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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진단] 반도체 열전 (33) 윌리엄 쇼클리... 실리콘밸리 " 최초의 노벨상"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전 고려대 교수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전 고려대 교수
[김대호 진단] 반도체 열전 (33) 트랜지스터의 아버지 윌리엄 쇼클리
<크리스마스 이브의 질투>

1947년 12월 23일 미국 뉴저지주 머레이힐의 벨 연구소. 물리학자 존 바딘과 월터 브래튼이 게르마늄 결정 표면에 미세한 금박 바늘 두 개를 정밀하게 찌르고 스위치를 올렸다. 스피커에서 증폭된 음성 신호가 흘러나왔다. 인류 최초의 '점접촉 트랜지스터'가 동작하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이 성과는 즉각 연구소 최고 경영진에게 보고되었고, 이튿날 크리스마스 이브에 축배가 들려졌다.

이 위대한 현장에서 단 한 사람, 얼굴이 차갑게 일그러진 남자가 있었다. 바로 이들의 팀장이자 고체물리학 연구를 총괄하던 윌리엄 쇼클리였다. 자신이 핵심 아이디어를 제공했음에도 정작 역사적 실험의 순간에 배제되었다고 느낀 쇼클리는 타오르는 질투심과 자괴감에 휩싸였다. 그는 며칠 동안 시카고의 한 호텔 방에 스스로를 가둔 채 밤을 지새우며 펜을 굴렸다. 바딘과 브래튼의 장치는 구조적으로 조잡하고 불안정하므로, 자신이 대량 생산이 가능한 진짜 반도체를 만들겠다고 다짐했다.질투와 집념이 폭발한 이 며칠간의 독기 어린 몰두 끝에 쇼클리는 P형과 N형 반도체를 샌드위치처럼 이어 붙이는 '접합 트랜지스터'의 이론적 설계를 완성했다. 현대 반도체 문명의 진짜 스위치는 학자의 명예욕과 치열한 질투라는 지극히 인간적인 감정에서 켜진 셈이다.
< 출생과 성장>

윌리엄 쇼클리는 1910년 2월 13일 영국 런던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미국인이었다. 아버지는 광산 기사, 어머니는 스탠포드 대학교를 졸업한 미국 최초의 여성 광산 측량사였다. 부모의 지적 영향력과 유복한 환경 속에서 자란 쇼클리는 어린 시절부터 뛰어난 지능을 보였으나, 동시에 심각한 사회성 부족과 극단적인 자기중심적 성향을 드러냈다. 어린 시절 쇼클리의 이웃과 교사들은 그를 제어하기 힘든 고집불통으로 기억했다. 그의 부모는 쇼클리를 일반 학교에 적응시키지 못해 한동안 홈스쿨링을 실시했는데, 이는 결과적으로 그의 독선적이고 타인을 배려하지 않는 인격을 더욱 강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미국 캘리포니아로 돌아온 그는 칼텍(캘리포니아 공과대학교)에 입학하여 1932년 물리학 학사 학위를 받았다. 이어 당대 물리학의 거장 존 슬레이터 교수의 지도 아래 1936년 MIT(마사추세츠 공과대학교)에서 고체물리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졸업 후 즉시 당대 최고의 연구소였던 벨 연구소에 스카우트된 그는 30대의 어린 나이에 반도체 연구팀을 이끄는 핵심 인재로 거듭났다.

<접합 트랜지스터>
그 시절 통신망과 전자 장비를 지배하던 진공관은 전력 소비가 극심하고 수명이 짧으며 부피가 크다는 결정적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진공관을 대체할 고체 증폭 장치를 만드는 것은 20세기 중반 물리학계의 최대 과제였다.바딘과 브래튼이 만든 점접촉 방식은 게르마늄 결정 표면에 가느다란 접점을 정밀하게 대어야 했기에, 작은 충격에도 오작동하고 공정 오차가 커서 상용 제품으로 양산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쇼클리는 이를 즉각 파악하고 반도체 내부의 p-n 접합 구조를 이용해 전류의 흐름을 정밀 제어하는 방식을 창안했다.

