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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AI 시대, ESG 보고서는 더 얇아져야 한다

이현 신한대학교 빅데이터경영학과 교수·한국사회보장정보원 비상임이사·한국지방자치학회 연구부회장 겸 인권경영추진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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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 신한대학교 빅데이터경영학과 교수
한동안 ESG(환경·사회·거버넌스) 경영은 기업들에게 일종의 무거운 숙제였다. 환경(Environmental)과 사회(Social), 거버넌스(Governance) 전 영역을 샅샅이 관리해야 했고 그 결과물로 수십 페이지에 달하는 두꺼운 보고서를 발간하며 평가기관의 요구에 대응해야 했다. 많은 기업이 이를 새로운 규제로 받아들였고 특히 인력과 예산이 부족한 중소기업에게 ESG 경영은 감당하기 힘든 부담이었다.
하지만 2026년 현재 ESG 경영은 전혀 다른 국면에 진입했다. 최근 몇 년간 글로벌 시장 일각에서는 ESG 경영 회의론이나 ESG 경영 종말론과 같은 자극적인 주장이 대두되기도 했다. 그러나 실제로 사라진 것은 ESG 경영 자체가 아니라 이를 보여주기식 껍데기로 바라보던 과거의 방식이었다. 공급망 인권과 기후변화 대응, 정보 공시 등은 여전히 투자자와 소비자가 기업을 평가하는 가장 날카로운 기준이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이제 시장은 화려한 구호가 아닌 실질적인 성과를 요구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패러다임 전환을 가속화한 결정적 계기가 바로 생성형 AI(인공지능)의 대중화다. 이제 AI는 데이터 정리부터 문장 다듬기, 디자인 초안 작성까지 보고서 제작 업무의 상당 부분을 대신해 준다. 바야흐로 기술만 있으면 누구나 그럴듯하고 보기 좋은 보고서를 뚝딱 만들어내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리고 이 기술의 상향 평준화는 역설적으로 보고서 자체의 가치 하락을 가져왔다.

AI는 문장을 매끄럽게 치장할 수는 있지만 존재하지 않는 성과를 창조하지는 못한다. 경영과 데이터가 부실하면 아무리 AI로 화려한 표현을 입혀도 이해관계자들은 그 허세를 금세 간파한다. 이제 기업 간의 ESG 경영 경쟁력은 누가 더 두껍고 멋진 보고서를 만들었는가가 아니라 누가 더 진짜 데이터를 가지고 있는가에서 갈린다. 생성형 AI 시대에 기업들이 보고서를 두껍게 만드는 대신, 경영을 깊게 만들며 보고서의 부피를 줄여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렇다면 얇지만 강한 진짜 ESG 경영은 어떻게 증명해야 할까?
첫째 모든 것을 나열하지 말고 핵심(Materiality)에 집중해야 한다. ESG의 본질은 체크리스트를 백점 맞듯 모두 채우는 데 있지 않다. 업종과 조직의 특성에 따라 사회에 미치는 영향과 책임의 영역은 제각각이다. 백과사전식으로 모든 활동을 담으려다 보니 보고서만 두꺼워질 뿐이다. 기업의 비즈니스와 가장 직결된 중대이슈를 날카롭게 선별하고 그 분야에 자원을 집중해야 한다. 제대로 고른 핵심에만 집중할 때 보고서는 비로소 얇아지고 명확해진다.

둘째 단순 활동(Activity)이 아니라 실질적 영향(Impact)을 기록해야 한다. 여전히 많은 보고서가 무엇을 했는지를 나열하는 데 수십 페이지를 낭비한다. 교육 횟수, 봉사활동 인원, 캠페인 횟수 같은 단순 투입과 활동 지표는 이해관계자에게 큰 감동을 주지 못한다. 시장이 진짜 궁금한 것은 ‘그 결과 세상과 기업에 어떤 실질적인 변화가 일어났는가’이다. ESG 보고서는 단순한 활동 일지가 아니라 변화의 기록이어야 한다.

셋째 가공된 수식어 대신 데이터의 신뢰성을 높여야 한다. 보고서가 얇아질수록 그 안에 담긴 핵심 데이터의 무게는 더 무거워진다. 이제 기업은 정성적인 문장을 늘리는 데 쓰던 에너지를 데이터 수집 체계를 정비하고 산출 기준을 명확히 하는 데 쏟아야 한다. 필요한 경우 독립적인 제3자 검증(Assurance)을 통해 정보의 객관성을 확보해야 한다. 이때 검증은 단지 외부 보여주기용 절차가 아니라, 조직의 데이터 관리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내부 혁신의 과정이 되어야 한다.

많은 기업이 여전히 ESG 경영을 지출해야 하는 비용으로 여긴다. 그러나 진짜 막대한 비용은 ESG 경영을 실행할 때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ESG 이슈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을 때 발생한다. 공급망에서 거래 기회를 박탈당하고 투자자의 신뢰를 잃으며, 소비자의 선택에서 배제되는 리스크 비용은 보고서 몇 권을 만드는 비용과 비교할 수 없이 크다.
좋은 ESG 보고서는 많은 페이지에서 나오지 않는다. 오직 단단한 경영에서 나온다. AI가 보고서를 대신 써주는 시대일수록 기업은 껍데기를 꾸미는 시간을 아껴 데이터를 정제하고 성과를 만드는 본질에 집중해야 한다. 결국 최고의 ESG 보고서는 가장 화려한 보고서가 아니다. 핵심만 남겨 얇아진, 그러나 가장 신뢰받는 경영의 본질을 담아낸 보고서다.


이현 신한대학교 빅데이터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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