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확대보기지금 대한민국 자본시장에서 가장 큰 자산을 운용하는 국민연금공단(NPS)의 행태를 보면, 이 우화 속 청개구리의 모습이 겹쳐 보인다.금융시장에서 국민연금과 같은 거대 연기금의 본연의 임무는 명확하다. 자본시장이 폭락하거나 과열될 때, 시장의 충격을 완화하는 ‘시장 안정 완충판(Buffer)’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주가가 폭락할 때는 저가 매수에 나서 하방 지지선을 형성하고, 주가가 과열될 때는 매도물량을 내놓아 거품을 빼는 역발상 투자야말로 연기금이 지닌 존재의 본질이다.
그러나 오늘날 국민연금은 이 본연의 임무와는 전혀 반대로 달리고 있다. 이른바 ‘청개구리 국민연금’이라는 비판이 시장 안팎에서 거세게 터져 나오는 이유다.코스피 시장이 대외적 악재와 경기 둔화 우려로 약세장에 진입하며 피를 흘릴 때 정작 시장을 뒷받침해야 할 국민연금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서둘러 주식을 사들일 여력이 없었던 것이다. 오히려 자산 비중을 맞추기 위한 기계적인 ‘리밸런싱(Rebalancing)’ 선언으로 하락장에 기름을 붓는 기현상마저 벌어지고 있다.
구원투수여야 할 국민연금이, 도리어 시장의 하락세를 부추기고 변동성을 키우는 ‘청개구리’로 전락한 비극은 어디서 비롯되었는가.이 기이한 비극의 근원을 추적해 보면, 정부와 정치권이 주도한 ‘코스피 밸류업’ 정책과 이에 부화뇌동(附和雷同)한 국민연금의 무모한 행보가 자리 잡고 있다. 정치권과 금융당국은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표방하며 기업 가치 제고, 이른바 ‘밸류업 프로그램’을 대대적으로 추진했다. 주가를 부양하고 증시 지수를 끌어올려 민심을 얻겠다는 계산이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자본시장의 독립적 운용 주체여야 할 국민연금이 정부의 주가 부양 정책에 관치(官治)적으로 동원되었다는 점이다.
정치권이 “주가를 끌어올리겠다”고 목소리를 높이자, 국민연금은 앞장서서 국내 주식 매수에 매진했다. 시장의 내재적 가치나 기업의 실적 모멘텀을 엄밀히 측정하기보다는, 정책적 기조에 발맞추어 마구잡이로 주식을 매집하며 지수 띄우기의 선봉장에 섰다. 그 결과가 지금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참담한 한계다. 강세장이나 과열 국면에서 이미 국내 주식 투자 한도를 턱밑까지 채워 넣었거나 초과해 버린 국민연금은, 정작 주가가 폭락하고 시장이 원군을 간절히 필요로 하는 약세장에 이르러서는 ‘실탄’이 바닥나버렸다. 정작 주식을 사서 시장을 받쳐야 할 때 매수 여력이 전무한 무기력한 상태에 빠진 것이다.
과거 강세장에서 과도하게 매수해 둔 국내 주식 비중은 약세장으로 돌아선 현재, 자산 배분 규정에 따라 오히려 매도해야 하는 역설적 상황을 초래했다. 주가가 떨어질 때 사들이는 것이 아니라, 비중을 맞추기 위해 더 팔아 치워야 하는 기계적 리밸런싱 매도는 코스피 하락의 폭을 넓히는 악순환의 고리를 만들고 말았다. 정치적 구호에 휩쓸려 시장의 섭리를 어긴 ‘밸류업 포퓰리즘’이 초래한 비참한 자업자득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국민연금의 이러한 파행적 운용이 단지 국내 증시 하락에만 영향을 미치는 데 그치지 않고, 국민 전체의 '노후 자산 안전망' 그 자체를 직접적으로 위협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최근 금융시장의 불안을 가중하는 핵심 요인 중 하나는 고위험 레버리지(Leverage) 금융상품과 고변동성 자산의 범람이다. 글로벌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급증하고 금리 및 환율의 불확실성이 증대되는 국면에서, 고위험 파생상품이나 과도한 차입을 동반한 레버리지 투자 기법은 자칫 한순간에 막대한 손실을 불러올 수 있는 위험천만한 폭탄과도 같다.
국민연금은 국민이 평생 피땀 흘려 쌓아 올린 소중한 노후 자금이다. 그 어떤 자산보다도 '안전성'과 '장기적 수익성'이 엄격하게 균형을 이루어야 하는 성역이다. 주가 부양이라는 단기적 성과에 연연하고 정책적 입김에 휘둘리는 과정에서, 국민연금의 위험 관리(Risk Management) 시스템은 현저히 약화하였다. 레버리지 사태와 같은 파생적 리스크가 시장을 타격할 때, 무리하게 비중을 늘려놓은 국내 주식 포트폴리오와 고위험 자산들은 거대한 손실의 파도로 돌아온다. 시장의 버팀목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것도 모자라, 국민의 소중한 노후 자금마저 위협받는 국면에 도달한 것은 금융 당국과 국민연금 운용진이 뼈를 깎는 반성을 해야 할 대목이다.
코스피 밸류업은 물론 중요하다. 문제는 연기금의 인위적인 주식 매입이나 정치적 압력으로 달성될 수 있는 단기 과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한국 증시의 저평가(코리아 디스카운트) 문제는 지배구조의 불투명성, 주주 환원 정책의 부재, 기업의 낮은 자본 효율성 등 깊은 구조적 원인에 뿌리를 두고 있다.이러한 근본적 체질 개선 없이 국민연금을 동원해 인위적으로 주가를 떠받치려 했던 시도는, 결국 거품이 꺼지는 순간 더 큰 충격으로 돌아올 뿐이라는 점이 이번 약세장에서 명명백백히 입증되었다.
연기금이 시장의 '청개구리'가 되어 버린 현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근본적 체질 개선과 운용 철학의 확립이 시급하다. 국민연금 운용의 완벽한 정치적 독립성이 보장되어야 한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는 정치권의 주가 부양 욕구나 정권의 치적 쌓기용 정책에 결코 동원되어서는 안 된다. 운용의 독립성과 자율성이 철저히 보장될 때 비로소 장기적 관점의 역발상 투자와 시장 안정 기능이 정상 작동할 수 있다. 고위험·고변동성 금융 환경 속에서 레버리지 리스크에 노출되는 범위를 엄격히 제한하고, 단기 지수 부양이 아닌 장기 안정적 수익률 제고라는 본연의 목표로 돌아가야 한다.
국민연금은 정권의 주가 관리 수단이 아니다. 증시 띄우기를 위한 무한정의 실탄 창고는 더더욱 아니다. 그것은 수천만 국민의 삶과 노후가 걸려 있는 마지막 보루이자 국가 금융 체계의 뿌리다. 정치권의 압력에 굴복하여 과열 국면에서 주식을 대량 매집하고, 정작 약세장에서는 손을 묶인 채 시장 불안을 가중하는 '청개구리 국민연금'의 잔혹사는 이제 끝내야 한다. 냇가가 떠내려간 뒤에야 슬피 우는 청개구리의 우를 범하지 않으려면, 국민연금이 본연의 '시장 안정 완충판'으로 되돌아오고 국민의 노후 자산을 안전하게 지키기 위한 운용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확보하는 것이야말로 지금 한국 자본시장이 해결해야 할 가장 시급한 시대적 과제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