 지식도 풍부하고 논리력도 뛰어나다. 그러나 우리 조직이 무슨 일을 하는지, 어떤 데이터를 중요하게 보는지, 업무가 어떤 순서로 흐르는지는 스스로 알지 못한다. 모델 파라미터 안에 우리 산업의 사적(私的) 맥락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술의 무게 중심은 ‘더 큰 모델’에서 모델을 우리 데이터에 정합(grounding)시키는 방법으로 옮겨가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검색증강생성(RAG)이다. Lewis 외(2020)는 모델의 추론 능력(파라메트릭 메모리)은 그대로 두고, 외부 지식(논파라메트릭 메모리)을 검색해 근거로 연결하면 지식집약적 과제에서 정확도가 오르고 출처 추적성(provenance)까지 확보된다는 것을 보였다.
최근 컨텍스트 창이 커진 모델의 등장으로 검색의 구현 방식 자체는 계속 진화하고 있지만, 근거가 될 정제된 데이터의 필요성은 오히려 커지고 있다. 상업용 부동산처럼 사실관계가 계약서·등기·신탁 문서에 흩어져 있고 수시로 갱신되는 도메인에서는, 이 ‘근거 연결’ 능력이 곧 서비스 품질을 좌우한다.

한 가지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학습 데이터와 실제 업무 데이터의 분포가 다른 분포 이동(distribution shift)이다. 범용 모델은 부동산 실무 문서 분포에 맞춰 학습되지 않았기 때문에 도메인 적응 없이는 그럴듯하지만 틀린 답을 낸다. 이 격차를 메우는 것은 결국 해당 산업의 데이터다.

업무 설계의 문제: 알고리즘이 아니라 시스템


이 관점에서 AI를 잘 쓰는 조직은 질문을 잘하는 조직이 아니라 업무를 잘 설계하는 조직이다. AI가 맡을 일과 사람이 최종 판단할 일을 나누고, 결과를 반복 검증하며 정확도를 끌어올린다. 산업공학의 언어로 옮기면, 이는 새로운 알고리즘을 개발하는 문제가 아니라 사람과 AI가 함께 도는 프로세스를 설계하고 최적화하는 문제다. 어디에 자동화를 배치하고, 어디에 검수 게이트를 두며, 오류를 어느 단계에서 흡수할지를 정하는 시스템 설계의 문제인 것이다.

AI는 하나의 모델이 모든 일을 처리하기보다 역할을 나눈 여러 에이전트가 협업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자료를 찾는 에이전트, 문서를 분석하는 에이전트, 결과를 검토하는 에이전트가 하나의 업무를 함께 수행하는 구조다. 다만 에이전트가 늘수록 역설적으로 데이터의 중요성은 커진다. 여러 에이전트가 공통으로 참조할 정제되고 표준화된 데이터가 없으면, 협업은 오히려 오류를 단계마다 증폭시키는 통로가 되기 때문이다.

사례: 저품질 신탁 문서를 데이터로


사람이 읽기조차 어려운 저화질 신탁 문서를 보자. 범용 OCR만으로는 정확도가 부족하다. 그러나 이미지를 전처리해 잡음을 줄이고(binarization·deskew), 레이아웃과 문자 영역을 분할해 인식한 뒤, 모델이 스스로 매긴 신뢰도가 낮은 부분만 다시 검증하는 다단계 파이프라인을 거치면 활용 가능한 데이터로 전환된다. 서로 다른 인식 결과를 교차 대조하는 앙상블과, 애매한 케이스만 사람이 판단하는 검수 루프(human-in-the-loop)를 결합하면 정확도는 한층 더 올라간다. 실제 신탁원부 분석 업무에서는 사람이 처음부터 끝까지 읽던 방식 대비 수십 배 수준의 효율화를 기대할 수 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중요한 것은 모델 자체가 아니라 AI가 활용할 수 있는 데이터와 그 위에 얹힌 업무 설계다.

데이터는 왜 지속가능한 경쟁우위인가


전략경영에서 지속가능한 경쟁우위는 자원이 가치 있고(Valuable), 희소하며(Rare), 모방이 어렵고(Inimitable), 대체가 어려울(Non-substitutable) 때 생긴다고 본다(Barney, 1991의 자원기반관점, VRIN). 파운데이션 모델은 이 기준을 대부분 충족하지 못한다. 경쟁사도 같은 API를 부를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오랜 기간 축적·연결·검증된 산업 고유의 데이터는 네 조건을 모두 만족한다. 거래·건물·임차인·투자·운영 정보가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될 때 생기는 가치는 하루아침에 복제되지 않는다.

물론 데이터가 많다고 전부는 아니다. 품질, 보안, 활용 원칙(거버넌스)이 함께 갖춰져야 한다. 데이터의 정합성이 무너지면 아무리 좋은 모델도 잘못된 근거 위에서 그럴듯한 오답을 만들 뿐이다. 특히 기업 내부 데이터는 가장 중요한 경쟁력이자 가장 신중하게 관리해야 할 자산이다.

앞으로의 AX(AI 전환)는 새 모델을 직접 개발하는 경쟁이 아니라 검증된 기술을 기존 업무에 얼마나 자연스럽게 연결하느냐의 싸움이 될 것이다. 반복 업무는 AI가 맡고, 사람은 더 높은 수준의 판단에 집중하는 구조로 재편된다. 상업용 부동산 산업의 승부는 모델의 성능이 아니라 데이터 플랫폼의 깊이와 산업에 대한 이해에서 갈린다.

AI는 정상을 대신 올라가 주는 기술이 아니다. 정상까지 가장 빠르고 안전하게 도달할 길을 찾아주는 기술이다. 그리고 그 길을 가장 잘 아는 기업이 AI 시대에도 앞서간다.

“AI의 미래를 결정하는 것은 AI가 아니라 데이터를 이해하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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