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약은 유권자의 마음을 잡아야 하기에 강하고 자극적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구체적인 수치가 들어가면 달성하는 데 부담이 된다.
이재명 정부도 ‘코스피 5000’ 시대를 공약으로 해 출범했다. 만년 저평가된 우리 증시를 보면 정말 실현되면 좋겠다는 기대가 컸다. 허니문 기간 주가 상승에 개미 투자자들이 열광했다.
하지만 진성준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이 주도한 세법개정안에 '블랙 프라이데이' 충격을 맞았다. 대주주 양도소득세 과세 기준이 50억 원에서 10억 원으로 대폭 하향됐다. 배당소득 분리과세 요건도 한층 강화됐다. 증시에 ‘진성준 리스크’가 몰아쳤다.
글로벌 투자은행(IB)들은 코스피지수 3000선도 위태롭다는 악평을 쏟아냈다.
골드만삭스는 세제개편안 보도 이후 ‘블랙 프라이데이’ 현상이 나타났다고 지적했다. 홍콩계 CLSA는 증세 관련 “채찍만 있고 당근은 없다”고 날 선 비판을 내놨다. 씨티증권은 한국의 세제개편안 때문에 아시아 신흥시장 투자 비중을 중립으로 내렸다.
정치권 공세도 쏟아졌다. 야당인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반시장적 정책의 양두구육”), 국민의힘 당대표 후보인 안철수 의원(“개미핥기 같은 대통령”),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증시 망가져도 상관없다는 시그널”)를 비롯한 다수가 비난했다.
여당 의원 13명도 세제개편안에 공개적 우려 의견을 표명했다.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도 10억 원 대주주 기준 상향 가능성을 검토하겠다며 수습하려는 모양새다.
국회 국민동의 청원사이트 ‘대주주 양도소득세 하향 반대’ 청원은 12만 명을 훌쩍 넘어섰다.
동학개미는 다시 서학개미로 전환되고 있다. 증세와 같은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곳곳에 지뢰처럼 숨어 있어 차라리 미국 증시가 낫다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 지수는 우상향하는 추세적 상승을 보인다. 트럼프도 관세 전쟁으로 증시가 하락하자 유권자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이는 미국의 확정기여형(DC) 퇴직연금(401K) 등 발달한 연금제도에 기인한 것이다. 미국 직장인과 은퇴자들은 대부분 401K로 미국 주식과 채권에 투자한다. 미국 주식이 하락하면 노후가 흔들리기에 주가에 민감하다. 유권자들은 주가를 하락시키는 정치인에게 과감한 철퇴를 내린다.
우리나라도 낮은 이자의 예금 위주로 운용되는 퇴직연금이 주식투자로 흘러가야 한다. 하지만 수많은 코리아 디스카운트로 불안한 증시에 노후를 맡기는 것이 부담스럽다.
‘진성준 리스크’는 구조적으로 취약한 한국 증시와 금융정책의 민낯이다. 기업에 자금을 공급하고 국민 노후를 책임질 수 있게 증시를 발전시켜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세제개편 쇼크' 수습을 위해 정부의 시장 안정화 노력이 필요하다. 대주주 양도소득세 기준 완화, 증권거래세율 조정, 배당소득 분리과세 확대 등 자본시장 활성화 내용을 재검토해야 한다.
‘코스피 5000’ 시대 공약의 열광이 분노로 바뀌는 것은 한순간이다. 대통령은 증시 부양에 안간힘인데, 거대 여당은 엇박자를 내는 것으로 비춰지고 있다. ‘세제개편 쇼크’를 어떻게 수습하는지 보면 앞으로 5년의 증시가 보일 것이다.
임광복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ac@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