1951년 실물로 구현된 '접합 트랜지스터(BJT)'는 안정성과 신뢰성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대량 생산이 가능해 반도체 산업의 기틀을 확립했다. 또한 쇼클리는 1950년 명저 『반도체 내의 전자와 정공』을 출판했다. 전파와 전자의 움직임을 수학적·물리학적으로 완벽히 정리한 이 책은 수십 년간 전 세계 반도체 공학도들의 바이블 역할을 했으며, 순수 학문이었던 고체물리학을 첨단 산업의 중심부로 끌어올렸다.

<아 노벨상>

956년, 스웨덴 왕립과학원은 윌리엄 쇼클리, 존 바딘, 월터 브래튼 3인에게 노벨 물리학상을 수여했다. 쇼클리는 p-n 접합 이론 수립과 접합 트랜지스터 발명, 반도체 물리학 체계화의 공로를 인정받았고, 바딘과 브래튼은 표면 상태 이론 정립과 최초의 점접촉 트랜지스터 실체 구현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이 노벨상 시상식 현장에서도 세 사람 사이의 골은 깊었다. 쇼클리가 벨 연구소 시절 트랜지스터 관련 특허를 자신의 이름으로만 독점하려 했던 과거 때문에, 바딘과 브래튼은 그와 사적으로 전혀 교류하지 않았다. 쇼클리는 세계 최고 권위의 명예를 얻었으나 정작 함께 피땀 흘린 동료들의 신뢰는 완전히 잃은 상태였다.
<실리콘의 발견>

노벨상을 받은 1956년, 쇼클리는 벨 연구소를 떠나 어머니가 살고 있던 캘리포니아주 팔로알토에 ‘쇼클리 반도체 연구소’를 설립했다. 훗날 이 지역이 실리콘밸리가 되는 역사적 첫 단추였다.쇼클리의 기술적 안목 중 가장 빛난 것은 당시 주류였던 게르마늄 대신 규소(Silicon)에 주목했다는 점이다. 규소는 열에 강하고 지표면에 풍부해 고성능 반도체를 대량 생산하는 데 최적의 재료였다. 쇼클리가 규소 기반 반도체 연구소를 세운 덕분에, 샌프란시스코 남부의 과수원 지대는 세계 첨단 기술의 메카인 실리콘밸리로 탈바꿈하기 시작했다.

사업가로서의 쇼클리는 재앙에 가까웠다. 그는 심각한 피해망상 증세를 보이며 연구원들을 극도로 의심했다. 연구소 내부 수건 상자에 들어간 미세한 이물질 사고를 직원의 테러로 오인하여 전 직원을 대상으로 거짓말 탐지기 조사를 강요했고, 직원들의 전화 통화를 몰래 녹음했다. 또한 시장에서 요구하던 트랜지스터 양산 대신, 자신의 고집으로 실용성이 떨어지는 4층 다이오드 연구만을 강요했다. 결국 회사는 단 하나의 상업적 성공작도 내놓지 못한 채 막대한 적자를 기록하며 무너졌다.

<8인의 배신자>

쇼클리의 독선은 역설적으로 20세기 가장 위대한 인재 유출과 창업 생태계의 폭발을 불러왔다. 1957년, 쇼클리의 폭정을 견디다 못한 젊은 과학자 8명이 집단 사표를 던졌다. 로버트 노이스, 고든 무어, 유진 클라이너 등 당대 최고의 인재들이었다. 분노한 쇼클리는 이들을 '8인의 배신자'라고 부르며 매도했다. 이들 8명은 투자자 셔먼 페어차일드의 지원을 받아 '페어차일드 반도체'를 창업했다. 페어차일드는 실리콘 집적회로(IC)를 상용화하며 대성공을 거두었고, 이후 이 회사 출신들이 연쇄적으로 창업에 나섰다. 로버트 노이스와 고든 무어는 인텔을 설립하여 마이크로프로세서 시대를 열었고, 유진 클라이너는 실리콘밸리 최고의 벤처캐피털인 클라이너 퍼킨스를 세웠다. 쇼클리가 모은 인재들이 그를 떠나 만든 기업들이 산타클라라 계곡을 메웠고, 이것이 오늘날 실리콘밸리의 거대한 생태계가 되었다.

