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정책 총괄책임자 임명 예고…규제완화 기대 속 역할·권한 불명확 우려
이미지 확대보기트럼프 대통령은 AI 산업의 성장을 억제하지 않으면서 미국의 기술 우위를 지키겠다는 구상이지만 구체적인 조직 형태와 권한을 공개하지 않아 미국 기술업계에서는 기대와 불안이 동시에 나오고 있다.
20일(이하 현지시각) 폴리티코 등 외신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자신의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을 통해 AI 전담조직인 ‘AI 포스(AI Force)’를 창설하고 조만간 AI 정책 총괄책임자인 이른바 ‘AI 차르(AI czar)’를 임명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집권 1기 때 창설한 미 우주군(Space Force)을 예로 들며 AI 전담조직도 비슷한 방식으로 만들겠다고 설명했다. 다만 백악관은 새 조직이 군사조직인지 민간 행정조직인지, 어느 정부기관에 속하는지, 어떤 권한과 예산을 갖게 되는지 등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워싱턴포스트(WP)는 트럼프 대통령이 AI 전담조직을 우주군에 비유했지만 백악관이 군사조직인지 민간조직인지조차 설명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로이터통신도 새 조직과 총괄책임자의 구체적인 역할이나 실행방안이 제시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 트럼프 “AI 성장 막지 않겠다”
트럼프 대통령이 제시한 기본 방향은 규제보다 성장에 무게가 실려 있다는 분석이다.
그는 “AI 산업의 성장을 어떤 방식으로도 방해하거나 억누르지 않겠다”면서 “정부가 산업을 돕고 성장 과정을 지켜보겠다”고 밝혔다.
AI를 차세대 산업혁명에 비유하면서 미국이 중국보다 앞서 있으며 이 우위를 유지하겠다는 입장도 재확인했다. AI를 이용한 불법행위나 피해에 대해서는 새로운 규제체계를 만들기보다 기존 민·형사 사법체계를 활용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 같은 구상은 최근 미국 AI 업계와 정치권 일각에서 제기되는 개발 속도 조절과 안전규제 강화 요구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앤스로픽의 다리오 아모데이, 오픈AI의 샘 올트먼, 스페이스XAI의 일론 머스크, 구글 딥마인드의 데미스 허사비스 등 주요 AI 기업 경영진은 최근 첨단 AI의 안전성을 충분히 검증하기 위해 개발 속도를 조절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잇달아 내놨다.
WP는 “AI 모델이 외부 시스템에 침투하거나 개발자의 의도와 다른 행동을 한 사례들이 공개되면서 민주·공화 양당과 AI 업계에서 안전장치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 업계는 “무엇을 하는 조직인가” 혼란
폴리티코가 취재한 기술업계 관계자들은 “백악관이 AI 전담조직 구상을 발표하기 전에 업계와 폭넓은 의견수렴을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복수의 업계 관계자는 새 조직이 무엇을 할 것인지 알지 못한다며 AI 규제를 강화할 조직인지, 아니면 규제를 줄이고 AI 개발을 가속하기 위한 조직인지조차 불분명하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우주군을 모델로 언급하면서 국방부가 관여하는 조직이 될 수 있다는 추측도 업계에서 나왔지만 확인된 내용은 아니다.
IT기업 중심 정책단체인 체임버 오브 프로그레스의 애덤 코바세비치 최고경영자(CEO)는 "데이비드 삭스가 공식 AI 총괄책임자 자리에서 물러난 뒤 백악관 AI 정책에서 체계적인 리더십이 약화됐다"고 비판했다.
그는 최근 AI 위험 논란이 커지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어떤 형태로든 대응해야 한다는 압력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해석했다.
◇ 규제완화 기대하는 업계도
반대로 새 AI 전담조직이 규제를 줄이고 기술개발을 촉진하는 역할을 하기를 기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기술정책단체 어번던스 인스티튜트의 테일러 바클리는 “새 조직과 AI 정책 총괄책임자가 규모와 관계없이 기업들이 경쟁할 수 있도록 시장을 열어두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며 기대감을 표시했다.
기존 민·형사법으로 AI를 악용하는 행위자를 처벌할 수 있는 만큼 새로운 사전 허가나 과도한 규제체계를 만들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밝힌 방향과 상당 부분 일치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AI 개발을 늦춰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미국의 기술 발전을 방해하고 중국에 추격할 시간을 줄 수 있다는 논리를 펴왔다.
엔비디아의 젠슨 황 최고경영자(CEO)도 AI 개발 속도를 인위적으로 늦추는 데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며 미국이 기술개발을 계속해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따라서 규제완화를 선호하는 기업과 정책단체 입장에서는 새 AI 전담조직이 연방정부 차원의 규제를 통합하고 기업의 개발 부담을 낮추는 역할을 할 가능성에 기대를 걸 수 있다.
◇ 안전 우려 커지는데 구체적 감독 기능은 불명확
문제는 AI 안전을 둘러싼 우려가 어느 때보다 커진 시점에 새 조직의 감독 기능이 불분명하다는 점이다.
미국에서는 최근 첨단 AI 모델이 사이버보안 시험 과정에서 다른 기업의 시스템에 침투하는 등 예상하지 못한 행동을 보인 사례가 잇달아 공개됐다.
앤스로픽을 떠난 연구자 제이컵 콕슨은 첨단 AI를 개발하는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기술이 인류에 심각한 위험을 초래할 가능성을 실제 문제로 보고 있다고 경고했다.
아모데이 CEO도 최첨단 AI 모델의 개발 속도를 조절해 안전검증 시간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가디언은 이런 우려가 민주당뿐 아니라 일부 공화당 정치인에게도 확산하고 있다고 전했다.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와 스펜서 콕스 유타주지사 등도 AI에 대한 추가적인 안전장치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AI가 인간 통제를 벗어날 수 있다는 경고를 과장된 우려로 보고 있으며 규제를 강화할 경우 중국과의 경쟁에서 미국이 불리해질 수 있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이 때문에 새 AI 전담조직의 구체적인 설계가 공개되면 미국 AI 정책이 안전규제와 산업육성 가운데 어느 쪽에 더 무게를 두게 될지도 보다 분명해질 전망이다.
◇ 새 총괄책임자 인선이 첫 시험대
트럼프 대통령이 누구를 AI 정책 총괄책임자로 임명할지도 새 조직의 성격을 가늠할 핵심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행정부에서 첫 AI·암호화폐 정책 총괄 역할을 맡았던 벤처투자자 데이비드 삭스는 지난봄 공식 직책에서 물러났으며 현재 외부 자문 역할을 하고 있다.
새 총괄책임자가 규제완화와 산업경쟁력에 무게를 둔 인물인지, AI 안전과 감독 기능을 중시하는 인물인지에 따라 AI 전담조직의 방향도 달라질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발표는 오는 24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을 앞두고 나왔다.
미국과 중국 모두 AI를 경제와 국가안보 경쟁력을 좌우할 핵심 기술로 보고 있으며 양국 정상회담에서도 AI 안전과 기술경쟁 문제가 논의될 것으로 예상된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은 AI 산업을 보호하고 미국의 우위를 유지하겠다는 큰 방향은 제시했지만 이를 실행할 AI 전담조직의 형태와 권한은 아직 밝히지 않았다.
규제완화를 기대하는 업계에서는 새로운 정책 조정기구가 AI 개발을 촉진할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오는 반면 안전을 중시하는 진영과 일부 기술업계 관계자들은 역할과 감독체계가 불분명한 상태에서 조직부터 발표됐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새 AI 전담조직이 산업육성 기구가 될지, 안전감독 기능까지 갖춘 정부조직이 될지는 총괄책임자 인선과 백악관의 후속 계획이 공개된 뒤에야 구체적으로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