<참담한 말년>

쇼클리의 삶에서 가장 충격적이고 어두운 단면은 그가 인생 후반부에 보여준 정치적·사회적 행보였다. 스탠포드 대학교 교수로 자리를 옮긴 쇼클리는 1960년대 후반부터 물리학 연구를 사실상 중단하고 우생학과 인종차별적 주장에 몰두했다.
그는 지능 지수(IQ)가 유전되며, 흑인은 백인보다 유전적으로 열등하다는 주장을 서슴지 않고 펼쳤다. 더 나아가 IQ가 낮은 사람들에게 국가가 금전적 보상을 지급하고 자발적으로 정관수술이나 불임 수술을 받게 해야 한다는 이른바 자발적 불임 수술 제안을 공개적으로 주장하여 사회적으로 거대한 분노를 일으켰다.

이로 인해 그는 언론과 학계로부터 완전히 매장당했다. 스탠포드 대학교 학생들은 그의 강의를 거부했고, 교내에서 그의 이름을 언급하는 것조차 금기시되었다.

<이혼>완벽한 고립 속의 종말쇼클리의 개인사는 비극과 고립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는 첫 번째 아내인 진 밸리와 결혼해 세 자녀를 두었으나, 쇼클리의 극단적인 이기심과 가정 소홀로 인해 이혼으로 끝났다. 쇼클리는 자신의 아이들에게조차 냉혹했다. 훗날 그가 암으로 투병할 때 자녀들이 방문하려 했으나, 쇼클리는 자식들의 지능이 자신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며 만나주지 않았다. 그의 아들 중 한 명은 스탠포드대를 졸업했음에도 아버로부터 무능력자 취급을 받았다.그는 두 번째 아내인 샬럿 메이시와 재혼했으나, 집착과 의심증은 여전했다. 말년의 쇼클리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조차 기자들을 의심하여 녹음기를 수십 대 가져다 놓고 인터뷰를 진행하곤 했다.

1989년 8월 12일, 윌리엄 쇼클리는 전립선암 투병 끝에 79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그와 함께 트랜지스터를 만든 존 바딘이나 월터 브래튼은 물론, 실리콘밸리를 일으킨 8인의 배신자 제자들, 심지어 그의 혈육인 자녀들조차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그는 평생 자신의 수첩에 동료와 가족들의 결점을 기록하고 비난했던 고독한 방 안에서, 아무의 조문도 받지 못한 채 외롭게 생을 마감했다.

<맺는 말>

윌리엄 쇼클리의 삶은 위대한 지성과 인간적 결함이 빚어낸 극명한 명암이었다.그는 기술적으로 p-n 접합 트랜지스터 이론을 확립해 현대 반도체 공학의 초석을 놓은 거장이었다. 안목으로는 규소의 가능성을 알아보고 실리콘밸리라는 지리적 거점을 만든 촉매였다. 그가 모았던 인재들은 사분오열되어 퍼져나가 인텔, AMD 등 오늘날의 글로벌 IT 제국을 탄생시켰다. 그러나 독선과 피해망상으로 인한 경영 참는 흑역사다. 8인의 배신자를 낳은 인재 유출, 그리고 말년의 우생학 및 인종차별 주장은 그를 역사상 가장 고독하고 비극적인 천재로 만들었다. 질투와 집념으로 현대 정보화 문명의 문을 연 위대한 과학자이자, 리더십과 도덕성을 상실한 천재가 도달하는 비극적 종말을 온몸으로 보여준 역설의 거인이었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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